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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엔 자동차가 무용, 화장실 변기 앞 경구는 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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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엔 자동차가 무용, 화장실 변기 앞 경구는 유용!

[취미는 독서] 다섯 번째 날

2014년부터 새로 시작하는 코너 '취미는 독서'입니다. <프레시안>의 강양구, 김용언, 성현석, 안은별 기자와 함께 천문학자 이명현, 사회민주주의센터 공동대표 정승일, CBS 정혜윤 PD, 자유기고가 노정태,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이정모 관장, 그리고 특별한 게스트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의 최근 독서 목록'을 공개합니다.

'취미는 독서' 지난 기사 바로 보기

김용언(<프레시안> 기자) : 몇 년 전부터 '종말'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어릴 때는 '종말'이라는 단어에서 종교적 의미만 떠올렸는데, 지금은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재난에 대해 심각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편안하게 살아왔으며, 어디 잠깐 산행이라도 갈라치면 바로 풀독이 오르는 저주받은 체질 때문에, 사실상 어떤 종류든 막론하고 재난이 닥칠 경우 나 같은 사람은 최초의 희생자에 포함되지 않을까 하는 실질적인 두려움 말이다.

<생존 지침서>(알렉산더 스틸웰 지음, 오태경 옮김, 푸른숲 펴냄). ⓒ푸른숲
그래서 <생존 지침서>(알렉산더 스틸웰 지음, 오태경 옮김, 푸른숲 펴냄)를 집어 들었다. 제목만 봐서는 어린 시절 유행하던 “Q: 깡패를 만나면? A: 바로 무릎 꿇고 빈다” 같은 우스갯소리 '생존 지침' 모음집 같지만 그렇지 않다. 저자는 영국에서 활동 중인 군사 및 생존 전문가이며, 책의 부제는 'SAS와 특수부대 교본으로 배우는 위기탈출 토털 패키지'다. 허리케인과 태풍, 홍수와 쓰나미, 지진, 화재, 테러, 전염병 등의 위기 상황에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옷은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서바이벌 키트엔 무엇무엇을 넣어야 하는지(이를테면 콘돔과 탐폰 등의 생각지도 못한 용도가 등장한다.), 별의 움직임과 태양의 그림자로 방향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등이 명쾌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 책을 통해 대부분의 재난 상황에서 자동차는 아무런 도움이 못 된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됐다.

매우 유용하고 알찬 정보가 직관적으로 제시되긴 하는데, 문제는…이 많은 경우의 수와 그에 따른 각각의 대처 방안을 내가 다 숙지할 수 있을까의 여부다!

강양구(<프레시안> 기자) : 1. 연말에 오항녕 선생님이 '올해의 책'으로 다시 한 번 기억을 환기시켜서 손에 든 <언제나 민생을 염려하노니>(이정철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 저자의 전작(<대동법, 조선 최고의 개혁>(역사비평사 펴냄))을 읽을 때도 느꼈었지만, 제대로 공부한 역사학자의 책을 읽을 때마다 책을 함부로 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이, 이원익, 조익, 김육의 소평전을 묶은 이 책도 풍부한 정보, 대담한 해석, 적절한 논평 등이 어우러진 수작이다. 책을 읽으면서 무릎을 친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특히 사림이 조선 정계의 전면에 부상한 시기를 다룬 이이 편은 과거 노무현 정부 때의 모습과 어찌나 오버랩이 되던지. 이 책은 관료, 국회의원의 필독서다.

한 가지만 더. 이 책을 읽다 보면 조선 시대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건 어찌 그리 똑같은지, 하면서 쓴웃음을 짓게 되는 대목이 많다. 당대 최고의 천재로 칭송을 받으며 매사에 거침이 없었던 30대의 이율곡을 보면서, 역시 당대 최고의 재상으로 칭송 받던 원로 정치인 이준경은 틈만 나면 그를 칭찬하는 친구에게 이렇게 불평을 했단다. 한참 웃었다.

"당신이 말한 이이는 어쩌면 그렇게 말이 가벼운가?"

