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부터 본격적으로 시간선택제 지방직 공무원 채용이 진행되는 가운데, 응시 자격과 시험 과목이 전일제 공무원과 다른 게 없어 "고용률 70% 달성에 급급한 졸속 정책임이 확인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106주년 3.8 여성의 날 공동기획단이 5일 주최한 '시간제 일자리 문제점과 현실' 증언대회에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윤선문 정책실장은 "전일제와 시간제의 시험 과목이 같다는 것은 시간제 채용을 위한 내용적 준비가 전혀 없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주장했다.
윤 정책실장은 "절차상 문제뿐 아니라 턱없이 낮은 임금 수준도 문제"라며 "정부가 정한대로 전일제 비례로 시간 선택제 공무원의 급여 수준을 예측하면 입직 시 78만 원, 재직 10년 137만 원, 재직 20년 178만 원, 재직 30년 221만 원으로 계약직 공무원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양질의 시간 선택제 일자리의 조건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비례의 원칙'은 겉으로만 합리적으로 보일 뿐이란 지적이 이어졌다.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은 "근로시간에 비례한 보호 원칙은 일면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 관계법을 관통하는 비차별 원칙을 무시하고 '합리적' 차별을 위한 근거 규정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시간 비례라는 산술적 계산에만 근거해 이틀에 한 끼 점심 비용만 지급하거나 퇴근 교통비는 제외하고 출근 교통비만 지급하는 방식의 노동의 질 저하와 차별 문제가 생길 수 있단 지적이다.
남 정책위원은 "근로시간의 길이에 비례해 보장해야 할 부분은 근로 대가성 임금으로 국한하고, 교통비·식사비·가족수당·교육수당·학자금지원·명절선물 등 후생 복지적 차원에서 지급하는 생활 보장성 임금은 비례 보호 원칙에서 벗어나 온전히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논란이 됐던 홈플러스의 '점오(0.5) 근로계약' 처럼 '일은 일대로 시키고 어떻게든 노동의 대가를 최소화하려는 기업들의 꼼수'가 시간선택제 일자리 정책으로 더욱 확산될 거란 우려도 계속되고 있다.
홈플러스에서는 계산대와 고객센터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근로 시간을 4시간 30분, 5시간 30분, 6시간 30분, 7시간 30분 등과 같이 '점오' 단위로 나누어 고용해 왔다.
김진숙 서비스연맹 홈플러스노조 서울본부장은 "업무량이 많아 실제로는 8시간을 초과해서 일하지만 애초 근로계약을 이렇게 맺어놓은 탓에 연장 근무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현행 근로기준법 시행령은 단시간 노동자를 사용하며 소정근로시간을 초과해 일을 시키더라도 초과 근로에 대한 가산 임금(150%) 지급을 의무로 두고 있지 않다.
남 정책위원은 "단시간 노동에 대해서도 소정근로시간 초과 노동에 대해 근로기준법 56조(연장·야간 및 휴일 근로)의 내용 그대로 가산 임금을 지급토록 해 연장 근로와 초과 근로를 규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 정책위원은 최저임금 현실화와 비례 원칙 보완, 이를 통한 연장근로 규제 및 노동 시간 단축 외에도 시간제 노동자에 대한 △근로기준법 및 사회보험 적용 확대와 △전일제 전환권 보장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양질의 보육 서비스 없는 시간제 확대…"성별 분업"
이날 토론회에는 심선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연맹 보육협의회 의장도 참석해 "국공립 어린이집이 확충되고 보육서비스의 질이 향상되지 않으면 시간제 일자리는 육아의 책임을 오로지 여성에게 전가해 성별 분업을 고착화하는 정책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심 의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시간제 노동자 확산을 위해 시간제 보육 정책이 필요하다 얘기했는데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긴급 보육 차원에서 시간제 보육 시스템을 만드는 것과 시간제 보육을 양산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고 말했다.
심 의장은 "양질의 보육을 위해선 보육교사 1명의 보육 시간을 줄이고 더 나은 보육을 위한 평가와 준비 시간이 보장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2교대제 도입이 불가피하며 이를 위한 인력 확충이 필수"라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3.8 여성노동자대회 공동기획단'에는 민주노총과 정의당, 노동당, 통합진보당,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원회, 사회진보연대, 지구지역네트워크, 노동자연대다함께, 학생행진, 서울대학생연합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오는 8일 오후 2시 청계광장에서 '여성을 반쪽짜리 노동자로 내모는 시간제 일자리 중단' 등을 요구하며 106주년 3.8여성의 날 맞이 여성노동자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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