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년 만에 재회한 남북의 이산가족 중에서는 상봉의 기쁨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봉자들도 있었다. 대부분이 80세를 넘은 고령이다 보니 치매나 난청 등 건강 상태가 좋지 못해 충분한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가족들도 있었다.
64년 만에 부인을 만나기 위해 금강산을 찾은 김영환(89) 씨는 세월의 무게 탓인지 부인 김명옥(86) 씨와 제대로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있었다. 긴 세월이 이들의 사이를 데면데면하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기도 하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난청이었다. 김영환 씨의 보호자로 상봉에 참석한 아들은 “(아버지가) 귀가 안 좋으시니 큰 소리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할머니를 만나셔서 어떠냐고 큰 소리로 묻는 기자의 질문에 김 씨는 “좋지요”라고 웃으며 답했다. 김명옥 씨의 아들도 “어머니가 귀가 안 좋으시다”며 질문에 대답을 제대로 못한다고 설명했다. 64년 만에 만났지만 남편과 부인 모두 고령으로 인한 청력문제로 대화를 이어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이명호(81) 씨도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난청 증상을 겪고 있다. 동생을 만나러 상봉을 신청한 이 씨와 동생 리철호씨는 메모로 대화를 진행했다. 동생이 건넨 메모에는 ‘어머니는 형이 고무신을 사주고 다시 오겠다고 했다’는, 오래전 지키지 못했던 그 약속이 적혀 있었다.
치매 증상으로 북측 가족의 얼굴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상봉자도 있었다. 동생과 딸을 만나기 위해 금강산을 찾은 이영실(87) 씨는 사람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하고, 설사 알아본다고 해도 금방 잊어버렸다. 이영실 씨는 북측 딸인 동명숙 씨가 “엄마랑 나랑 서로 보고 싶어서 찾았잖아요”라고 해도 이 씨는 “예. 그래요?”라고만 답했다. 하지만 이 씨의 눈시울은 어느새 붉어져 있었다.
오랜만에 헤어진 가족을 만났다는 기쁨에 힘들어하는 상봉자도 있었다. 박원숙(82) 씨는 가족을 만나자마자 호흡이 가빠지고 힘들어하는 증세를 보여 현장에 있던 대한적십자사 간호사가 즉시 심장 박동을 확인하고 우황청심환 복용을 권했다. 적십자사는 의료진을 상봉장에 배치하고 구역별로 할당해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이게 다 원수님 덕분입니다
상봉의 기쁨을 나누는 가족들 사이에서는 “당과 원수님께 감사한다”며 북한 조선노동당과 김정은 제1비서에 감사의 뜻을 표하는 말이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김철림(94) 씨의 북측 여동생들은 “장군님이 우리 데려왔다. 이게 다 장군님께서 마련해 준 것”이라며 “신발이랑 내의, 우리 돈 한 푼 안 들이고 오빠 만난다고 (장군님이) 해주셨다”고 밝혔다.
북측의 딸을 만나러 상봉에 참가한 손기호(91) 씨는 딸에게 “고생 많이 했지?”라며 안쓰러운 마음을 드러냈다. 그러자 딸인 손인복 씨는 “나라에서 다 무상으로 해줘서 하나도 고생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는 “우리 원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우리민족끼리 통일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식 자랑으로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표현하는 상봉자들도 있었다. 황덕용(81)씨의 여동생인 황계화 씨는 “오빠를 만났으니 우리 아들들 자랑 좀 해야겠다”며 “첫째, 둘째 아들은 당의 배려로 12년제 무료 교육을 받고 초등과정을 마치고 군대 간 뒤 제대해서 일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 오기까지 우리들은 평양 옥류관과 호텔에서 2박 3일 동안 있으면서 배려를 많이 해줬다. 이게 얼마나 큰 배려냐”라고 강조했다.
“우리 어머니 좀 많이 주세요”
한편 이산가족들은 20일 저녁 만찬을 가지며 첫날 일정을 종료했다. 가족들은 서로 음식을 떠주며 많이 먹으라고 권유하는 모습을 보였다. 테이블 곳곳에서 음식을 나눠주는 도우미에게 “우리 어머니 좀 많이 주세요”라며 부탁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날 북측은 만찬 메뉴로 16가지의 메뉴를 내놓았다.
만찬에는 남북의 적십자 간부들도 참석했다. 대한적십자사 유중근 총재는 만찬 인사말에서 “이산가족은 가장 중요한 인도적 사업”이라며 “시간이 없다, 시간이 지난 후 후회하면 무슨 의미가 있나? (이산가족 문제 해결 방안 마련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측 적십자 중앙위원회 이충복 부위원장은 이번 상봉이 “북과 남이 공동의 노력으로 마련한 소중한 결실”이라고 평가했다. 이 부위원장은 “북과 남이 허심탄회하고 진지한 협의 끝에 귀중한 합의를 이뤄냈다”며 “폭설로 상봉 준비에 어려움도 있었지만 서로 힘을 모아 난관을 극복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날 만찬에 참가한 북측의 한 보장성원은 “남측은 자꾸 진정성 얘기하는데 우리가 더 어떻게 해야 하나”라며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 남북관계 개선하자고 얘기하는데 우리는 잘 될 거로 보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산가족은 이날 일정을 마무리하고 내일은 오전 개별상봉, 공동 중식, 오후 가족단위 상봉을 가진다. 단 금강산 현지에 내리는 눈발이 점점 거세지고 있어 내일 상봉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모습이다. 현재 금강산 현지에는 제설차량을 동원한 제설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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