<사물 판독기>(반이정 지음, 세미콜론 펴냄). ⓒ세미콜론
2. 반이정의 <사물 판독기>(세미콜론 펴냄). 미술관에 가서도 그림보다는 해설에 더 눈길이 가는 처지라, 이렇게 이미지와 텍스트가 어우러진 책은 반갑다. 한두 꼭지씩 읽다가 며칠 전 잠이 안 와서 손에 든 김에 내처 다 읽었다. 일상생활 속에서 접하는 사물에 대한 단상이 흥미롭긴 했는데, 저자의 내공을 온전히 드러내기에는 텍스트의 양이 너무 짧았던 게 아닐까?

그나저나 한 가지 동의 안 되는 대목. 저자는 화장실 변기 앞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구가 적잖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들어가던 게 다시 나올 정도로." 그런데 책 한 줄 안 읽는 이들에게 그나마 화장실에서라도 한두 줄 텍스트를 접하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당장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는 모두 군대 화장실에서 읽은 것이다.

이정모(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 : 한 정의로운 제다이의 기사의 말에 따르면 미디클로리안은 "살아 있는 모든 세포에 들어 있으며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아주 작은 생명체다. 우리는 미디클로리안과 공생 관계를 이루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다. 미디클로리안이 없으면 생명은 존재할 수도 없으며 포스도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다." -<미토콘드리아>(닉 레인 지음, 김정은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 18쪽에서

뭐야, 조지 루카스가 "미토콘드리아가 세균에서 기원했다"는 린 마굴리스의 가설을 받아들여서 Force를 이렇게 설명한 거야? May the Force be with You.
- 그렇게 빌지 않아도 내 세포 안에는 미토콘드리아가 수백~수천 개씩 들어 있거든…

<한없이 작은, 한없이 위대한>(존 잉그럼 지음, 김지원 옮김, 이케이북 펴냄). ⓒ이케이북
대부분의 미생물, 아마 거의 90% 정도는 아직까지 실험실에서 배양할 수 없다. 미생물이 인공배양을 끈덕지게 거부하는 이유는 다양하고, 복잡하고, 아마 어느 정도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도 몇 가지 이유를 들자면 미생물들이 서로 얽히고설켜서 상호 의존한다는 점(그래서 실험실에서 홀로 살아남지 못하는 것이다), 영양분이 최소량을 넘어설 경우에 대한 민감성, 그리고 대단히 느린 성장도(미생물학자의 인내심을 시험한다) 등이 있다. -<한없이 작은, 한없이 위대한>(존 잉그럼 지음, 김지원 옮김, 이케이북 펴냄) 60쪽에서

우리가 설마 미생물보다 더 잘났을까? 미생물이 살지 못하는 곳은 없다. 그렇게 강한 놈들도 같이 산다. 혼자서는 못 산다. 설마 우리가 미생물보다 더 잘났을까? 우리도 좀 같이 살자.

안은별(<프레시안> 기자) : 1. 설에 큰아버지네 가서 밥을 먹다가 어른들 대화에 살짝 충격을 받았다. "보험 설계, 그거는 못 하겠더라구." "어떤 사람은 예전에 대접받던 습관 못 버리고 나이 어린 상사한테 화를 내서 계약 연장 안 됐잖아" "나는 마을버스 기사, 대형 면허 알아보고 있어." 퇴직 후 재취업한 큰아버지와 곧 퇴직하실 아버지 사이에서 대충 이런 얘기들이 오갔던 것이다. 그들의 원래 직업과 새로운 직업의 간극 때문이 아니라, 60세를 앞두고 다시 진로를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 그게 내심 잔혹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람은 대체 언제까지 일을 해야 하는 걸까…?

