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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부정 추궁' 왜 엿 바꿔 먹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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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부정 추궁' 왜 엿 바꿔 먹었나

[오홍근의 '그레샴법칙의 나라'] <95> 공정한 재판 이뤄지고 있나

무죄가 선고되자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보인 첫 반응은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외침이었다.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사건에 대한 경찰수사를 축소 은폐해, 불법 선거운동 혐의로 기소된 재판의 1심 선고에서 무죄가 나오자, 김용판 전 청장은 법정을 나서며 그렇게 소리 질렀다고 했다. 진실은 밝혀지는 법이라고 김 씨가 ‘진리’를 말하는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김용판 씨가 자신이 저지른 소행이 정말로 죄가 안 돼서 무죄가 선고된 것으로 확신하는 듯 했다고 기억한다. 그러나 그날 김 씨 앞에서 밝혀진 ‘진실’은 이 나라 박근혜 대통령 치하 대한민국에서,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민주주의와 법과 정의가 어느 수준에 머물고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 눈 시퍼렇게 뜬 ‘진실’이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군사통치 시절 군부의 뜻을 거슬러 판결한 판사를 향해 “국가관이 없는 판사”라고 호통 친 대법원장이 있었다. 그분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비록 재판과는 직접 관련이 없으나 이번 판결에서는 국회의 청문회와 국정감사장에서 증인 선서조차 거부한 김용판 씨의 진술은 인정하고, 선서 절차를 거쳐 충실히 증언한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진술은 무시되었다.

특히 국회에서 김 씨가 선서를 거부하며 국회의원들에게 보내던 묘한 비웃음을 사람들은 지금도 기억한다. 그 선서 거부와 비웃음과 연관성이 있다고 믿는다. ‘커다란 믿는 구석’이 있었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이번 판결이 비록 1심 선고라 해도, 그런 일련의 전개과정을 보면서 일찌감치 사안의 큰 ‘흐름’과 ‘결론’을 알아 차렸어야 한다는 빈정거림도 그래서 나오는지 모른다.

사건의 일사불란한 과정을 보면 ‘정답’은 금방 나온다고 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국가정보원과 사이버 사령부와 국가보훈처 등 정부 기관들이 총력체제를 갖추고 대선부정에 나섰다. 국정원의 댓글 부정이란 충격적인 범죄사실이 적발됐으나, 대선 3일전 한밤중에 경찰은 대선의 흐름을 바꿔 놓는다. 국정원 직원의 하드디스크를 분석한 결과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에 대한 비방이나 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 글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는 긴급 수사결과를 발표한다.

그러나 이는 김용판 당시 서울경찰청장 등의 외압에 의한 부정한 축소 은폐 발표였다는 폭로가 나온다. 이 사건을 수사하던 당시 수서경찰서 권은희 수사과장의 증언이었다. 훗날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경찰이 이날 밤 댓글 부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발표했더라면,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 중 8% 정도가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했을 것이라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과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 ⓒ연합뉴스

이 프로테이지를 두 후보의 실제 투표율에 대입해 산정해보면, 문 후보가 박 후보를 5% 이상 이기는 것으로 드러난다. (대선 결과에서 두 후보의 최종 투표율은 박 후보 52%, 문 후보 48%였다) 여론조사는 어디까지나 선거 후에 이뤄진 ‘가정을 전제로 한’ 조사였으나 김용판 씨에 대한 선고 결과는 그렇게 엄청난 폭발력을 지니게 되어 있었다.

가령 이번에 김 씨에 대한 판결이 유죄였다면, 그렇게 여론조사와 연관 짓는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정통성을 잃는’ 대통령이 되는 상황에 놓일 수 있었다. 집권층의 핵심 인사들이 ‘겁을 낸’ 대목은 바로 그 부분이었다. 등골이 서늘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어찌됐건 김용판 씨가 유죄 판결을 받아서는 절대로 안 될 일이었다. 김용판 씨의 선서 거부나 묘한 비웃음이나 ‘1등 공신’이라는 설(說) 모두는 그래서 연관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댓글 부정의 총책으로 알려진 원세훈 씨에 대해서도, 대통령의 정통성과 관련되는 사안이기 때문에, 대선부정 범법 사실이 인정되어서는 절대로 안 될 일이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법무부 장관부터 앞장서서 기를 쓰고 원 씨를 기소하지 못하도록 검찰에 압력을 가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검찰총장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원 씨를 기소했다. 그래서 목이 잘렸다.

국정원 직원들의 새로운 범죄 사실을 추가로 밝혀내 공소장 변경을 신청한 윤석열 검사도 상부의 ‘지시를 어긴 죄’를 뒤집어쓰고 징계와 함께 좌천의 ‘유배 길’에 올라야 했다. 7명에 이르는 이 사건 검찰의 당초 수사팀 중 6명이 그렇게 타 지역으로 쫓겨나갔다. 재판을 ‘쉽게’ 이끌고 가려는 검찰 수뇌부의 결단에 따른 일사불란한 수순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게 다름 아닌 ‘정답’이라고들 했다.

