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민주화는 지난 대선을 관통한 화두였습니다. 이 화두를 잘 풀어가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주요 과제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경제 민주화에 관한 논의는 무성하지만 이뤄진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갈 길은 멀지만 포기할 수 없는 과제인 경제 민주화를 위해 다시 한 걸음씩 내디뎌야 할 때입니다.
이에 <프레시안>은 '경제 민주화와 재벌 개혁을 위한 국민운동본부' 자문위원회와 공동으로 경제 민주화의 오늘을 짚고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기획 '경제 민주화 워치'를 진행합니다. '경제 민주화 워치' 칼럼은 매주 게재됩니다. <편집자>
현 정부 경제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한 쪽에서는 지금의 경제팀에 대해 “정책을 발표한 것으로 할 일 다 했다는 듯이 국회처분만을 기다리는 무기력한 태도”를 질타한다. 어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공약을 대부분 파기 한 것은 관료들에게 휘둘려서 그랬다”고 주장했다. 좌우를 막론하고 경제팀의 ‘무능’이 비판받는 상황이다. 여기에는 충분히 타당한 이유가 있다. 철학과 소신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기 보다는 대통령 따라 하기에 더 바빴다. 동양사태나 최근의 신용정보유출사태 등 사건사고는 끊임없이 터지는데 나오는 대책은 그 나물에 그 밥이다.
각 부처의 기존 사업들과 숙원사업들을 다시 모아 경제혁신 3개년계획이란 것을 두 달도 안되어서 뚝딱 만들어 내는 능력이야 찬탄할 만하지만 재탕 삼탕이다. 더구나 100여 가지나 나열된 된 서로 얽히고 설킨 온갖 난제들을 어떻게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얻어 풀고 실행할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국민에게는 야당 대변인이 논평했듯이 “이 정부의 관계자들은 왜 한결같이 국민들의 염장을 지르는지 모르겠다”는 평가가 가슴에 와 닿는다. 세금문제와 관련된 “거위털 뽑기”가 그랬고, 카드정보유출사태와 관련해서 “어리석은 사람은 무슨 일이 터지면 책임을 따진다”는 말도 그랬다. 대통령도 관료를 탓한다. “공직자들의 적절하지 못한 발언으로 인해 국민 마음에 상처를 주고 불신을 키우는 일들이 벌어져 유감”이라 했고, “재발 시엔 그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고 야단쳤다.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는 대통령이 왜 꼭 그 사람을 써야 하는지 자세한 내막이야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 볼 것이 있다. 누군가 유능하고 국민 염장지르는 말 안하는 사람이 오면 해결될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경제팀과 관계없다는 듯이 한 걸음 떨어져서 야단쳐도 될 일이 있고, 그렇지 못한 일도 있다. 전자는 관료개인의 문제이고, 후자는 정권자체의 문제이다.
“관료 두들겨 패기가 최근 절정에 이르고 있다. (…)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복지부동’의 소신없는 집단으로, 기업은 기업대로 갈 길 바쁜 기업의 발목을 잡는 무능한 집단으로, 일반국민은 부패하고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집단으로 관료를 몰아 붙인다. (…) 관료들은 청와대 등 정치권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때마다 속죄양 구실을 해 왔다. 관료들은 정치권의 선명성을 부각하기 위한 사정대상이었고, 이른바 개혁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에는 부처이기주의로 추궁받았으며, 중요한 정책에 차질이 생길 때는 공무원의 복지부동이 문제가 됐다.”
위의 인용은 최근이 아니라, 1994년 5월 30일 한 일간지에 실린 기사이다. 공무원의 복지부동이 한창 사회적 이슈가 되던 문민정부 때이다. ‘복지부동’과 ‘무능’은 분명히 다른 것이지만 이 둘은 겉모양만 봐서는 구별하기 쉽지 않으니, 복지부동을 무능으로 바꾸어 놓으면 지금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중부에 있는 한 농업지역에서 공공주택의 임대를 두고 타운(town)의 공무원들에게 던져진 난제가 있었다. 임대기간이 만료된 주택에 아이없는 백인부부와 6세 아이를 둔 흑인 부부가 동시에 임대신청을 했다. 그런데 관련된 두 법률이 상충할 수도 있는 상황이 발생했다. 피부색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공정주거법(State Fair Housing Law)과 아동의 활동공간에 납이 들어간 페인트 사용을 금지하는 법률(lead based paint act 1978, 한국에서는 2013년에 어린이 활동공간에 납페인트 사용이 금지된다)이 그것이었다. 대상이 된 임대주택은 납페인트 금지 법률이 제정된 1978년 이전에 지어진 것이라서 세월이 가면서 수십차례 덧칠된 바닥 페인트에 납페인트가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우여곡절 끝에 백인 부부에게 임대하자니 흑인부부가 공정주거법 위반으로 소송할 판이 되었고, 흑인부부에게 임대하자니 납페인트 금지법에 걸릴 위험이 매우 큰 상황이 되고 말았다. 타운의 공무원은 결국 임대를 주지 않고 빈집으로 버려두기로 하고 발을 뺐다. 보기에 따라서는 전형적인 무능이고 복지부동이고, 공공재산관리에 대한 직무유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의 태도를 이해할 여지가 있는 것은 그에게 상충된 지침이 동시에 주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현 경제팀에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다만 경제민주화가 국정철학인지 선거전략에 불과했는지 말장난으로 헷갈리게 만들고, 스스로도 혼란스러운 창조경제가 무엇인지 빨리 내 놓으라고 관료를 닦달하는 집권층의 책임이 없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 결과 국정철학과 정책의 최종목표, 정책 성과를 측정하는 방식과 지표, 정책수단을 설정하고 우선순위를 세우기가 어렵게 되었다. 국정철학과 정책의 최종목표를 제시하는 집권층의 역할이 충분하지 않으면, 관료는 목표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무기력에 빠지기 쉽다. 의욕있는 관료라면 국정철학도 성과를 측정하는 방식과 지표도 자기가 만들어야 하고, 그 평가도 스스로 하게 되는 상황에서 독단과 자의성을 발휘하기 쉽다.
만약 비판받는 관료의 ‘무능’에 집권층의 책임이 있는 것이라면, 다른 유능한 사람을 바꿔 놓아도 여전히 무능논란은 계속될 것이다.
앞에 이야기한 1994년 당시 기사의 마무리는 다음과 같았다. “재무부의 한 관리는 “이전에는 행정이 정치권의 역할까지 떠맡아 온 부분이 많았으나 지금은 행정의 역할이 본연의 서비스기능으로 바뀌고 있는 중”이라면서 “최근의 관료비판은 이 과정에서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정치권이 행정부에 책임을 전가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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