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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성공, 러시아와 북한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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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성공, 러시아와 북한에 달려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한반도포커스'] 제27호 <2>

박근혜 정부 출범 1주년을 맞이하여 그동안 진행되어온 정책에 대한 평가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와 더불어 대표적 외교안보 정책구상인 ‘동북아 평화협력구상’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1년간의 성적표가 배달되고 있으며, 성적은 평가 주체에 따라 극명하게 편차를 보이고 있다.

한편 작년 말 뒤늦게 제시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이제 단지 1년 기간 중의 반환점을 돌고 있느니만큼 아직 구체적 영역에서 평가를 받기에는 이른 감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을 집행함에 있어 시발점에서의 작은 차이나 착오가 종국에는 의도하지 않는 결과를 양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간점검을 통한 건설적 비판과 올바른 방향 제시는 여전히 유효하다. 따라서 본고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1년 후 혹은 그 이후라도 소모적인 결과로 귀결되지 않기 위해 포괄적 분석과 평가, 그리고 성공을 위한 정책과제를 제안하고자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13년 10월 18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주최한 ‘유라시아 시대의 국제협력 컨퍼런스’ 기조연설에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제시하였다. 이는 유라시아 국가들에 ‘하나의 대륙’, ‘창조의 대륙’, ‘평화의 대륙’으로 만들기 위해 국제협력을 강화하자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의 대륙’은 교통·에너지·통상네트워크 확대를, ‘창조의 대륙’은 국제적 차원의 창조경제 추진 및 문화·인적 교류 확대를, ‘평화의 대륙’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에 대한 국제적 지지에 기초해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유라시아 시대를 준비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2월 출범과 함께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핵심적 대외정책을 통해 외교안보·대북정책분야의 비전을 제시한 바 있다. 반면에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한반도·아시아·유럽을 포괄하는 교통·에너지·개발·문화 등 경제적 영역의 확대를 통한 경제협력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제시한 행사를 정부의 대외경제정책을 다루는 국책기관이 주최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 박근혜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3일 청와대에서 한-러 정상회담 이후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회담에서 정부는 나진-하산 간 철도 연결에 한국 자본 참여를 결정했다. ⓒ연합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박근혜 정부의 1년, 외교안보대북정책 평가>를 통해 살펴보는 것은 이 구상이 현 정부의 외교안보 및 대북정책과 논리적으로 실천적으로 매우 긴밀하게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경제적 접근을 통한 외교안보적 성취라는 방법론을 택한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 두 가지 요소가 긴밀하고 효율적으로 결합된 형태만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미래를 보장하게 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시종일관 신뢰를 대내외정책의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겨왔으며, 신뢰외교(Trustpolitik)는 대외정책 실행의 바로미터가 되었다. 신뢰외교는 국가 간에 신뢰의 토대를 쌓는 가운데 상호 간 고차원의 협력을 도모하자는 것으로써 한반도에 적용한 것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에 적용한 것이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유라시아를 대상으로 한 것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경제와 안보문제를 복합적으로 풀어가자는 문제의식 속에서 제안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도전적 제안에도 불구하고 논의의 기본점이자 출발점인 유라시아의 지리적 범주는 기조연설에서 지극히 다의적(多義的)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원래 유라시아는 아시아와 유럽을 단일한 공간으로 인식하는 광의의 개념으로 사용되었고, 이는 지난 1883년 오스트리아 지질학자 쥐스(Eduard Suess)가 최초로 사용한 바 있다. 협의의 유라시아는 일반적으로 소련의 붕괴로 재편된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을 의미하는 ‘탈소비에트 공간’을 의미한다.

한편 소위 ‘유라시아’는 러시아 지성사에서 ‘러시아의 정체성’과 ‘러시아의 길’을 놓고 전개되는 치열한 논쟁적 이슈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유라시아는 구소련 해체 이후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러시아 수성, 그리고 미국의 침투가 전개되면서 지정학적 위상이 가파르게 제고되고 있는 지역을 의미한다. 이처럼 유라시아는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되는 민감하고 예민한 개념인 것이다.

그런데 기조연설에서는 유라시아에 대한 지리적, 지정학적 성찰에 아쉬움을 주고 있다. 유라시아의 지리적 범주를 논할 때, 아시아와 유럽을 통합한 광의의 개념을 차용하는가하면, 남쪽으로는 ASEAN(아세안), 동쪽으로는 태평양을 넘어 NAFTA(나프타, 북미자유무역협정) 지역까지도 포괄하고 있다. 이러한 자의적이고 광범위한 지역 범주의 설정은 정책실행에 있어 선택과 집중의 전략을 무색하게 하며 추진동력을 약화시킬 소지가 있다.

한편 이러한 유라시아에 대한 지리적, 개념적 혼란은 유라시아를 우리의 정책영역에서 정면으로 다루기에는 버거운 주제임을 자각한 다분히 회피적이고 의도된 것일 수도 있다. 아직 우리를 둘러싼 안보환경이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라는 이분법적 구도에 지배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대륙 지향성을 강화하는 것으로 해석될 경우의 파장을 의식한 것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1) 그러나 국가정책이 명확한 목표 설정과 강력한 추진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그렇다면 2013년 10월 18일이래 1년 중의 반환점을 돌고 있는 상황에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어떠한 평가를 받을 것인가.