통상 형사재판에서 검찰은 피고인에 대한 공소를 유지하기 위해, 피고인이 ‘꼼짝달싹 못하도록’ 범죄사실을 소명해 가는 게 관례다. 그러나 당초의 수사팀이 뿔뿔이 쫓겨 간 뒤 이 사건의 후임 수사팀에서는 이상한 기류가 감지된다고들 했다. “피고인들의 죄가 가볍지 않고, 죄질도 나쁘다”는 식의 검사 특유의 의욕이 실종된 형태의 재판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고들 했다. 말하자면 ‘별로 죄가 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드는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했다.

“김용판 씨의 공소 유지를 위한 굳은 의지가 검찰에 있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김용판 씨에 대한 재판에서 검찰이 최선을 다 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내는 이야기가 거듭 들렸다. 사실이니까 그랬겠지만 당초의 검찰이 대선개입 근거로 제시한 트위터 글 121만 건을 후임 수사팀이 78만 건으로 줄여 놓은데 대해서도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게다가 원세훈 씨 공판도 이번에 김용판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바로 그 재판부가, 바로 김용판 씨의 무죄 재판에 참여했던 그 검찰 팀과 함께하는 재판이어서, 원 씨에게도 김 씨에게처럼 “죄가 없다”는 판결이 내려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거대한 손이 PD가 되어 판을 철저하게 조종해 가는 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도 그래서 나오는 것 같다. 대통령은 계속해서 재판 결과를 기다려 보자고 말하고 있는 중이다.

주목되는 대목은 그 동안 악이라도 쓰면서 대선 부정사건을 물고 늘어지던 야당의 목소리가 근래 들어 아는 듯 모르는 듯 잦아들어 버렸다는 점이다. 이번 김용판 씨의 무죄선고를 놓고도 야당의 그 같은 ‘목소리 변화’와 무관치 않은 ‘예견됐던’ 사태라고 지적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야당의 목소리가 작아졌기 때문에 그 같은 판결을 내리기가 한결 수월해졌으리라는 이야기다.

정의구현사제단의 박창신 원로신부에 대해서도 당초에는 당장 잡아넣을 듯이 설치던 검찰이 야당 등의 기세에 눌려 엉덩이를 빼다가, 엊그제부터 본격적으로 수사에 나섰다. 야당의 기류변화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견해가 나온다. 문제는 기류가 바뀐 이유다. 얌전히 있다가 ‘무죄’ 선고가 나오자 뒤늦게 법석을 피우는 모습이 우습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야당의 본 모습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작년 11월에는 야당의 대표가 대선부정 사건 규명을 포함한 대여 투쟁에 모든 직을 걸겠다고 까지 큰 소리쳤었다. 그런 목소리에 갈증을 삭이던 사람들도 적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헌데 왜 ‘엿 바꿔 먹었을까’ 사람들은 그것이 궁금하다. 그것이 알고 싶다. 엿 바꿔 먹었다는 소리는 야당이 야당성(野黨性)을 상실했다는 이야기다. 북한 인권법 이야기도 나왔고, 이를 놓고 여당의 중진의원이 DJ의 햇볕정책 이념이 변했다고 맞장구까지 쳤다. ‘2중대’ 이야기가 나온 것도 그 무렵이었다.

사납게 덤벼도 모자랄 판에 대선부정을 추궁하는 끈이 사정없이 느슨해졌다. 왜였을까. 불가사의였다. 때맞춰 공교롭게도 좌 클릭이니 우 클릭이니 하는 해괴한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떠돌았다. 지금 이 나라에서 진영논리에 뿌리를 둔 좌·우나 보수·진보는 아무런 의미도 없고 쓸모도 없다.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저 배타적 이익이나 노리는 모리배 집단의 뒤틀린 논리쯤으로 치부해 버리면 된다.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눈 부릅뜨고 결단코 지켜내야 할 건 따로 있다. 엿 바꿔 먹어서는 결코 안 되는 가치다. 바로 헌법정신이다. 우리 모두가 잊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중에서도 으뜸인 제1조의 정신을 놓쳐서는 안 된다. 좌나 우나 보수나 진보나 다 헛것 들이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 민주주의를 도둑맞아서도, 짓밟혀서도 안 된다. 대선부정은 바로 이 헌법 제1조를 엿 바꿔먹은 범죄였다.

민주주의를 원천적으로 짓뭉갰다. 공정한 선거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나왔어야 할 권력이 국가정보원의 추악한 여론조작을 통해 나왔다. 그냥 넘겨서는 안 되는 이유다. 반드시 바로 잡고 가야한다. 비록 야당일지라도 그런 사명감을 망각했다면 이 나라 야당은 야당도 아니다. 대선부정 사건은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도 반드시 철저하게 손을 보고 넘어가야할 과제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바로 그 때문에도 대통령이 나서준다면 모양새는 더욱 좋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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