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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한옥 지키는 이들, 그저 손해만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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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한옥 지키는 이들, 그저 손해만 보라고?

[김경민의 도시이야기]<32>도시의 보존과 개발, 두 마리 토끼 잡는 방안들

지난해 5월부터 <프레시안>의 지면을 빌어, 여러 서울 지역들 – 익선동, 동대문, 창신동, 가리봉동 등에 관한 인문지리학적 또는 도시학적 연구를 소개하였다. 현재 상황을 마주하였을 때, 이런 동네를 보존하는 것이 가치가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도 받았고, 백번 양보해 가치가 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보존하면서 개발과 균형을 이룰 것인가에 대한 질문도 받았다.

이번 글에서는 다소 딱딱할 수 있겠으나, 실제로 해외에서는 어떤 도시 계획 정책을 바탕으로 보존과 개발의 균형을 이루는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서울 종로구 익선동 한옥 집단 지구와 가리봉동은 놀랍게도 토지 이용 용도가 '상업'이다. 상업 용지는 용적률을 600~1000%까지 받을 수 있다. 용적률이란 대지 면적 대비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면적의 정도를 말한다. 만약 대지 100평에 용적률 100%라면, 100평의 건물을 지을 수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상업 용지의 용적률이 600%라면, 100평 토지에 600평의 건물을 지을 수 있다.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진 땅인 것이다.

그런데 한옥은 대개 1층짜리 건물이다. 그렇다면 토지보다 무려 6배 이상 큰 건물을 소유할 수 있다. 순수하게 경제적 관점에서 봤을 때는, 상업 용지를 주거지(한옥)로 사용하는 것은 이곳 토지 소유주들이 자신의 건물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셈이다. 한옥이므로 보존해야 한다는 제약만 없다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 토지 소유자인데도 말이다.

한옥 지키는 지주들에게 인센티브 주어야

제약 조건 때문에 자기 땅이 제값을 못 받고 있는 형편이라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떠한 인센티브도 주지 않으면서, “한옥은 가치 있는 건물이니, 그냥 살고 계세요”라는 이야기만 하고, 용적률에 제한을 두는 것은 그들의 경제적 이권을 옭아매는 것으로 대단히 잘못된 일이다.

물론 한옥 자체를 보존하고 관리하기 위한 인센티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업 용지와 같이 토지 가격에 엄청난 차이를 만들 수 있는데도 이를 사용할 수 없다면 또 다른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가능한 인센티브로는 △개발권 이양(TDR·Transfer of Development Right), △역사건물 재생 세액공제(HRTC·Historic Rehabilitation Tax Credit), △저소득층 주택개발 세액공제(LIHTC·Low-Income Housing Tax Credit), △조세담보금융(TIF·Tax Increment Finance), △상업활동촉진지구(BID·Business Improvement District) 지정 등 크게 4~5가지가 있다.

상황에 따라 이 중 한 가지만 사용할 수도 있고, 더 많은 혜택을 줘야 개발과 보존이 가능하다면 전부를 다 사용할 수도 있다. 주민 요구와 시 당국의 의지가 있다면 가능한 일이다.
▲ 2010년 9월 8일, 서울 종로구 익선동 오진암(梧珍庵)의 철거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1953년 문을 연 오진암은 한국 최초의 근대 요정으로 이미 문을 닫은 삼청각, 대원과 함께 정치인, 기업인들이 자주 찾던 '3대 요정'으로 유명하다. ⓒ연합뉴스
용적률 판매 가능토록…개발권 이양책(TDR)

