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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도, 국가도 '만능 해결사' 아냐…판을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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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도, 국가도 '만능 해결사' 아냐…판을 바꿔야"

[프레시안 조합원 교육 ②]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지난달 27일 '사회적 경제가 답이다'란 주제로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장의 강연을 개최했다. 지난달 6일부터 매월 한 회씩(2월은 2회) 진행 중인 연중 조합원 교육의 두 번째 일정이다.

90여 분에 걸친 강연에서 정 원장은 책 <협동의 경제학 : 사회적 경제 협동조합 시대의 경제학 원론>(정태인·이수연 지음, 레디앙 펴냄) 360페이지에 달하는 이야기를 간추려 풀어냈다. 강연이 열린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아이쿱 협동조합 지원센터' 1층 교육장은 프레시안 조합원 40여 명으로 가득 차, 일부는 선 채로 강연을 들었다.

정 원장은 '사회적 경제'를 본격 설명하기에 앞서, '경제학'과 '가격'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강연을 시작했다. 지금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고 친숙한 개념이지만, '가격'이란 개념이 탄생한 지는 고작 3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시장의 가격조정 메커니즘을 '보이지 않는 손'에 빗댔던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1766)이 나왔던 절대왕정 시기에는, 가격은 혁명적인 개념에 가까웠다.

"오늘날 경제학자들은 시장의 '가격'의 조정 기능을 신앙처럼 신봉합니다. 정작 '보이지 않는 손'을 말한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의 상당 부분을 시장 실패에 할애했지만요. 지금 경제학자들은 그 중요도를 상당히 적게 여기지요. 주류 경제학은 언제나 '인간은 이기적이다', '시장은 효율적이다'라고 가정합니다. 그래서 시장 원리를 해치는 개입을 싫어하고 작은 정부를 지향합니다."

인간, 정말 이기적인가?

그렇다면, 인간은 정말 이기적일까. 경제학의 이 불변의 '가정'은 언제나 옳을까. 정 원장은 이런 질문을 던지며 이른바 '최후통첩 게임(Ultimate Game)'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하늘에서 1만 원이 떨어졌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다른 이에게 얼마를 내어줄지를 제시한다. 만약 제안받은 사람이 상대방이 제시한 금액을 거부하면 1만 원은 누구에게도 가지 않고 공중으로 사라진다.
실험 결과, 앞선 경제학자들의 수많은 실험 결과와 마찬가지로 프레시안 조합원들 역시 대체로 1만 원을 5000원씩 나눠 갖거나 4000원과 6000원으로 나눠 가졌다. 정말 이기적 인간이라면, 상대방에게 1원을 제시해야 했다. 또 제시받은 사람은 어쨌거나 0원보다 큰 1원을 거부하기보다 챙겼어야 한다. 그런데 결과는 생각보다 '공평'했다.

"이 게임을 수차례 반복해도 9999원과 1원이란 결과는 나오지를 않습니다. 이를 두고 경제학자들은 1원을 제시하면 상대가 거부할 가능성 높아서라고 설명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실험 결과 최대 2500원까지 많은 경우 거래가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물어보니 'It's not fair(공평하지 않아서)'란 대답이 많았습니다. '너 죽고 나 죽자'란 생각을 하는 겁니다.

행동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최후통첩 게임의 결과를 바탕으로 두 가지를 도출했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남의 눈치를 본다', 그리고 '불공정 행위가 일어나면 '응징'을 한다.' 우리는 실제로 이렇게 살지요. 경제학자들만 아니라고 합니다."

'너 죽고 나 죽자'. 정 원장의 말처럼 실제 경제 세계에서는 이런 식의 선택이 굉장히 많이 일어난다. 이를 정 원장은 '상호성(Reciprocity)'이라는 단어로 설명하며, 상호성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했다.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에게는 잘 대해준다는 '양의 상호성'과 상대가 이기적인 행동을 하면 응징한다는 '음의 상호성'이다.

▲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지난달 27일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장의 강연으로 두 번째 조합원 교육을 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시장도, 국가도 해결할 수 없는 '사회적 딜레마'

정 원장은 이어 이기적인 인간은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동시에 강력한 국가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 설명해 나갔다. '상호성'을 가진 인간과 사회만이 해결할 수 있는 이른바 '사회적 딜레마'들이다.

예컨대 가로등이나 등대와 같은 공공재를 떠올려 보자. 공공재는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을 띤 재화이기 때문에, 이기적인 인간은 공공재를 공급하려 하지 않는다. 즉, 시장은 공공재를 충분히 공급하지 않는다. 그래서 경제학에서는 공공재를 '국가'가 공급해야 한다고 한다.

"경제학은 국가가 공급해야 한다지만, 국가가 모든 것을 다 해주지는 않습니다. 대표적인 공공재인 민주주의가 그렇습니다. 민주주의를 알아서 도입하는 국가도 없습니다. 미쳤나요. 독재가 훨씬 편합니다. 시장이 민주주의를 만들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만들어집니다."

대표적 '시장 실패'인 '공유지의 비극' 또한 시장이나 국가가 해결할 수 없는 사회적 딜레마가 적지 않게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공유지의 비극을 해결하기 위해선 더 강력한 사유 재산권을 정립하거나 강력한 국가의 규제가 필요하다고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단 것이다.