우선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유라시아지역이 지니는 잠재력에 주목하고 한국의 성장동력을 추동하는 지역으로 인식하는 것은 적절한 방향설정이다. 게다가 기존에 한반도와 아시아에 국한된 정책적 공간을 확대하고, 외교적 지평을 넓힌 점을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혹여 역대 정부의 대외정책이 세계화(문민정부), 동아시아(국민의 정부), 동북아(참여정부)로 외연이 축소되어 온 것처럼 보이는 것은 실상과는 다른 것이다.

우리가 ‘동북아’에 천착한 것은 역사를 성찰하고 동북아 지역에 내재한 모순과 한반도와의 관련성을 직시한 데 따른 것이다. 즉, 주도적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동아시아 담론에서는 자칫 간과할 수 있는 북한 문제를 포함해 한국의 역할을 요구한다. 게다가 동아시아보다는 동북아에서 전략적으로 한국의 경제·외교안보적 이해가 더 크게 결부되어 있어 이에 집중할 필요성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동북아’는 우리의 운명과 직결되어 동북아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야 할 자각에서 제시된 전략적 지역 범주였던 것이다. 과연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이러한 지리적·역사적·전략적 성찰 속에서 제기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또 다른 문제는 유라시아로 가는 길목에는 국제사회에서 가장 폐쇄적인 북한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북한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지 않고 우회해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과제임을 주지시킨다. 다행히 이러한 문제의식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제시한 ‘평화의 대륙’으로 표현된다. 즉 “유라시아와 태평양을 연결하는 관문인 한반도의 평화는 유라시아는 물론 전 세계 평화를 위한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물류, 에너지, 인적교류를 비롯한 대부분의 협력과제들은 남북관계의 안정과 북한의 개혁·개방 없이는 풀어나가기 어려운 과제입니다.”라고 언급한 대목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행보에 긴밀히 연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이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어휘에서 제공하는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이미지와 달리 역내 상황은 상호 경쟁적 적대관계가 지배하는 형국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와중에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제시하는 문제의식과 사업들은 남북러 가스관 사업 및 나진-하산 프로젝트처럼 모든 해당 당사국에 이익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심지어 북한도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진행과정에서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향유할 수 있다는 점은 북한의 관심을 제고할 수 있는 부분이다. 따라서 북한에 대한 더욱 대담하고 포용적인 접근을 통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실현 가능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아울러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성공을 위해서는 유라시아 핵심국가인 러시아와의 관계를 생산적으로 재정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작년 11월 13일 푸틴 대통령의 방한에 맞추어 전격적으로 제안된 측면이 있다. 물론 정부 출범과 함께 ‘동북아 평화 구상과 유라시아 협력 확대’가 140개 국정과제 중의 하나로 제시된 바 있지만,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라는 현정부의 3대 외교안보정책으로까지 독자적 위상을 가질 것으로 예상한 이는 드물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중·미 관계가 격랑에 휩싸이며 동북아판이 횡축으로 요동치는 와중에 북한, 시베리아, 중앙아시아, 모스크바를 거쳐 유럽을 잇는 종단면을 강화하는 것이 동북아판의 균형을 회복하고 우리의 ‘이니셔티브’를 강화하는 결과를 창출할 수 있다면 이는 장기적 국익에 부합하는 정책으로 기록될 것이다.

사실 국내외적으로 유라시아에 대한 관심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국내적으로는 지난날 이명박 정부에서 신아시아 구상 및 자원외교 강화를 통해 유라시아의 핵심지역인 중앙아시아 등에 대한 관심을 기울인 바 있으나 그 성과는 미미했다. 국제적으로는 유라시아지역에 대한 지정학적, 지경학적 가치를 인식한 중국이 이미 1996년 ‘상하이 5국’, 2001년 상하이협력기구(SCO)를 주도적으로 출범시킨 바 있으며, 2013년 9월 ‘신(新)실크로드 경제벨트’(2) 프로젝트를 가동하는 등 유라시아 지역전략에 관한한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우위를 점하고 있다.

만약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 우리의 사활적 이해가 걸렸다면 러시아가 총력을 기울인 소치올림픽 현장에 유라시아국가들은 물론 우리의 경쟁국인 일본, 중국의 정상도 있는 곳에 우리는 방관자로 있었다는 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따라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3대 대외정책의 위상을 가지고 성공을 기원한다면 유라시아 국가들에 더욱 대담하고 진정성을 가지고 접근할 때만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마침 시의적절하게도 최근 유라시아의 핵심국가인 러시아의 소치에서 폐막된 동계올림픽기(旗)가 한국의 평창으로 이양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와 같은 러시아와 한국의 운명적 연계성이 한반도와 동북아, 그리고 유라시아의 평화와 번영의 촉매가 되고,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성공의 징조(徵兆)이기를 바란다.

□ 필자 주석

(1) 제성훈,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구현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외교·안보적 의미’(한국슬라브학회 학술회의, 2013년 2월 14일) 참조.

(2) 2013년 9월 시진핑 주석이 카자흐스탄 나자르바예브대학교 연설에서 제안한 것으로 중국, 유럽을 거쳐 아프리카까지 포괄하는 30억 거대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지경, 지정학적 전략이다.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소장 이수훈)가 발행하는 <한반도포커스> 2014년 3·4월호(제27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번 호의 전체 주제는 '박근혜 정부 1년, 외교·안보·대북정책 평가'입니다.

* 원제 :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 평가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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