그즈음 난 조주은의 <기획된 가족>(서해문집 펴냄)을 읽고 있었다. 직장과 가정을 오가는 중산층 화이트칼라 '맞벌이 직장맘'들의 바쁜 삶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여성의 바쁨'을 만드는 젠더정치적·사회경제적 배경을 파헤치는 이 책이, 퇴직을 했거나 앞둔 50대 후반 남성들의 대화 앞에 불현듯 겹쳐진 이유는 양쪽 모두 '기획된 가족'의 강한 인력과 굴레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다. 아마 나이가 들면 더 많은 역할을 요구받으며 더 바쁘게 시간 관리를 해야만 할 거고, 내 세대를 둘러싼 상황이 나빠질 것은 명약관화다. 저자는 자신의 관심을 단순화하면 "행복해지고 싶다"라고 했는데,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기 위해선, 역설적이게도 다시 '기획'이 필요할 터다. 인력에서 벗어나거나 자체를 완화시키기 위한.

2. 은행나무의 '마이크로 인문학' 시리즈는 이주의 발견이었다. 코트 주머니에 넣어도 부담 없는 작은 책이 출퇴근길을 풍요롭게 했다. 누구나 멍하니 걷다가 불현듯 반짝이는 단상의 습격을 받는 경험을 종종 할 텐데, 그걸 붙잡아 증강현실처럼 확대시켜주는 기획물이라고 할까.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소한 질문에 답함. 지금 손 안에서 시작하는 인문학"이라고 쓰여 있는 홍보 문구 그대로다.

ⓒ은행나무

현재 1~4권이 나왔는데, 저자의 이름이 반가워 4권 <효율성, 문명의 편견>(이근세 지음)을 가장 먼저 집어 들었다. 학부 때 이 분 수업을 들은 적 있는데 퍽 기억에 남았기 때문이다. 눈으로 읽는데 귀로 들리는 듯한 차분한 설명, 오랜만에 대학 교실로 돌아간 듯 기뻤다. 동서양 문명과 사고의 특징을 전법(戰法)의 비교에서 읽어내고 최근 초미의 관심사인 미-중 형세의 전망으로 나아가는 부분에선 머리에 신이 났다.

이 책이 효율이란 개념을 어떻게 낯설게 요리해 가는지는 각자의 경험으로 남겨 두고, 지금쯤 새해 세운 계획의 이른 부패에 좌절했을 분들에게 솔깃할 만한 구절을 옮겨 두겠다. 전쟁에 대한 동서양의 전혀 다른 사유 방식을 비교하며 <손자병법> 1편의 제목인 계(計)의 본래 의미(planification이 아닌 supputation, evaluation)를 밝히는 대목의 마지막 부분이다.

"나 또한 깊이 서구화되어 있었던 관계로 그 전까지는 항상 모델화의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려고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연초면 새로운 노트를 장만하고 계획을 써놓거나, '올해는 꼭 이것을 해야지' 등의 다짐을 하곤 했었다. (…) 그러나 '계'의 의미를 알고 난 후에는 미래지향적인 계획은 거의 세우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 내가 해 놓은 것 중에 어떤 것이 있는지 점검해 보았다. 의외로 해놓은 일들은 많았다. (…)

그래서 지금도 학생들에게 늘 계를 조언하곤 한다. '너희들이 이루어 놓은 것은 의외로 많다는 점을 잊지 마라. 그동안 제출한 보고서, 답안지, 연습지, 메모 등등 모든 것에 대한 목록을 만들어라. 그리고 그것들을 토대로 어떤 그림이 그려지는지 주시하라.' 이러한 전략이 <손자병법> 1편의 메시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49~50쪽)

정승일(사회민주주의센터 공동대표) : 독일어판 <자본론>을 우리말로 번역했고 또한 MEGA 번역을 향한 의욕을 불태우고 있는 경제학자 강신준 교수는 카우츠키야말로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자라고, 그리고 독일과 스웨덴 같은 나라야말로 카우츠키의 관점에서 해석된 마르크스의 정신이(미완성이기니 하지만) 살아 숨 쉬는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 모델이라고 말한다.

