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한 외부단체 강연에서 “북한이 약속을 안 지키면 국물도 없다”며 지난 이산가족 상봉에서 정부는 당당하게 협상에 임했다고 밝혔다. 지난 정부와는 다르게 북한에 굽히고 들어가지 않겠다는 정부의 기조를 다시 한 번 강조한 셈인데,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를 위한 실무접촉을 제안한 당일 남북 관계 주무 부처 장관이 북한을 협박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류 장관은 5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헌정회 통일문제연구특위 초청강연에 참석해 “지난 1년 동안 북한을 끈질기게 설득한 결과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며 “'앞으로 북한이 우리와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속된 말로 국물도 없다', '약속을 지켜라, 우리도 지킬 것이다', '과거 한국 정부처럼 우리를 대하면 안 된다'(고 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런 것들이 조금씩 북측 위정자들에게 전달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류 장관은 설계기 이산가족 상봉과 관련해 “과거처럼 (북한에) 뭔가를 주고서 한 것이 아니”라며 “앞으로 이산가족 상봉이 잘되면 남북이 호혜적으로 풀 수 있는 일이 많다는 점을 얘기하면서 행사를 무사히 잘 치러냈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 남북 간 교류협력이나 대화는 기본적으로 호혜적인 성격을 갖고 신뢰를 쌓는 과정으로 만들어 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설계기 이산가족 상봉이 쌀이나 비료 등을 북한에 전달하고 성사됐던 기존의 상봉과 다르게 진행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남한 정부의 끈질긴 설득으로 태도를 바꿨다고 단정 짓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실제 지난해 9월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나흘 앞두고 돌연 상봉 연기를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를 위한 적십자 실무접촉을 북측에 제안한 당일 남북관계의 주무부처 장관이 협상 상대인 북한에 “국물도 없다”는 식의 협박성 발언을 한 것은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당장 실무접촉 성사가 불투명한 상황인데다가, 설사 접촉이 성사되더라도 협의 과정에서 북한이 이 발언을 구실로 협의에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뿐만 아니라 서신교환과 생사확인 등 이산가족과 관련한 인도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고 그 연장선에서 통일부는 북측에 적십자 실무접촉을 제안했다. 이런 상황에서 실무접촉 성사에 주력해야 할 주무부처 장관의 이날 발언은 이산가족과 관련한 인도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박 대통령의 의지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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