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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왕국' 박근혜, 지지율은 왜 훈훈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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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왕국' 박근혜, 지지율은 왜 훈훈할까?

[편집국에서] '따뜻한 박근혜'는 원래 없었다

"표정이 달라졌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박근혜 대통령 얘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느 날 갑자기 쌍꺼풀 수술을 하고 나타났을 때의 어색함이 아니다. 안경의 위대함을 일깨워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이미지 변신과도 다르다. 미소를 머금어도 차갑다고 한다. 혹은 무섭다고 한다. 1년 전이나 오늘이나 단아한 얼굴 그대로인데, 대체 왜? 박 대통령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서만 그런 얘기를 들었으니 그네들의 편견일 것이다.

물론, 관심 없으면 편견도 안 생긴다. 1년 전 이들은 박 대통령의 유전자까지 살폈다. 빼도 박도 못하는 5년, 기도하듯이 박정희보다 육영수가 발현되기를 바랐다. 박정희와 육영수에 대한 대중들의 신비화된 이미지가 그러하니, '따뜻한 보수'에 대한 기대가 박근혜에게서 육영수를 읽어내려는 최면의 바탕이었을 것이다. 그런 심리와 비슷한 취지의 글을 나도 쓴 적 있다. 교훈을 얻었다. 역시 사람은 비과학적으로 살면 낭패를 본다는.

비과학적 영역에 '미스테리'가 하나 더 얹혔다. 따뜻한 보수는커녕 얼음장 같은 공안 정치로 내달려온 1년, 그런데도 50%를 넉넉히 상회하는 지지율의 비밀이 뭐냐는 거다. 경제 민주화란 용어는 애진즉 사라졌고, 복지는 나중에 나라 곳간 차고 넘칠 때에나 베풀어주겠다고 한다. 정권의 정통성 시비가 끝날 줄을 모르고, 권력기관들은 죄다 박근혜를 위해서만 존재한다. 대통령 주변에는 70년대식 사고방식을 가진 올드보이들이 수두룩하고, 불통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런데도 대중들은 왜?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모습 ⓒ청와대

조지 레이코프의 이론이 한국에서 인기를 끈 적이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이 '잃어버린 10년'으로 손가락질 받던 즈음, 거의 모든 선거에서 한나라당(새누리당)에 판판이 깨진 민주당이 권력을 내주고 헤매던 즈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주로 야권의 선거 전략 지침서로 각광받았지만, 언어학자인 그가 말하는 핵심은 보수가 어떻게 일상적으로 세상의 주도권을 쥐고 흔드는가에 있다.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레이코프가 비유하는 '엄격한 아버지' 모델을 그대로 따랐다. 엄격한 아버지는 가족을 지키는 권위자로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지시한다. 이를 위해 두려움과 불확실성을 동원한다. 예컨대, 북한을 극단적으로 악마화하며 '종북주의자'들을 체벌했다. '통일 대박론'은 북한의 불확실성을 가정한 '붕괴론'의 변형이다. 남한에 실존하는 위협의 증거로는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을 찍었다. 종북몰이에 반복적으로 오염된 대중들은 이성적 판단에 앞서 종북 프레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비정상의 정상화' 역시 잘 벼린 규율의 칼이다. 이른바 '박정희 패러다임'을 벗어나려는 시도들의 싹을 잘라냈다. 재벌 중심 경제 이외의 가능성을 경험해보지 못한 대중들의 불안감을 들쑤시며 경제 민주화를 불확실성의 영역에 가뒀다. 노조는 경제 활성화를 가로막는 비리의 온상 취급을 받고 있다. 복지 정책 후퇴를 지적하면 국가 재정을 들이밀어 입을 틀어막았다. 청와대는 취임 1주년에 맞춰 박정희 향수가 물씬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생중계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라고 한다. 대선 민의를 배반하는 방향 전환에 이정표를 또 하나 세우겠다는 뜻이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엄격한 아버지 모델은 소득 하위층과 저학력층, 노년층에서 일관적인 효과를 냈다. 젊은층에선 '일베 현상'으로 가시화됐다. '선량한 시민'으로 훈육되었거나 '잉여'라고 자기비하 하는 이들은 '똑똑한 진보 엘리트'들에 맞서 대리전을 치렀다. 박근혜 정부가 꾀한 분열의 정치는 상대방 지지층에 묶여 있어야 할 대중들을 쪼개는 목적에 정확하게 맞춰졌다는 것이다. '이권 정부'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탐욕적 보수'의 면모를 숨기지 않은 이명박 정부와 달리, 박근혜 정부는 '애국적 보수'와 같은 가치로 실상을 교란하는 능력이 탁월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야당은 야당대로 레이코프가 분석한 패배의 공식을 그대로 따랐다. 레이코프는 진보주의자들이 일종의 신화를 믿는다고 봤다. 이 신화는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합리적인 존재이므로 우리가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주기만 하면 그들은 옳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는 가정에서 비롯된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사건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대중들이 움직일 거란 야당의 구상이 희망사항에 그친 게 단적인 예다. 야당 지도부는 일관성이 없이 흔들리다 제풀에 자빠졌다. 강경파들에게선 대중들과의 눈높이 전략보다 80년대 식 '민주 투사'의 외양을 벗어내지 못한 진보 엘리트주의가 스멀거렸다. 주장의 옳고 그름에 앞서 대중들이 '재수 없다'고 생각하면 프레임 구축은 실패하는 것이다.

탈이념과 중도를 금과옥조로 삼는 경향도 강화됐다. 이념은 엿 바꿔먹는 고물 취급이다. '안철수 효과'가 야권을 지배한 탓이다. 그러나 이는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해 '오른쪽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믿었다. 사실 이것은 역효과를 낸다. 오른쪽으로 이동함으로써 진보주의자들은 실제로 우파의 가치를 활성화하고 자신들 고유의 가치를 포기하고 만다. 또한 이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의 정치적 지지자들을 소외시킨다"고 한 레이코프의 지적과 다른 방향이다.

이런 야당을 상대로 박근혜 정부는 손쉬운 싸움을 해 온 것이다. 대통령의 표정이 달라졌다는 관상론도, 박근혜 지지율 앞에 기가 질려버린 것 같은 소심함도 '정권의 나팔수'라는 종편 이전에 야당이 먼저 유포하는 패배주의가 원인인 셈이다. 하여, 박근혜 정부 1년의 진짜 분석 대상은 야권이며, 야권이 제자리를 찾느냐가 집권 2년차의 항로를 결정하는 핵심이 될 것이라는 말을 외면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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