첫 번째로 소개하려는 인센티브는 '개발권 이양책(TDR)'이다. 나날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도시 안에 서로 인접한 A와 B 지역이 있다고 치자. A에는 한옥과 같은 역사적 건물과 공장과 창고 등 근·현대 역사 자원이 있다. 반면 B 지역은 논과 밭이다. A와 B 지역 모두 용적률 300%의 땅이다.
근·현대 역사 자원의 가치를 잘 아는 시장은 A 지역의 개발을 제한하기 위해 법적으로 용인된 용적률을 못쓰도록 하였다. 추가 규제를 통해 300% 용적률이 법적으로 가능함에도 실제로는 100%밖에 사용할 수 없게 했다. 이에 따라 서울 종로구 익선동에선 더는 개발 행위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도시의 경제 성장이 굉장히 빨라 사무용 건물을 지으려는 수요가 커졌다. 특히 도심 생활 편의 시설이 많은 익선동에 사무용 건물을 지으려는 이들을 많다. 그러나 법적 제약 조건 때문에 그럴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바로 옆 동네 B 지역에 건물을 짓기 시작한다.

이런 경우, 경제의 중심은 A에서 B 지역으로 옮겨가게 된다. 용적률 제한으로 아무런 개발 행위가 일어나지 않는 서울 종로구 익선동으로는 외부의 돈이 들어오지 않아 나날이 쇠퇴하기 시작한다. 반면 B 지역은 나날이 번성한다. 서울 종로구 익선동에 입주한 각종 생활 편의 시설을 보고 이 도시에 들어오려던 오피스 회사들이 B 지역에 위치하면서 성장의 열매를 B 지역이 따먹고 있는 형국이다. 인센티브 제공자인 서울 종로구 익선동은 규제 때문에 침몰하고, B는 반대로 이익을 보고 있다. 시 정부 역시 새로운 오피스 기업이 대거 입주한 덕택에 세수가 증가해 행복해한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 종로구 익선동을 어떻게 하나? 시 정부의 고민은 이제 서울 종로구 익선동에 쏠린다. 쇠퇴해버렸지만 역사 자원이 있는 서울 종로구 익선동을 활성화해야 하는데 해답이 없다. 서울 종로구 익선동 주민 성화에 밀려 근·현대 자원이고 뭐고 다 밀어버리고 오피스 기업을 입주시켜야 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한다.

이럴 때 '개발권 이양'이라는 정책을 쓰면 문제는 다소 해결될 수 있다. 현재는 용적률 규제로 서울 종로구 익선동이 용적률 200%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B 지역은 300%를 다 사용할 수 있다. 기대 이상의 오피스 수요로 더 많은 용적률이 B 지역에 필요한 상황이라면, 서울 종로구 익선동 용적률 200%를 B 지역에 판매토록 하는 정책이다.

이렇게 하면, 서울 종로구 익선동은 용적률 판매로 벌어들인 수익금을 지역 재생 (Urban Renewal)에 필요한 자금으로 확보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지역을 과거처럼 활기 있게 유지할 수 있다. 동시에 B 지역은 더 높은 사무용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돼 새로 들어올 오피스 기업들을 더 많이 유인할 수 있다. 이미 미국에서 시도되고 있는 정책이다.

"역사적 건물 개발한다면 세액공제"

만약 끝없는 쇠퇴와 지역 주민 소득 감소로 서울 종로구 익선동의 역사적 건물을 개조할 수조차 없는 지경에 처한다면? 역사건물 세액공제(HRTC)란 제도를 활용해 볼 수 있다.

뉴욕 미트패킹 지구에선 100년도 안 된 도살장 건물도 역사적 건물로 지정됐다. 창고와 공장 등 근․현대 자원들도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이러한 건물이 문화․예술 등 새로운 용도로 활용된다면 창조 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창조 공간으로 탈바꿈될 가능성도 크다. (☞ 미트패킹 지구 관련 글 보기 : 미국에서는 마장동이 '패션 1번지'?, 미국의 전통시장 활성책 "오래된 건물 그대로 사용")

다만, 내부를 새롭게 리모델링를 하려면, 정부가 정한 가이드 라인(지침)을 따라야 한다. 미국의 경우 역사적 건물의 외관이 보존되어야 하며, 역사성을 느낄 수 있도록 (historic look and feeling of the building) 재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가이드 라인이 있다. (☞ 가이드 라인 설명 영어 원문 웹 페이지 보기)

국가에서 이렇게 역사적 가치를 인정한 건물은 HTRC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 미국에선 개발 비용의 20%에 대해 세액공제(세금 크레딧)를 해준다. 뿐만 아니라 비록 역사적 가치는 없더라도 건물 자체가 오래됐다면 개발 비용의 10%를 세액공제하는 HTRC 정책을 쓰고 있다. 미국에선 1936년 이전 지은 건물은 이 제도의 대상이다.