Rudolf Hilferding - The Tragedy of a German Social Democrat
과연 그럴까? <금융자본론>을 쓴 힐퍼딩의 생애와 사상에 관한 "Rudolf Hilferding - The Tragedy of a German Social Democrat"(William Smaldone, 1998)이라는 책을 읽어보면 별로 그렇지 않다. 힐퍼딩과 카우츠키는 둘 다 오스트리아인으로 20세기를 전후해서 독일 사회민주당의 이론적 핵심이었다. 카우츠키가 1918년 독일 혁명의 와중에서 신망과 직위를 잃고 은퇴하여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돌아가 있을 때 카우츠키의 직위를 계승하여 독일 사회민주당의 수석 이론가, 수석 경제학자 역할로 나선 이가 힐퍼딩이었다.

그런데 힐퍼딩은 1929년에 대공황이 발생하였는데도 케인스적인 경기부양 정책, 즉 국가의 재정지출 확대와 복지 확대, 이러한 인위적 조치를 통한 대규모 일자리 창출에 끝까지 반대했다. (이 점은 우리말로 번역된 <정치가 우선한다>(셰리 버먼 지음, 김유진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에도 나온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재무장관을 역임한 힐퍼딩은 빈에 있던 카우츠키와 수시로 서신을 주고받으며 의견을 교환했고, 카우츠키는 힐퍼딩의 관점을 모든 면에서 지지했다.

대공황의 와중에서 재정지출 확대와 사회복지 확대, 인위적인 대규모 일자리 창출을 내세운 것은 오히려 나치당이었고, 그리하여 대중적 지지를 얻어 합법적으로 집권했다. 나치당은 집권하자마자 공산당과 사회민주당을 차례로 불법화시키며 살인적인 탄압을 개시했다. 나치를 피해 프랑스와 네덜란드로 각각 망명한 힐퍼딩 자신과 카우츠키의 부인과 아들은 그 후 나치에 체포되어 살해당했다. (다행히 카우츠키 자신은 나치가 네덜란드를 점령하기 전인 1938년에 세상을 떠났다). 스웨덴의 비그포르스와 뮈르달과 달리, 독일의 힐퍼딩과 카우츠키는 실패한, 그것도 철저하게 실패한 사상가였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사회민주당이 나치당과의 경쟁에서 패배하여 몰락하고, 결과적으로 나치당이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집권하여 전 세계에서 수억 명이 죽는 끔찍한 세계대전으로 역사가 나아가가된 배경에는 이렇듯 카우츠키의 (그리고 힐퍼딩의) 치명적인 이론적, 사상적 오류가 있었다. 카우츠키의 한계와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인류에게 희망이 있다.

노정태(자유기고가) : 1915년에 태어난 앨버트 허시먼은 부유한 유대인 집안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옷을 잘 입고 말솜씨가 좋았으며 매력적이었다. 경제학을 공부했는데, 대학은 프랑스의 소르본과 영국의 런던 정치경제대학을 나왔고, 결국에는 트리에스테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스페인 내전에 프랑스군으로 참전했고, 본인의 좌파 성향에 대한 반성적 고찰의 시간을 가졌지만, 나치 독일이 프랑스에 침공했을 때에는 프랑스 군복을 입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망명자들을 프랑스에서 미국이나 영국으로 탈출시키는 작전에 깊숙이 개입한 바 있다. 프랑스가 완전히 함락된 후에는 미국으로 망명하여 미국 군복을 입고 참전했다. 뉘렌베르크 재판의 통역 장교로 일했다. 미국으로 귀화한 후, 하버드, 예일, 콜롬비아 대학에서 강의했고, 남미에 있는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경제 자문 노릇을 하기도 했다.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앨버트 허시먼 지음, 이근영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웅진지식하우스
그는 이 책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이근영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외에, <열정과 이해관계>(김승현 옮김, 나남출판 펴냄),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강명구 옮김, 나남출판 펴냄) 등의 명저를 남긴 채, 재작년인 2012년 10월 10일, 9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게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을 도저히 믿기 어렵지만, 사실이다. 그는 성공적인 군인이었고, 경제 관료였으며, 동시에 학자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 굉장히 매끄럽고 우아하며 핵심을 찌르는 '영어' 문장을 구사하던 '독일인'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모국어인 독일어 뿐 아니라, 영어와 불어에도 능통하며, 그의 주요 저작들은 영어로 기술되어 있다. '글을 잘 쓴다'의 평가 기준을 그저 쉽고 단순하고 중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놓고 본다면, 허시먼 같은 사람을 온전히 평가할 수 없다. 그는 개발경제학, 즉 과거의 한국 같은 개발도상국이 경제적으로 부흥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향을 택해야 하는가를 자신의 전공으로 삼고 있었지만, 숫자를 다룬다기보다는 인간의 경험과 사상과 언어를 다루는, 어쩌면 20세기 중반 이후 멸종되어버린 바로 그런 '경제학자'에 속한다. 그런 차원에서의 '경제학자' 중 문재(文才)를 허시먼에 비길 수 있는 사람은 마르크스뿐이다.

