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가 북한인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하던 철새들의 군무가 대한민국에서는 더는 아름다운 장관이 아니다. 닭․오리 농가는 물론이고 국민들 가슴 속에는 철새가 그 이름을 떠올리기조차 싫은 조류 인플루엔자(AI)라는 감염병(전염병)을 퍼트린 흉악범이 됐다. 얼마 전만 해도 잘 보호하고 함께 지내야 할 귀한 손님으로 대접받던 진객(珍客)이 어느 날 갑자기 함께하기 싫은 혐오객이 됐다. 해설가 또는 기자의 감탄이 섞인 말과 함께 석양에 수천수만 마리의 철새 떼가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장면은 최근 텔레비전 화면에서 사라졌다. 대한민국에서는 정치 철새뿐만 아니라 생태계 야생 철새마저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어제(1월 29일) 일부 우려 속에서 철새 먹이 주기 활동을 잘 마쳤습니다. 520킬로그램 햇볍씨를 회원들과 함께 군산시 회현면 금광리 만경강 하구에 뿌려주고 왔습니다. 격려를 많이 받았고 배고픈 철새가 축산 농가를 위협하고 있으며 철새 서식지를 보호하는 것이 AI 확산을 막는 것이라는 저희들 입장을 많이 옹호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먹이 주기 활동을 하던 어제 낮에도 폭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김제시에서의 해프닝으로만 끝난 게 아닌지 군산시에서도 우리 먹이 주기에 대항하기 위해 쏜 건지 정말 비상식적이고 비과학적인 일들이 21세기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씁쓸합니다."
'페친'인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설 연휴 내내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자초지종을 알아보았다. 정부는 지금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는 조류 인플루엔자를 닭과 오리 농가에 퍼트린 진원지가 철새들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이들 철새들에 먹이 주는 것을 금지하고 철새와 사람과의 접촉을 차단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그는 정부의 방역 전략이 잘못됐다고 생각했고 환경 단체가 철새 먹이 주기 활동에 나선 것이었다.
이 처장을 비롯해 환경 단체 회원들은 철새가 조류 인플루엔자를 퍼트린 주범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설혹 철새가 이번에 조류 인플루엔자를 가금류에 퍼트렸다 하더라도, 철새들을 굶겨 죽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철새에게 먹이를 풍부하게 줘 철새 도래지 밖을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과학적인 사고이며 효과적인 방역 전략이라고 보았다. 먹이 주기는 바로 조류인플루엔자 확산을 막기 위해 나온 활동, 즉 사람 간 전파가 가능한 감염병이 유행할 때 이동을 제한하는 쿼런틴을 새들에 적용해 효과를 거두자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무슨 큰 사건만 터지면 북한 탓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은행 전산망 마비나 전국 곳곳에서 다발적인 대규모 정전 사태가 벌어지자 극우 인사나 일부 보수 정치인들이 북한 짓으로 몰아세웠다. 북한이 실제로 그런 짓을 했는지 그 진상을 알기도 어렵고 북한이 항의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항의해도 깔아뭉개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사건 발생으로 분노한 국민 감정의 화살을 그곳으로 돌릴 수 있다.
어리석은 사회는 일이 터지면 희생양부터 찾아
또 얼마 전에는 '어리석은 사람은 일이 터지면 책임을 따진다'는 말로 국민을 분노케 해 장관 퇴진까지 거론됐다. 카드사 개인 정보 대량 유출 사건으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을 때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 말이다. 개인 정보 유출은 카드 가입자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다. 가입자의 잘못은 눈곱만큼도 없다. 그런데도 현 부총리는 이 사건 발생에 자신의 책임은 없고 국민의 잘못이 매우 큰 것처럼 말했다. 장관 자격은커녕 대한민국의 국민이 될 자격조차 있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큰 사건이 터지면 희생양을 찾거나 만들어내 그곳으로 비난이나 관심이 집중되도록 하는 수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있었다. 질병, 특히 감염병의 역사에서는 종종 있었던 일이다. 감염병 가운데서도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거나 공포에 떨게 하는 질병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했다. 멀리는 한센병이나 흑사병에서부터 가까이는 에이즈에 이르기까지, 감염병에 걸려 고통받던 사람들은 '천벌' '천형' '게이병' 등의 낙인이 찍혀 공동체 밖으로 내몰리거나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
15세기 말과 16세기 초에 유럽 등에서 대유행했던 매독은, 고통스럽고 혐오스러운 증상 때문에 죄악과 오염의 징표로 여겼던 나병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그리하여 각 국가는, 매독이 다른 나라에서 왔다고 주장했다. 프랑스에서는 이탈리아 병으로, 이탈리아와 독일, 영국에서는 프랑스 병으로 불렀다. 또 네덜란드에서는 에스파냐 병이었고 러시아에서는 폴란드 병, 투르크에서는 기독교 병, 페르시아에서는 터키 병, 일본에서는 포르투갈 병 또는 중국 병으로 불렀다. 매독은 역사상 남에게 미루고 싶은 가장 대표적인 질병이 되었다.
감염병에 대한 이런 두려운 공포심은 우리나라 영화인 <감기>나 외국 영화인 <컨테이전> 등 많은 영화를 통해 증폭되고 확산한다. 또 몇 년 전 구제역 대유행으로 소와 돼지를 산채로 집단 매몰하는 광경을 방송을 통해 목격한 사람들은, 이번에는 조류 인플루엔자 유행으로 오리, 닭 등이 역시 산 채로 매몰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그러면서 감염병에 대한 두려움의 DNA가 다시 뇌세포에서 살아난다. 동물에 대해 매몰차게 대하고 있는 인간이 이제는 철새를 희생양으로 삼아 먹이조차 주지 못하게 하는, 비과학적이고도 야만적인 생각을 행동에 옮긴다.