"바닷속 고등어를 두고 중국과 한국이 갈등하고 있다고 합시다. 바닷속에 담 칠 수 있나요. 없습니다. (사유화 불가) 국가가 규제할 수 있나요. 중국 어민이 더 많이 잡는데 우리 어민만 통제하면 다음 선거에서 불리해지니 그럴 수도 없습니다. (국가 통제 불가) "

'죄수의 딜레마'를 '사슴 사냥 게임'으로…"판을 바꿔라"

시장도, 국가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 그런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는 '사회적 경제'에 있다고 정 원장은 말한다. 게임 이론으로 설명하면, 죄수의 딜레마나 치킨 게임의 상황을 '사슴 사냥 게임' 형태로 바꾸어야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생긴다는 것이다.

여기서 게임 이론이란 각 경제 주체가 협동과 배신이란 두 전략 중 무엇을 택하느냐에 따라 각각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살펴보는 경제학 이론이다. 예컨대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2명 이상의 공범이 각각 분리되어 경찰관의 심문과 설득을 당하면 결국 상대방을 신뢰하지 못하고 공범의 죄를 털어놔 최악의 게임 결과로 귀결된다.

"실제 세계에서는 사교육이 이런 상황에 속합니다. 다른 부모가 사교육을 시키면 나도 시키겠지요. 안 시키면 그래서 나는 사교육을 시킵니다.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로는 사교육 문제가 심각해지고, 각각의 부모와 아이에게도 해로운 상황이 생깁니다."

한편, 치킨 게임이란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자동차 게임으로 두 차량이 양쪽에서 서로 마주 보고 달리다 충돌 직전까지 운전대를 꺾지 않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마지막 순간에 핸들을 꺾는 사람이 패자가 된다. 두 사람 다 끝까지 달리면 승자는 될지언정 파국을 맞게 된다.

"치킨 게임은 당장 지난해 대선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치킨 게임에서 이기려면 '나는 (끝까지 가는) 미친놈'이라는 신호를 보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미친 후보(게임에서의 승자) 하나와 바보 후보(패자) 하나가 탄생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선거에서 집니다."

마지막 사슴 사냥 게임에선 사회적으로도 이롭고 개인에게도 이로운 균형이 존재한다. 사슴 사냥 게임은 두 사람이 한 길목을 막고 협동해서 사슴을 잡는 게임이다. 사슴을 기다리던 중 두 사람 앞으로 사슴보다는 작은 토끼가 지나간다면 어떤 선택이 가장 합리적일까.

상대가 토끼를 향해 쫓아가면, 나도 길목을 버리고 토끼를 쫓는 게 유리하다. 상대가 길목을 지키면 나 역시 길목을 지키는 게 유리하다. 적어도 두 사람이 모두 길목을 지켜서 사슴을 잡을 기회가 존재하는 것이다.

"해결의 실마리는 여기에 있습니다. 죄수의 딜레마나 치킨 게임 형태의 사회적 딜레마를 사슴 사냥 게임의 형태로 만드는 것입니다. 예컨대 죄수의 딜레마나 치킨 게임 상태인 남북 관계에선 '햇볕 정책'을 써야 사슴 사냥 게임 형태가 됩니다."
▲ 정 원장은 이날 강연에서 '인간에겐 이기성, 공공성, 상호성 이 모든 속성이 있다. 시장 또한 따라서 다원적으로 공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어떻게 '판' 뒤집을까…"사회적 경제 키워야"

결국 판의 흐름을 바꿔야 한단 얘기다. 그리고 그 방법은 '협동'이라고 정 원장은 말했다. 그는 생물학자 마틴 노박의 최근 번역된 책 <초협력자>를 소개하며, 나약한 인간이 백만 년에 가까운 수렵 시기를 보내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협동(부족 생활 등)'했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협동을 도입하면 죄수의 딜레마나 치킨 게임이 사슴 사냥 게임으로 바뀝니다. 일단 사슴 사냥 게임을 만든 다음에 중요한 것은 상대도 협동할 거라는 걸 믿는 일이겠지요. 협동에서는 이처럼 '신뢰'가 무지무지 중요합니다.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입니다. 신뢰에 의해서만 협동이 일어납니다."

정 원장은 신뢰를 만드는 방법으로 '제도'와 '사회 규범', '네트워크', 이 세 가지를 내세웠다. 예컨대 다른 부모도 사교육을 안 시킬 거라고 믿을 수 있도록 사교육을 제한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협동하지 않고 이기적인 행동을 하면 발각되지 않아도 '죄의식'을 느끼게끔 하는 사회 규범을 정착시켜야 한단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네트워크'다. 정 원장은 협동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사회, 즉 사회적 경제가 뿌리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비교적 협동을 잘하는 북유럽에서는 '신뢰' 지수가 굉장히 높습니다. 반면 시장 경제가 발달한 국가일수록 신뢰 지수가 굉장히 낮습니다. 스웨덴과 미국 사회를 비교하면 됩니다. 우리나라는 30년 전과 비교해서 어느 쪽으로 변했을까요. 훨씬 이기적인 사회가 됐습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1997년 외환위기였습니다. 경쟁과 이기가 우리 사회를 이렇게 (신뢰하지 않고 협동하지 않는 사회로) 만든 겁니다."

정 원장은 "분명 경쟁이 효율을 높이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그는 "특히 생산력과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경쟁과 시장이 도입된 300년 전부터"였다며 그러나 경쟁과 효율만이 강조된 "시장 경제 사회는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하지 못해 혼란을 키운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이 사회적 경제입니다. 사회적 경제는 인간의 상호성에 근거해서 신뢰와 협동을 통해서 연대를 결성하는 것입니다. 시장 경제와 국가 독점주의 이전에 인류 역사에서 가장 먼저 있었던 경제인 사회적 경제를 키워야 합니다. 인간에겐 이기성, 공공성, 상호성 이 모든 속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시장 또한) 다원적으로 공존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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