HRTC의 기본적인 금융 구조는 간단하다. 개발 비용의 20%에 대해서 정부가 세금 크레딧을 주는 것이다. '세금 크레딧'이란 정부에 낼 세금을 감면받는 '감세'와는 성격이 다르다. 만약 돈을 많이 버는 영리 회사가 세금 50억 원을 내야 하는데 세금 크레딧 30억 원을 가지고 있다면, 나머지 20억 원의 세금만 내면 된다.

▲ HRTC (Historic Rehabilitation Tax Credit: 역사건물 재생 세액공제)와 LIHTC(Low-Income Housing Tax Credit: 저소득층 주택개발 세액공제). ⓒ김경민

거래 가능한 세금 크레딧…금융 산업도 덩달아 발전

한편, 비영리 회사가 세금 크레딧 30억 원을 가지고 있다면 상황은 다르다. 비영리 회사는 어차피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에 세금 크레딧 30억 원은 그야말로 휴지에 불과할 뿐이다. 따라서 이 세금 크레딧을 비영리회사는 다른 금융기관에 약간 할인된 가격에 팔기도 한다.

즉, '나한테 세금 크레딧 30억 원이 있는데 나는 어차피 사용을 못 하니, 당신에게 25억 원에 팔 테니 사시오'라고 금융 회사에 거래를 제안하면, 금융 회사로서는 30억 원 세금을 내야 할 상황에서 실제로는 25억 원을 쓰고 5억 원을 버는 효과가 발생한다. 이는 백화점 상품권 10만 원이 할인되어 8~9만 원에 거래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정부의 가이드 라인을 제대로 지키면서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경우, 개발자는 전체 비용의 100%가 아닌 80% 정도만 있으면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10억 원의 리모델링 공사를 8억 원으로 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진다.

만약 역사적 건물을 사무용이 아닌 주거용, 특히 저소득층 서민을 위한 임대 아파트로 바꾸려는 경우에는 HRTC와 더불어 저소득층 주택개발 세액공제(LIHTC)이라는 비슷한 성격의 지원을 별개로 받기도 한다.

이러한 세금 크레딧이 주는 또 다른 효과는 월 스트리트 자본들이 도시 재생 사업 (역사 보존 개발 사업)에 참여하게 되는 계기를 부른 점이다. 또한 월 스트리트 자본과 개발자 사이를 연결해 주는 중간 단계의 금융 브로커 회사들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금융 상품이 나타나고 금융 산업이 성장하게 된다. 단순히 도시 재생에 그친 것이 아니라, 금융 산업 성장에 기여하게 된 것이다.

더구나 역사 보전 개발이 성공을 거둔다면, 개발 사업에 자금을 쓰는 금융 회사들에 “오래되고 낡은 건물도 독특하게 변모하고 실질적으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좋은 투자처구나!”란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가져올 수도 있다. 중국 상하이 신텐디 개발이 가져온, 또 미국 뉴욕 맨해튼 미트패킹 지구의 변화가 가져온 패러다임 변화가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금융 회사는 자금을 투여하는 '갑'의 위치에 있고 그들의 결정에 개발자는 승복한다. 한국과 같이 개발자가 자금이 부족한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만약 이들의 이러한 마인드가 바뀐다면, 천편 일률적인 대규모 철거 위주의 재개발이 아니라, 힘들고 오래 걸리더라도 기존 도시의 조직과 가치를 남겨 두는 개발이 가능할 수 있다.

* 다음 주 수요일에 계속됩니다. 김경민의 [도시 이야기]는 책 <리씽킹 서울-도시, 과거에서 미래를 보다>(김경민 지음, 서해문집 펴냄)으로도 출간되었습니다.
김경민의 도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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