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기업은 현대와 기아자동차에 피스톤링, 실린더라이더와 같은 핵심 엔진 부품을 납품하는 자동차 부품 회사입니다. 아산과 영동에 공장을 두고 706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는 중견기업입니다.
2012년 말 기준 매출액 2987억 원, 당기순이익 268억 원이고, 직원 평균 연봉이 6000만 원으로 대기업 부럽지 않은 회사입니다. 그런데 2004년 회사에 입사해 10년을 일한 금속노조 유성기업 홍종인(41) 아산지회장은 자기 회사의 대표이사를 구속하라며 싸우고 있습니다.
그는 2012년 10월 21일부터 2013년 3월 20일까지 유성기업 아산공장 앞 5미터 높이 굴다리 난간에 올라 151일 동안 농성을 벌였고, 다시 10월 13일부터 올해 2월 18일까지 유성기업 영동공장에서 가까운 경부고속도로 옥천나들목 22미터 높이 광고탑 꼭대기에서 129일 동안 고공 농성을 했습니다.
하늘에서 보낸 시간이 무려 10개월, 280일입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연말과 새해와 설날 명절을 모두 고공에서 보냈습니다. 지금은 중학교 2학년이 된 하나뿐인 아들의 한 번뿐인 초등학교 졸업식과 중학교 입학식도 갈 수 없었고, 설날 아침 아버님의 차례상에 절을 올리지도 못했습니다.
홍종인 지회장은 지난 18일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내려왔습니다. 이정훈 영동지회장은 아직도 광고탑 꼭대기에서 새벽 추위보다 더 고통스러운 고립감을 견디며 유시영 대표이사 구속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유성기업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노동자들이 이토록 고행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요?
하늘에서 보낸 280일
3년 전입니다. 2011년 5월 18일 금속노조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단체교섭 합의 이행을 요구하며 2시간 파업을 했습니다. 그러자 회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직장폐쇄 공고를 부착했고, 용역 깡패를 투입했습니다. 경찰이 난입하고 노조 간부들이 구속, 해고되고 손해배상과 가압류가 청구되고 복수 노조가 만들어졌습니다. (☞관련 기사 보기 : 구사대 동원 트라우마, 유성기업 노동자 자살)
유성기업이 엔진 부품을 공급하지 않으면 현대와 기아자동차도 멈춥니다. 원청인 현대차의 승인 없이 유성기업이 독자적으로 직장 폐쇄를 하지 못합니다. 현대차가 생산이 멈추는 한이 있더라도 유성기업에서 노조를 깨는 것에 동의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높은 월급입니다. 홍종인 지회장은 2004년 입사 당시 연봉이 3900만 원이었습니다. 유성기업지회는 2007~2008년, 2010년 기본급을 9만3000원(일급 3100원) 인상했고, 경제 위기로 인해 대다수 사업장에서 임금 동결과 삭감이 이뤄졌던 2009년에는 기본급 7만 원(일급 2500원)에 조합원 수당 7만 원까지 14만 원을 올렸습니다.
노동자들에게는 기본급이 중요합니다. 잔업, 특근, 연월차 수당, 상여금을 계산할 때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금속노조는 매년 기본급을 높이고 성과급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임금인상 방향을 설정했습니다.
현대차 정규직 노조는 기본급을 적게 올리고 성과급과 주식에 매달렸습니다. 2009년 경제 위기를 이유로 자동차 수출이 급감하자,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임금 동결에 합의했고 대신 성과급을 챙겼습니다. 성과급이나 주식이라는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내일의 이익’을 추구했던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높은 임금 인상이 현대차에는 눈엣가시였습니다.
현대차보다 높은 유성기업 임금인상
두 번째, 유성기업은 비정규직 없는 공장입니다. 2012년 유성기업 사업 보고서의 직원 현황표를 보면, 계약직 노동자가 한 명도 없습니다. 청소, 경비, 식당을 제외한 생산 현장에는 단 한 명의 비정규직이나 사내하청 노동자도 없습니다. 생산직과 사무직 노동자 모두가 정규직인 회사입니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단체협약 43조 ‘사내 하청의 사용 제한과 불법 파견 금지’에 “회사는 정규직의 업무를 파견, 용역으로 대체해서는 안 된다”와 “회사는 불법 파견을 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따냈고, 이를 지켜왔습니다.
회사는 생산 일부를 외주화하거나 사내 하청 노동자를 사용하고 싶어 했지만 노동조합은 원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유성기업 노동자들 중에서 가장 늦게 입사한 홍종인 지회장이 정규직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유성기업을 비롯해 비정규직 없는 공장들이 언론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생산 현장에 1만 명에 달하는 사내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사용하고 있고,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에서 불법 파견이 확인됐으며,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25일 동안 공장을 점거하며 정규직 전환을 요구한 현대자동차에 ‘비정규직 없는 공장’ 유성기업의 노조는 없애고 싶은 노조였습니다.
비정규직 많은 현대차, 비정규직 없는 유성
세 번째, 유성기업은 가장 먼저 심야 노동을 없애기로 합의한 공장입니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2009년 단체 교섭에서 '2011년 1월부터 주야 맞교대에서 주간 연속 2교대로 전환'하기로 합의했고, 세부적인 논의를 위해 특별 교섭을 진행해왔습니다.
