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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이 난민 신청?…판결문은 읽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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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이 난민 신청?…판결문은 읽었을까

[기자의 눈] '경계인' 유우성의 기구한 삶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과 관련해 증거 위조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갑자기 유우성 씨 개인의 행적을 둘러싼 의혹이 부각되고 있다.

일부 종합편성채널 언론들이 자사의 각종 뉴스 프로그램을 통해 반복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의혹을 정리하면 크게 세 부분이다. 유우성으로 개명하면서 주민등록 상 생일을 바꾼 데 대한 의혹,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맹원증 위조 사실, 영국 난민 신청 사실 등이다. 이와 별도로 유 씨가 개명 전 유광일이라는 이름으로 정부에서 월 38만 원 가량의 지원금을 받은 부분도 마치 새로운 사실인양 보도되고 있다.

이는 모두 새로 밝혀진 사실은 아니며, 무죄 판결이 난 간첩 혐의와는 전혀 관련없는 사실들이다.

▲ 검찰이 제출한 증거를 두고 중국 정부가 '위조'라는 입장을 밝혔다. 일부 언론은 뜬금없이 유우성 씨의 과거 행적을 재탕해 의혹을 부풀리고 있다. 어떤 것이 더 위중한 상황일까. ⓒ<뉴스타파> 화면 캡처

유 씨가 '경계인'이었다는 점에서 모든 문제 시작

유우성 씨 사건 1심 판결은 두 가지 성격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첫째, 화교임에도 탈북자로 위장한 부분과 관련한 실정법(북한이탈주민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둘째, 간첩 행위 등과 관련된 국가보안법 위반 부분이다.

전자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유죄가 선고됐다. 후자인 간첩 행위(국가보안법상 간첩, 특수잠입, 탈출, 회합, 통신, 편의제공 등)는 검찰 측의 증거가 신빙성을 잃게 되면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후자에 대해 검찰은 항소했지만 위조 증거를 제출해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전자와 후자의 사건은 사실상 별건이다. 모든 문제는 유 씨가 북한에서 태어나 자란 중국 국적의 화교인데, 탈북자로 인정받기 위해 '북한 국적'인 것처럼 속인 데서 발생한 일들이다.

검찰이 제기한 공소사실에 따르면 유 씨는 함경북도 회령시 오봉리에서 화교 부모를 둔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등학교와 경성의학전문학교를 마치고 2001년부터 2004년까지 회령시 소재 제1인민병원에서 준의사로 근무했다.

유 씨는 친척으로부터 "탈북자들이 한국에 가면 잘 대우받는다"는 말을 듣고 탈북, 2004년 4월 남한에 들어왔다. 당시 유 씨는 재북화교(중국 국적) 신분을 숨기고 북한공민권자라고 주장, '탈북자'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2004년 이후 약 10년 동안 그가 발급받은 주민등록증, 여권은 모두 위법한 것이었고, 그에 근거해 지급한 지원금은 부당 편취한 것이 되며, 서울시청 계약직 공무원 취업 역시 잘못된 탈북자 등록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 된다. 이는 판결문에 모두 상세히 기록돼 있다.

결론을 내리자면 유 씨의 죄는 한 가지다. 중국 국적을 숨기고 탈북자 신분으로 국가 지원을 받은 부분이다. 물론 지원받은 금액은 고스란히 추징당했다. 그러나 이같은 부분도 법원은 일부 참작해줬다. 큰 틀에서 보면 "국가기관(통일부)의 불충분한 심사에 기인하는 것일 뿐 피고인의 부정한 행위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탈북자의 절박한 사정을 고려한 재판부의 고뇌가 담겨 있다. 통일부가 국적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그를 탈북자로 인정했기 때문에 발생한 부분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최초 탈북한 유 씨를 조사했던 국정원에게도 책임이 있는 문제다.

일부 보수 언론이 비중있게 다룬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맹원증 위조 사실 역시 새롭게 밝혀진 게 아니다. 역시 판결문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화교가 아니라 북한 공민권자(탈북자)임을 증명하고 "자신의 국적을 적극적으로 은폐하기 위해" 이를 위조했다고 적시돼 있다. 물론 법원도, 검찰도 맹원증 위조와 간첩 혐의를 연결시키지 않았다.

이같은 사실들을 종합한 법원은 재북 화교 신분을 숨기고 탈북자 지위를 획득해 여러 이익을 편취한 데 대해 "죄책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서도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에 대해 그 사실 관계를 모두 인정하고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했다. 이어서 법원은 "피고인이 자신의 중국 국적을 은폐하기 위해 적극적인 기망 수단을 사용하기는 하였으나 이는 피고인이 자신의 신분이 밝혀질 경우 탈북 이후 대한민국에서 힘겹게 이루었던 자신의 생활 터전을 모두 잃고 강제로 추방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기인하였던 것으로 보이므로 그 범행 동기에도 참작할 바가 있다"고 했다.

판결문에는 "피고인은 북한 지역에서 출생해 탈북하기 이전까지 계속 북한에서 거주했던 사람으로, 스스로는 자신을 다른 북한이탈주민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인정했다. 유 씨가 탈북자로 위장할 수 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취지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간첩 활동중 난민 신청하면 북한은 가만히 있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바꾼 부분은 유 씨 개인적 사정에 따른 것에 가깝다. 이 부분 역시 법원도, 검찰도 특별히 문제삼지 않았다. 그가 재북 화교(유가강)였고 어렸을 때 불렸던 한국식 이름(유광일)을 탈북자 신분으로 사용했으며, 개인적인 사정으로 개명(유우성)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개명이 이뤄진 과정에서 있었던 유 씨의 행위들은 처벌 받고 끝난 사안들이다. 검찰도 이같은 범행 사실과 간첩 혐의를 따로 분리해 공소장을 작성했다. 그런데 이제 와 일부 언론이 별건의 사안으로 처벌받은 것을 들춰 "개인 행적이 수상하다"는 이유로 간첩 행위와 연계시키려 하고 있는 상황이다. 납득하기 어렵다.

영국 정부에 난민 신청을 했다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검찰의 공소장에 따르면 유 씨는 2006년 모친상을 당해 북한으로 몰래 들어가 보위부에 포섭(인입) 간첩이 됐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따져보자. 간첩 활동을 하는 도중 영국 정부에 난민 신청을 했다는 것은 북한 정부를 배신한 얘기와 같다. 북한 정부의 보복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인데, 검찰의 논리대로라면 유 씨는 남한에 다시 돌아와 아무 일 없었던 듯 탈북자 정보를 수집해 북한에 넘긴 셈이 된다. 예컨데, 대북 정보를 다루는 국가정보원 직원이 어느 날 제 3국에 난민 신청을 했다고 상상해보자. 국정원은 물론 나라가 발칵 뒤집히고도 남을 일이다.

영국 난민 신청과 같은 지엽적인 부분보다는, 오히려 검찰의 말바꾸기가 더 수상하다. 검찰은 유 씨가 2006년 5월 '도강'했다고 공소장에 적시했으면서, 위조된 당시 출입경 기록을 국정원으로부터 받아 항소심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했다. '도강'이 '합법적으로 입북'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2006년 입북 이후 수차례 북한을 들락날락 했다는 검찰 측 증거들은 모두 인정받지 못했다. 검찰과 국정원의 수사 내용 자체가 밑둥째 흔들리고 있다.

일부 언론이 영국 난민 신청 부분을 강조하는 것은 근거 없는 '의혹 부풀리기'에 가깝다. 이런 식의 물타기는 누구에게 좋은 일일까? 판결문은 제대로 읽고 보도를 하는지 알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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