지금까지도 책에 대한 언급이 하나도 없는 것은 둘째 치고서라도, 지금까지 내가 적어놓은 두 문단속에는 그저 존경과 설렘과 기타 등등 '팬심'만이 가득한데,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간의 세상이 돌아가는 일을 인간 세상 속의 관점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앨버트 허시먼이라는 20세기의 '세기적 인물'에 대해 알게 되는 순간 흥분하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앨버트 허시먼. (출처 : www.ssrc.org/hirschman/about)
아무튼 책 얘기를 조금이라도 하자.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는, 원제가 ‘The Rhetoric of Reaction’으로, 직역하자면 '반동의 수사학' 쯤이 될 것이다. 여기서 '반동'이란 '반동분자' 할 때의 그 반동(反動)이 맞다. 사회 변화, 개혁, 혁명 등에 반기를 드는 보수 세력이다. 한국어판의 제목은 적절하게 의역한 제목이라 하겠다. 그 반동 세력은 언제나, 누군가가 각 잡고 일 좀 하려고 들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논리를 이렇게 저렇게 배합하여 제시하면서 토를 단다.

첫째, 역효과 명제: 그거 하면 엉뚱한 놈이 재미 본다. 둘째, 무용 명제: 경제 개혁 해봐야 결국 돈 있는 놈이 돈 버는 거다. 셋째, 위험 명제: 경제 민주화라니, 그것은 빨갱이 논리가 아닌가?

말만 들어도 지긋지긋하다. 그렇다. 허시먼은 본인의 탁월한 어학 능력을 발휘하여, 세계 경제학/경제사상사/정치철학의 고전들을 죽죽 읽어나가며, 저런 논리가 무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지금까지도 줄곧 활용되고 있다는, 어찌 보면 뻔한 진실을 폭로한다. 그 과정에서 사용되는 그의 어투는, 똑같은 말을 또 하는데, 너무도 우아하고 날렵해서 독자는 종종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도 '보수'는 바로 그렇게 지배하고 있다. 너무 원고가 길어졌으니, 기왕 길어진 김에 문단 하나만 인용하여 독자 여러분께 맛보기로 드리며 오늘의 '취미는 독서'를 마치도록 하자.

우리는 '복지 정책은 빈곤층의 근로 의욕을 해친다, 복지 기금이나 받아먹는 배부른 돼지로 만들 뿐이다'라는 식의 '역효과 명제'를 너무도 많이 들었고, 익숙하며, 심지어 우리들 스스로도 재생산하는 경향이 있다. 그에 대한 스페인 내전, 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의 말씀은 이렇다.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 보려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간에 상대적으로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내지 않는 행동·정책·제도도 고려해야 한다. 그런 상황들은 완전히 무시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실업급여나 복지기금에 역효과를 낼 수 있는 요인이 담겨 있음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사회부조의 많은 분야는 역효과가 작동하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공급반응(supply response)'과 거의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결코 언급하는 법이 없다. 즉, 사람들은 사회보장 제도나 감세 혜택이 있다고 해서 그런 자격을 얻기 위해 자기 눈알을 파내지는 않는다. 19세기 말경에 유럽의 주요 공업국들이 산업재해보험을 처음 도입했을 때 고용주나 다양한 '전문가'들 쪽에서 노동자들이 의도적으로 손발을 자를 것이라는 주장을 많이 내놨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주장들은 대단히 과장된 것임이 밝혀졌다." (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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