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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들 잊어버리지 마"···또 기약없이 헤어진 이산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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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들 잊어버리지 마"···또 기약없이 헤어진 이산가족

설계기 이산가족 상봉 마무리···상봉 정례화 목소리 높아

25일 오전 작별상봉을 끝으로 설계기 이산가족 상봉이 모두 마무리됐다. 60여 년 만에 재회의 기쁨을 누렸지만 기약 없는 헤어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가족들은 또다시 이별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이날 오전 9시경 시작된 작별상봉에서는 지난 1차 상봉과 마찬가지로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고향의 봄”, “가고파” 등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이별의 아픔을 달래는 가족들도 있었다. 또 가족들은 서로의 주소를 교환하고 동네 약도를 그려주는 등 후일 만남을 기약하기도 했다. 나이 든 형님을 마지막으로 업어주고 싶다며 면회소 바깥까지 형을 업은 채로 배웅을 한 가족도 있었다.
▲ 이산가족 상봉행사 2차 마지막날인 25일 오전 금강산면회소에서 열린 작별상봉을 마친 북측 상봉자들이 버스에 탄 채 눈물을 흘리며 남측 가족들의 손을 붙잡고 있다.ⓒ연합뉴스
북측 오원근(81) 씨의 동생인 오정분 씨는 휠체어를 탄 오빠에게 “오빠, 오정분이 누구야, 오동근(원근 씨의 남동생)은 누구야”라며 오빠가 자신들을 잘 기억할 수 있는지 연신 확인했다. 원근 씨가 “동생”이라고 말하자 정분 씨는 “그래 오빠 동생들 잊어버리지 마”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작별 상봉이 끝나고 북측 가족들이 먼저 차량에 탑승하자 이정우 씨는 오빠인 리현우(83) 씨를 찾으며 까치발을 들고 버스에 매달린 채로 오열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 씨는 버스에 탄 북측 가족들에게 몇 번이나 인사를 건넸다.
작별 상봉을 지켜보고 있던 남측 이산가족 상봉단장 김종섭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는 북측 리충복 조선적십자회 중앙회 부위원장에게 “기다리시는 분들 많다. 시급한 문제다. 한 번 더 하자”고 말했지만 리 단장은 “(이제 평양으로) 가는 게 문제”라고만 답했다. 그는 “북남관계 한 단계 더 발전시켜야 한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하지만 이날 북측 관계자들은 상봉에 호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북측 가족들이 버스에 탑승한 뒤 남측 가족들이 자신의 가족이 어디 있는지 잘 찾지 못하자 한 북측 관계자는 “몇 번 가족 찾으시냐”고 물어보면서 가족들을 안내해줬다. 또 몇몇 남북 적십자 관계자들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다음에 다시 만납시다”라고 인사하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고령화된 이산가족, 상봉장까지 가는 것도 쉽지 않아
이번 설 계기 이산가족 상봉에는 남측 82가족, 북측 88가족이 재회의 기쁨을 누렸다. 하지만 원래 계획했던 100가족 모두가 상봉에 참석하지는 못했다. 이산가족들 대부분이 70세 이상 고령이기 때문에 건강 문제 등으로 중간에 상봉을 포기한 인원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할 당시에도 건강 문제로 인해 100가족 중 96가족만이 상봉에 참여하기로 했다. 상봉이 무산된 이후 6개월 만에 재추진된 이번 상봉에는 이보다 더 줄어든 82가족만 참가했다. 상봉 대상 가족 중 이미 2명은 세상을 떠났고 12명은 건강 악화로 상봉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북측 역시 비슷한 이유로 100가족에서 88가족으로 줄었다.
상봉이 시작된 이후 중도에 포기한 가족도 있었다. 구급차를 타고 금강산으로 들어간 김섬경(91) 씨와 홍신자(84) 씨는 건강 악화로 결국 예정된 2박 3일 일정을 모두 채우지 못하고 둘째 날 오후 남측으로 귀환했다.
▲ 설 계기 이산가족 상봉행사 1차 둘째날인 21일 오후 김섬경(91)할아버지가 건강상의 이유로 북측 아들 김진천(66), 딸 김춘순(68)씨와 구급차 안에서 하루 이른 작별상봉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상봉을 중단하진 않았지만 건강 문제를 호소한 상봉자도 많았다. 1차 상봉 당시 휠체어를 타고 금강산으로 올라간 상봉자는 19명에 달했다. 1차 상봉 마지막 날에는 5명의 상봉자가 건강 문제 때문에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치매 증세로 60여 년 만에 만난 딸을 알아보지 못한 상봉자도 있었다.
짧은 만남 이후 기약 없는 헤어짐을 해야 한다는 것도 고령의 상봉자들에게는 굉장한 심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 1시간 정도의 작별 상봉 중 감정이 격해져 탈진, 30분 만에 상봉을 중단한 경우도 있었다.
이벤트성 상봉 아닌 정례화 추진해야
이산가족의 고령화로 상봉을 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는 신청자가 시간이 갈수록 많아지면서 명절 계기 이벤트성으로 치러지는 지금과 같은 상봉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가 공동운영하는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따르면 이산가족의 고령화로 지난 2003년 이후 매년 평균 3800명 정도의 이산가족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상봉자 수는 매년 1800명에 불과해 연평균 2000명 정도의 이산가족이 북측 가족의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유명을 달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시스템에 등록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지난 1988년부터 지난해 12월 말까지를 기준으로 12만 9264명이다. 그러나 이 중 44.7%에 달하는 5만 7784명이 세상을 떠났다. 생존자가 7만 1480명이지만 이 가운데 80세 이상이 52.8%, 90세 이상이 11.1%에 달해 북측의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사망하는 상봉 신청자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같은 상황 때문에 상봉자를 선정하는 방식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세종연구소 정성장 수석연구위원은 “상봉 이산가족 선정이 현재의 ‘추첨’ 방식이 아니라 ‘고령자 우선’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면서 “특히 상대적으로 기대여명이 적은 90세 이상 이산가족의 상봉부터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또 일시적 상봉이 아닌 정기적인 상봉을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 수석연구위원은 “현재의 모든 생존자들이 향후 생애 한 번이라도 상봉하기 위해서는 매년 상봉 규모를 7200명 정도로 늘려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매달 600 가족, 매일 약 20여 가족의 상봉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규모의 이산가족 상봉을 북한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객관적인 경제적 수치에서 남한보다 열세인 북한이 대규모 상봉을 추진하는 것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수석연구위원은 또 “북한 당국은 이산가족 상봉이 체제에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것을 우려한다”면서 상봉 규모의 확대가 남한의 의지만으로는 이루어지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는 상봉 규모 확대를 위해서는 금강산 관광 재개 및 5.24조치의 단계적 해제 등을 협상 카드로 내밀어 북한의 협조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은 현재 부족한 외화 획득을 위해 금강산 관광 재개를 요구하고 있고 남북경협 확대를 위해 5.24 조치 해제를 희망하고 있다”며 이 두 사안을 남북이 합의한다면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북한의 적극적인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봉 정례화와 더불어 남북 이산가족의 서신 교환과 생사 확인 등 이산가족들이 숙원하고 있는 사안들을 추진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의 협조는 필수적인 요건이다. 정 수석연구위원은 “현실적으로 (북한에) 경제적 보상을 제공하지 않고 상봉의 확대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같다”면서 정부의 전향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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