현대자동차는 임금과 노동 강도 강화 문제로 인해 주간 연속 2교대제를 시행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유성기업에서 임금 삭감 없고, 노동 강도가 강화되지 않는 노동시간 단축이 이뤄진다면 현대차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짓누르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2011년 5월 18일 공격적인 직장 폐쇄가 이루어졌을 때 유성기업 주차장에 있던 현대차 구매 담당 총괄 이사의 차량에서 문서 하나가 발견되었습니다. 대외비로 작성된 문서에는 “현대차의 주간 연속 2교대제 도입과 관련 미칠 영향을 우려, 유성기업의 주간 연속 2교대제 도입을 막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 문서에는 ‘현대차/기아차 시행전 선(先) 시행 노사 합의 방지’를 위해 “현대차 시행 후 3개월 내 시행 추진 등의 형태로 도입을 위한 실무 TFT 구성 등” 구체적인 권고까지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 유성기업 회사는 '불법 파업 유도→직장 폐쇄→용역 경비 동원 공장 출입 봉쇄→공권력 투입→노조 파괴'라는 시나리오를 작성해 현대자동차 담당 임원에게 전달했던 것입니다.
현대차보다 먼저 심야노동 철폐 합의한 유성
노조 파괴 시나리오가 현대차와 유성의 합동 작전이라는 것을 보여주듯 유성기업 파업 직전 현대자동차는 유성기업의 생산직 노동자 연봉이 7015만 원이라는 자료를 공개했고, 보수 언론과 경제 신문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5월 24일 공장에 경찰력을 투입해 530명을 연행했고, 5월 30일 라디오 연설에서 “연봉 7000만 원을 받는다는 근로자들이 불법 파업을 벌이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며 “평균 2000만 원도 채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아직도 많은데, 그 세 배 이상 받는 근로자들이 파업을 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009년 쌍용차 살인 진압 이후 발레오만도를 비롯해 많은 부품 회사의 민주노조가 ‘창조컨설팅’이라는 노조파괴 전문기업의 공격으로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무릎 꿇지 않았습니다. 공장을 빼앗긴 노동자들은 길거리에 비닐 천막을 치고 살면서 싸웠습니다. 17명이 구속되고 27명이 해고되고 300명이 징계를 받고, 12억의 손해배상 가압류를 당하고, 국가로부터 1억2000만 원의 손배를 맞았지만 당당하게 맞섰습니다.
관리직들까지 위장 가입한 어용 복수노조에 의해 대표 교섭권이 빼앗기고 민주노조 조합원들은 온갖 차별과 징계를 당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151일 동안 굴다리 고공 농성에 이어 2차 고공 농성을 전개하며 민주노조 파괴 시나리오를 폭로하고, 사회적인 항의를 만들어냈습니다. 마침내 이탈했던 조합원들이 다시 민주노조로 돌아와 대표 교섭권을 확보했습니다.
빼앗겼던 교섭권을 되찾은 민주노조
2011년 6월 11일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 위태롭게 매달려있는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러 희망버스가 출발하고, 사회적 운동으로 만들어졌을 때 유성의 노동자들은 가장 먼저 희망버스를 탔습니다.
홍종인 지회장이 굴다리 난간에서 151일, 광고탑에서 129일 동안 매달려 있었을 때, 희망버스는 쌍용차 평택공장과 현대차 비정규직, 밀양으로 향했습니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한마디 불평도 없이 희망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는 “더 절박하고 간절한 곳으로 희망버스가 가기를 바랐기 때문에 단 한 번도 희망버스를 요청해 볼 생각을 못 해 봤다”고 말합니다.
3년 만에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향해 희망버스가 출발합니다.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선생님과 한진중공업 희망버스를 탔다가 교육부의 징계를 받고 명예교수 심의를 배제당했던 김세균 서울대 명예교수의 제안에 따라 3월 15일 유성 희망버스가 떠납니다.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가압류를 당해 고통 받는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노란 봉투’ 운동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4만7000원이라는 따뜻한 마음을 모으는 것과 함께 손배‧가압류를 없애기 위한 따뜻한 발걸음이 필요합니다.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내일의 이익을 위해 싸웠고, 나만의 이해가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이해를 위해 싸웠던 노동자들의 손을 잡는 희망버스입니다. 비정규직 없는 공장, 심야 노동 없는 인간다운 일터를 만들기 위해 싸웠던 노동자들의 어깨를 두드리는 희망버스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힘내라 민주노조 유성 희망버스’입니다.
280일 동안 하늘에 매달려 있으면서도 자신보다 더 절박한 노동자를 걱정했던 홍종인 지회장과 140일 동안 하늘 위에서 고립감을 견디고 있는 이정훈 지회장의 손을 잡기 위해 떠나는 아름다운 발걸음입니다.
‘힘내라, 이정훈! 힘내라, 민주노조’ 유성기업 희망버스* 일시 : 2013년 3월 15일(토) - 16일(일), 1박 2일* 구체 일정 및 내용- 3월 15일 오전 10시 : 전국 희망버스 출발- 3월 15일 오후 1시 : 옥천IC 고공 농성장 <힘내라, 이정훈! 힘내라, 민주노조> 연대 마당- 3월 15일 오후 5시 : 유성기업 본사(아산공장) 도착손배·가압류 없는 세상, 노동 탄압 없는 세상 쟁취(가칭) 결의 마당- 3월 15일 오후 7시 이후 : 희망버스 연대 마당- 3월 16일 오전 8시 : 노동이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기원탑 쌓기- 3월 16일 오전 9시 : 폐회* 유성기업 노조는 3월 4일부터 8일까지 전국 순회 투쟁에 나섭니다.* 당일, 전해투에서는 ‘전국해고노동자 연대의 날’을 함께 진행합니다.* 당일, 민주노총·금속노조 등은 확대간부 전원이 희망버스에 탑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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