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대학’ 없는 대학 구조 개혁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대학’ 없는 대학 구조 개혁

[시민정치시평] 국가-사학-시장 삼각동맹 몸집 키우는 대학 개혁안

1월 28일 교육부는 ‘대학 구조 개혁 추진 계획’을 내놓았다. 요지는 간단하다. 학령인구 감소로 2018년이면 대학 입학 정원이 고등학교 졸업자 수를 초과한다. 이에 대비해 미리 정원을 감축해야 한다. 이것이 대학 구조 개혁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에 해당한다. 교육의 질 제고를 통한 대학 경쟁력 강화도 내세웠지만, 부차적인 원인일 뿐이다. 대책은 이렇다. 절대평가를 통해 대학을 5등급으로 나눈다. ‘최우수’ 대학은 자율적으로 정원을 감축하고, 나머지 모든 대학은 등급별로 차등을 두어 정원을 감축한다. 2회 연속 최하위인 ‘매우 미흡’ 등급을 받은 대학은 퇴출된다. 누가 봐도 기업식 구조 조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학령인구 감소가 2014년 오늘의 시점에서 대학 구조 개혁이 절실한 이유의 전부일까. 대학 서열화 현상으로 지방대-지방 사립대-지방 사립전문대가 고사하고 있다. 대학의 80%가 사립인 사학 편중 현상과 고질적인 사학 비리로 인해 교육의 공공성이 끊임없이 훼손되고 있다. 이런 현실 또한 대학 개혁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교육부는 대학 서열화 문제의 경우, 따로 떼어 대책을 마련했다. 앞으로 5년간 1조 원을 지방대에 투자하는 ‘지방대학 특성화 사업’이 그것이다. 막대한 재원을 투자하면서도 여전히 허술한 추진 계획임을 감안하면, 이 또한 정치한 관리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채 지방 거점 대학 중심의 재정 지원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수도권 대학 특성화 사업’도 함께 마련하여 3000억 원을 투자할 예정이라고 한다. 1조 원과 3000억 원이라는 액수의 차이로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학 간의 위계를 극복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놀랍다.

교육부가 갖고 있는 사학 문제에 대한 대책으로는 ‘대학 구조 개혁 추진 계획’ 안에 있는 ‘자진퇴출대학’의 재산 처리에 관한 것이 유일하다. ‘대학 구조 개혁 및 평가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면서 그 안에 자발적으로 퇴출하는 사학에 대해서는 대학 법인 재산의 일부를 설립자 등 재산 출연자에게 반환하는 길을 열어 주는 조항을 넣겠다는 것이다. 현행 사립학교법에 위배되는 특혜를 주겠다는 것으로 상당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대학 서열화와 사학 중심의 대학 체제라는 고등교육의 구조적 문제를 홀대하고 학령인구 감소라는 사회 현상을 대학 구조 개혁의 동력으로 활용하려는 교육부의 자세에서 사회적 신뢰를 잃고 추락해가는 대학의 위상을 감지하게 된다. 사실, 교육부가 대학 평가의 기준을 마련하고 이에 따라 구조 개혁을 추동하는 위로부터의 개혁보다는 대학별로 자신의 실정에 맞는 구조 개혁 방안을 제시하면 교육부가 이를 심사하고 그 시행 과정을 감독하는 아래로부터의 구조 개혁이 민주적이기도 하지만, 실효성이 높을 것이다. 하지만 교육부는 대학을 신뢰하지 않았다. 결국, 대학마다 교육부가 제시한 평가기준을 충족시키고 재정 지원을 받기 위해 스스로 자율성을 포기하고 획일적이고 일방적인 ‘개혁’을 단행하는 비극이 반복될 듯하다.