비록 상상이기는 하지만 <감기>에서는 공기로 전파되는 엄청난 치사율을 보이는 '괴물 바이러스'가 등장한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확진 판정이 난 사람들을 산 채로 동물처럼 살처분하는 극한 상황까지 보여준다. 물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을 통해서도 질병이나 감염병에 걸린 사람들을 국가나 공동체가 집단 학살한 적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감염병이나 역질에 걸린 사람들을 한군데로 몰아넣어 살게 한 일은 역사에서 많이 있었다.
영화 <벤허>의 주인공은, 어머니와 누이가 한센병(나병 또는 문둥병)에 걸려 로마의 외곽에서 나환자가 집단으로 사는 곳으로 간다. 영화는 그곳에서 환자들끼리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그렸다. 그러나 이들에 대해서도 공동체 구성원들이 내팽개친 것은 아니고 적어도 먹고 마실 먹을거리는 제공해줬다. 나병 환자에게는 방울을 달게 해 나병 환자임을 타인에게 알리도록 했다고 한다. 이런 낙인과 차별은 물론 오늘날에도 있다.
중세 대흑사병, 환자 내팽개치고 가족도 달아나
중세 1374~1351년 거의 유럽 전역을 휩쓴 대흑사병 시기에는, 당시로써는 괴이하기 짝이 없는 이 감염병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했다. 환자가 발생한 집에는 아무도 가지 않고 가족조차 달아나버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또 지금은 선진국에서는 거의 발생하지 않고 세계적으로도 지진 또는 쓰나미 대재앙 뒤나 간혹 후진국에서 발생하는 감염병이 된 콜레라의 경우, 숨진 직후 극도의 탈수 상태에 있던 환자가 근육 경련을 일으킴으로써 주검의 수축이나 떨림 현상이 생기는 수가 있다. 이 때문에 과거 콜레라 대유행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을 때 민간에서는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을 산 채로 파묻는다는 풍문이 떠돌기도 했다.
감염병에 대한 공포는 감염병을 전파시키는 매개체-그것이 쥐와 같은 설치류이든, 이, 벼룩이나 빈대와 같은 절지동물이든, 모기나 파리와 같은 곤충이든-에 대한 극도의 분노로 표출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들을 잡아 죽이기 위한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기도 하고 이들을 박멸하기 위한 살충제 개발·살포에 열을 올리기도 한다.
감염병 공포 영화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광경 가운데 하나가 감염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환자들을 격리하고 먹을 것조차 제대로 주지 않자 환자들이 탈출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탈출에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들을 버린 공동체를 공격한다. 실제로 역사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1831년 여름 헝가리에서는 많은 농민들이 콜레라로 죽어갔다. 자신들이 성 안의 의사와 장교, 귀족들이 마실 물에 독을 타 죽었다고 여긴 농민들은 성을 포위하고 공격해 이들을 모두 죽였다.
2014년 2월 대한민국에서는 야생 조류를 조류 인플루엔자 발생과 확산의 주범으로 보고 이들을 사람이나 닭․오리 농장과 격리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개체 간 전파가 손쉽게 이루어지는 감염병의 경우 감염원 또는 감염 전파자를 아직 감염되지 개체와 접촉하지 않도록 한다. 이는 중세 흑사병 대유행 시기부터 터득해온 인간의 지혜다. 검역 또는 격리를 뜻하는 쿼런틴(quarantine)은 전염병에 걸린 사람이 전염력이 없어질 때까지 건강한 사람들과 접촉하지 못하도록 떼어놓는 것을 말한다. 쿼런틴은 40을 뜻하는 17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 말 quaranta에서 유래했다. 14세기 크림 반도의 항구 도시 카파에서 흑사병이 유럽 곳곳으로 퍼져나가자 항구에서는 혹 배 안의 감염자가 육지에 내려 감염병을 퍼트릴까 염려해 40일간 선원들을 배에서 내리지 못하도록 했다. 이것이 쿼런틴의 효시라 할 수 있다.
철새 굶기면 오히려 AI 확산
사람이나 사람이 키우는 가축은 격리 또는 이동 제한이 가능하다. 그러나 날개가 있는 야생 조류는 어떨까? 가능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물론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사람이나 가금류 축산 농가와 접촉하지 않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물론 있다. 늪이나 호수 등의 철새도래지와 같은 철새 집단 서식지에 먹이를 충분히 주어 이들이 서식지 밖으로 멀리 날아다니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조류 인플루엔자에 걸린 철새가 축산 농가 인근으로까지 날아가게 되면 이들이 싸는 분변이나 호흡 분비물이 공기 중으로 날려 오리나 닭 등에게로 바이러스가 옮겨갈 수 있다. 그러면 치명적인 조류 인플루엔자를 유발할 수 있다.
먹이가 서식지에서 부족하다면 이들은 생존을 위해 이곳저곳으로, 먹을 것이 풍부한 농가나 축산 농가 인근으로까지 생활 반경을 넓혀갈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조류 인플루엔자는 더욱 빨리 전국으로 확산해나갈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정현 사무처장을 비롯한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의 철새 먹이 주기는 철새도 살리고 조류 인플루엔자 확산을 막는, 좋은 전략이요 행동이다. 그리고 이를 방해하거나 철새 먹이 주기를 금지하는 관청의 행태는 참 나쁜 전략이요 행동이다.
철새도 조류 인플루엔자에 걸려 숨지는 희생자이다. 철새가 밉다고 먹이조차 주지 않는 비정한 인간의 '하나만 보고 둘은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결코 조류 인플루엔자와 같은 감염병의 유행과 확산을 막을 수 없다. 건강한 사고와 행동을 하는 사회에서만 감염병의 유행과 확산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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