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미스코리아 '진'으로 '취직'한 이 여자, 응원하고 싶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미스코리아 '진'으로 '취직'한 이 여자, 응원하고 싶다

[TV PLAY] <미스코리아>의 '깡 센' 이연희

여자들이 머리채를 붙잡고 육탄전을 벌인다. 상대가 부모를 죽인 원수라서도, 애인을 뺏은 연적이라서도 아니다. 그녀들은 왕관의 주인이 되기 위해 머리채를 잡았다. 이 여자들, 독하다. 상대의 구두 굽을 부러뜨리고 가슴 뽕을 망가뜨리고 화장품을 바꿔치기한다. 그런데 이 독한 여자들의 독한 짓거리들이 마냥 나쁘게만 보이지 않는다.

▲MBC 드라마 <미스코리아>의 지영(이연희, 가운데). ©MBC

MBC <미스코리아>는 여자들의 세계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분투하는 여자들의 인생에 하이라이트를 비춘다. 좋아하는 여자가 남들 앞에서 수영복을 입고 웃는 게 싫지만 사업의 회생을 위해 여자의 등을 떠밀었던 남자와 숨겨진 딸의 존재가 세상에 밝혀질까 두려워 뒤에서 술수를 쓰는 남자, 각기 조금씩 다른 마음으로 미스코리아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응원하거나 혹은 방해하는 남자들은 그녀들의 전쟁 같은 세계의 온전한 일원이 될 수 없다. 물론 처음엔 사업 때문이었지만 결국에는 사업을 포기하더라도 여자의 꿈을 지원하고 싶은 남자와 손녀, 딸, 조카, 동생인 여자가 외간 남자들 앞에서 웃음을 파는 게 가문의 치욕이라 생각했지만 끝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는 남자들도 있다. 그들은 그렇게 그녀들의 세계에 가까워지기도 하지만 결코 이 전쟁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

<미스코리아>는 권석장-서숙향 콤비의 성공작이었던 MBC <파스타>보다 그 작품 이후 서숙향 작가가 KBS에서 쓴 <로맨스 타운>과 통한다. <식모들>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로맨스 타운>이라는 정체불명의 제목으로 바뀌긴 했지만, 이 드라마는 2011년 가장 아쉬운 평가를 받은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식모였던 엄마는, 대학 나온 여자는 식모나 술집 여자가 될 리 없다고 믿으며 딸에게 등록금을 건넸다. 그리고 "대학 가라" 한마디를 남기고 죽었다. 하지만 그 돈은 아버지의 도박으로 사라져 결국 대학 문을 밟지 못한 딸은 술집 여자는 아니지만 식모, 아니 가사관리사가 되었다. 재벌, 출신을 숨긴 사채업자, 어쨌든 돈이 무지하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1번가'에서 순금(성유리)은 월세 굳고 식비 굳는 가사관리사로 일하는 스물일곱 여자다. 순금은 예쁜 얼굴이 아니라 '깡다구'로 세상과 맞장 뜨는 여자다.


▲KBS 드라마 <로맨스 타운>의 순금(성유리). ©KBS

<미스코리아>의 주인공 오지영(이연희)은 순금과 닮았다. 동네 고등학생들이 담배를 배우게 하고 대학에 떨어지게 만들었다는 풍문이 보증하듯 예쁜 걸로 치면 어디 가도 빠지지 않을 예쁜 여자 오지영. 집이 슈퍼마켓을 하니까 담배를 팔았고, 담배를 사러 오는 남학생들에게 웃음도 얹어줬고, 공부가 싫어서 놀았고, 놀다 보니 대학에 못 갔고, 결국 담배가게 아가씨에서 백화점 엘리베이터 걸이 된 여자. '싼 티' 나고 발랑 '까진' 지영은 제 힘으로 먹고살기 위해 미스코리아가 되고 싶다. 물론 미스코리아가 되면 사랑하는 남자 형준(이선균)의 사업을 도울 수 있다는 이유도 있다. 하지만 비록 남들이 무시하는 엘리베이터 걸이었어도 최선을 다해 자기 일을 했던 지영에게 지금 미스코리아가 되는 과정은 남들이 영어 학원 다니고 면접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구직 활동이다. 그래서 지영은 머리채를 잡히면 자기도 머리채를 잡으며 이 뜨거운 여자들의 세계에서 살아남고자 애썼고, 결국 살아남아 최후의 왕관의 주인공이 되었다.

<로맨스 타운>의 순금을 연기하는 성유리가 반짝였던 것처럼, <미스코리아>의 지영이 된 이연희는 그 어느 때보다 예쁘다. 숱한 남자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동네 퀸카'에서 때로는 비루하고 또 비굴한 엘리베이터 걸을 거쳐, 끝내 미스코리아 서울 진이 된 오지영을 만나 이연희가 드디어 단단한 알을 깨고 나오고 있다. <미스코리아>라는 제목을 가진 드라마의 타이틀 롤을 맡을 만큼 이론의 여지가 없는 미모는 이연희를 일찌감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미모만큼 설득력을 갖지 못한 미숙한 연기력에 대한 비판이 오랫동안 따라다녔다. 대중이 이연희에게 갖고 있는 오랜 의구심을 지우기 시작한 MBC <구가의 서>를 거쳐 <미스코리아>라는 영리한 선택을 통해 이연희도 드디어 돌파구를 찾은 듯하다. 스스로 밝혔듯이 수영복을 입고 무대에 서야 하는 미스코리아는 이연희에게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하지만 지금, 땅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여성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그리는 데 장기가 있는 서숙향 작가와 권석장 감독의 조율 아래 씩씩하게 나아가는 이연희를 보는 게 꽤 즐겁다.

▲MBC <미스코리아>의 수영복 심사 장면. ©MBC
이연희의 도약이 흐뭇한 건 예전의 그녀가 SM 엔터테인먼트라는 거대하고 안전한 성에 갇힌 공주 같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아라가 tvN <응답하라 1994>를 통해 돌파구를 찾은 것도 마찬가지다. 탁월하게 예쁘고, 아이돌 가수 못지않게 춤과 노래에도 능한 그녀들이 정작 배우로서는 늘 아쉬운 선택을 이어가고 아쉬운 결과물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그녀들이 속한 세계가 SM 엔터테인먼트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연희의 경우, 연기력이라는 배우로서 가장 기본적인 자질이 부족했던 점이 가장 큰 원인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성 밖으로 나가 세상과 정면으로 마주보는 것이 성장의 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이연희가 수영복을 입고 복도를 달리며 오지영이 되기로 결심하고 고아라가 걸진 사투리와 거친 욕설은 물론 남자 앞에서 방귀를 뀌는 성나정이 되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그녀들이 도약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이연희와 고아라를 두고 단순히 운이 좋아서라서나, 한 번 연기 변신 했다고 앞으로도 계속 잘되는 건 아니라거나 하는 식으로 냉소하고 싶지 않다. 그녀들이 스스로 싸움을 결심하고 성을 나와 링 위에 오른 것이기를 바라기 때문이기도 하다.

SM 엔터테인먼트가 이연희와 고아라가 화사한 조명 아래 '15초의 요정'으로 살아가는 데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좀 더 넓게 보고 좀 더 과감하게 도전하도록 지원하고 격려하기를 바라기도 한다. 무엇보다 예쁘고 재능 있는 그녀들이 '여배우'라는 굴레에 갇히지 않고 때로는 머리채를 잡는 '깡다구'로, 오랫동안 우리를 웃게 하고 울게 하고 위로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