박근혜 정부는 곧잘 유신 정부와 비교되곤 한다. 국가가 본격적으로 대학 개혁의 칼자루를 쥔 것도 유신 시절의 일이었다. ‘실험대학안’이 그것이다. 실험대학이란 대학 개혁의 선도적 시범 대학이라는 의미와 여건을 갖춘 대학을 선발하여 대학 운영을 실험적으로 시행한다는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었다. 전례가 없던 국가 주도의 대학 개혁안에 대학과 대학인들이 반발했다. 무릇 대학 개혁이란 ‘문교 행정 당국의 일방적 지시명령만으로는 성과를 거두기 어렵고 대학인의 적극적 참여와 자율적 협조를 얻어야 가능’한 것이니 대학 사회의 의견 수렴과 건전한 비판을 귀담아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과 대학인의 반발에 당시 문교부는 대학 개혁의 주체는 대학이니, 행정 규제 방식이 아닌 대학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방향에서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물론 돈의 힘은 컸다. 1973년에 10개로 출발한 실험대학이 1979년 5월 현재 25개 종합대학 중 1개교를 제외한 모든 대학으로 확대되면서 대학에 대한 국가권력의 장악력은 한층 높아졌다. 그럼에도 서슬 퍼런 유신 치하에서 대학과 대학인이 살아 있었고, 국가권력이 대학의 자율성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던 풍경은 낯설기만 하다.

2014년 지금 여기, 대학과 대학인은 자율의 능력과 목소리를 잃었고 국가권력은 대학 자율성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대학 구조 개혁 방안을 ‘포고’한다. 지난 세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990년대를 정점으로 사학 권력은 더욱 비대해졌고, 시장 권력이 대학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사학 권력에 날개를 달아 준 것은 1990년에 개정된 사립학교법이었다. 사학재단에 무소불위의 대학 통제권이 부여되자, 사학들은 족벌 경영과 전횡, 파행적인 학사 운영, 공금 유용과 횡령 등을 자행하는 비리의상으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1996년에 일정 여건만 갖추면 대학 설립을 허용하는 대학 설립 준칙주의가 도입되면서 불과 4년 만에 41개 대학이 설립되기도 했다. 1998년의 대학 정원 자율화는 전적으로 등록금에 의존하는 사학들의 등록금 인상 경쟁을 낳았다. 이처럼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사학 비리’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면서도 사학 권력은 막강한 조직력과 자금력을 바탕으로 국가권력을 농단하거나 때로 유착하며 유유히 개혁의 칼날을 비켜나갔다.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비리로 축출된 구재단 복귀를 거리낌 없이 밀어준 사실에서도 사학 권력의 위력을 감지할 수 있다.

오늘날 대학을 움직이는 또 하나의 권력이 시장 권력이다. 1990년대에 시장 원리에 충실한 대학 개혁이 추진되면서 대학은 시장 권력에 본격적으로 포섭되기 시작했다. 1995년에 김영삼 정부는 5·31 교육개혁안을 발표하고 자본주의적 경쟁 원리에 최적화하는 방향의 대학 개혁을 추진했다. 이제 대학은 경쟁력 강화만을 요구하는 시장에 헌신하는 존재일 뿐이다. 시장 권력은 대학을 경영하거나 산학 협력 체제를 마련하는 데서 나아가 국가권력의 대학 교육정책 입안과 시행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대학 교육과 관련된 각종 위원회에는 산업계를 대표하는 인사가 참여하는 것은 이젠 익숙한 풍경이다. 이명박 정부가 공과대학 위주의 산학 협력을 넘어 대학 전반의 체질을 산학 협력 친화형으로 개편한다는 취지에서 2011년에 ‘산학협력선도대학사업’을 추진한 사실에서 시장 권력의 대학 장악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대학 교육에서 국가권력-사학 권력-시장 권력의 삼각동맹은 더욱 강고해지고 있다. 이것이 대학 구조 개혁을 한다면서도, 대학과 대학인이라는 대학 경영의 주체를 철저히 배제한 채 개혁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이유다. 교육부가 절대평가를 통해 줄을 세우고 등수에 따라 상벌 처리를 하는 단조로운 방식을 대학 구조 개혁 방안으로 제시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이번 대학 구조 개혁 방안은 한마디로 국가권력의, 국가권력에 의한, 그러나 사학 권력과 시장 권력을 위한 구조 개혁이라 요약할 수 있겠다. 대통령이 사학 권력의 일원인 박근혜 정부에서 대학 구조 개혁에 대한 근본적 해법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도 분명하다.

※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