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컴버배치의 '잘생김'으로만 홈즈를 기억한다면 오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컴버배치의 '잘생김'으로만 홈즈를 기억한다면 오산!

[윤영천의 '하우, 미스터리'] 아서 코난 도일의 <주홍색 연구>

1.
이제껏 미스터리 소설에 등장했던 모든 탐정을 데려와서 한자리에 모으고 순위를 매긴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다. 셜록 홈즈가 무조건 일등이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을 수 있다. '셜록 홈즈는 지식의 편차가 너무 극단적이다', '그 시대에서만 명탐정이었지 현대로 데려오면 꼬장꼬장한 노인네일 뿐이다', '셜록 홈즈 이야기는 독자와 공정한 게임을 벌이지 않는다', '내가 왓슨이라면 그렇게 감탄만 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등등.

▲BBC에서 방영중인 <셜록> 시즌 3. ⓒBBC

하지만, 엄밀하게 판단해보자. 1887년 셜록 홈즈가 첫 선을 보인 이후, 그의 모험들은 단 한 차례도 절판되지 않았다. 여전히 진행 중이며 그 끝은 언제일지는 감히 짐작할 수도 없는 이야기들이다. 그뿐이랴, 셜록 홈즈의 열렬한 팬들은 그의 과거와 미래는 물론, 전생과 환생, 다른 차원의 삶, 심지어 다른 성별의 삶까지 만들어냈다. 그것마저도 진행 중이다. 우리는 올해 방영한 BBC <셜록> 시즌 3의 찰스 오거스터스 마그누센을 보고 1904년에 발표한 <셜록 홈즈의 귀환>(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백영미 옮김, 황금가지 펴냄) 속 단편 '찰스 오거스터스 밀버튼'을 뒤적여볼 수 있다. 불멸의 탐정, 그 순위에 반론의 여지가 있을 리 없다.

▲<주홍색 연구>(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백영미 옮김, 황금가지 펴냄). ⓒ황금가지
2.
셜로키언(미국식 표현)이나 홈지언(영국식 표현)들이 흔히 '정전(the Canon)'이라 부르는 60편(단편 56편, 장편 4편) 중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건 역시 장편들이다. 셜록 홈즈가 처음으로 등장했던 <주홍색 연구>(1887), 모험이 깃든 낭만 소설의 풍미가 가득한 <네 사람의 서명>(1890), 흥미진진한 대도시의 추격전과 음울한 다트무어 황무지의 전설이 멋진 조화를 이룬 <바스커빌 가문의 개>(1902), '셜록 홈즈 이야기의 작가'로서 절정의 기량을 보여준 <공포의 계곡>(1915) 등.

셜록 홈즈가 등장하는 장편은 대부분 두 시공간이 연결된 이국적인 모험담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단서를 배치하고 독자와 공정한 경쟁을 벌이는 미스터리의 성격에서 보면 단편에 비해 다소 부족하지만, 모두 월터 스콧(Walter Scott)처럼 뛰어난 역사 소설가로 기억되길 바랐던 아서 코난 도일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미스터리 역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주홍색 연구>는 특히 흥미롭다. 당대 유행했던 소설들(에드거 앨런 포의 뒤팽, 에밀 가보리오의 르콕, 선정 소설)과 아서 코난 도일이 동경했던 모험 정신 그리고 그의 젊은 시절 기억(셜록 홈즈의 모델로 알려져 있는 벨 교수 등)이 한데 합쳐져 위대한 탐정의 시작을 알렸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믿을 수 없지만, <주홍색 연구>는 출간되기까지 결코 쉽지 않았다. 어떤 편집자는 흔한 소설이라는 이유로 원고를 거절했고 한 출판사는 원고를 보지도 않고 돌려보냈다. 어쨌든 원고는 계약됐고 아서 코난 도일은 원고료로 24파운드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1887년 11월,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한 잡지 <비튼의 크리스마스 연감(Beeton's Christmas Annual)>에 위대한 탐정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주홍색 연구>는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바로 재판을 찍었고, 셜록 홈즈가 등장하는 두 번째 장편 <네 사람의 서명>도 발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셜록 홈즈의 이야기는 코난 도일에게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비슷비슷한 싸구려 소설이라고 무시당하지 않을 만한 진짜 역사 소설을 쓰고 싶어 했다.

신문 좀 뒤적이고 기억을 되짚으면 쓸 수 있었던 셜록 홈즈 이야기와 달리 역사 소설은 철저한 자료 조사가 필요했기 때문에, 그 시절 코난 도일은 역사 소설 창작에 몰두했다. 그리고 그 노력들은 <마이카 클라크(Micah Clarke)>(1888)와 <백의단(The White Company)>(1891)으로 이어진다. 100년 전쟁 시절 영국 궁수의 활약을 다룬 <백의단>은 특히 코난 도일이 두고두고 자랑스러워했던 작품이었다. 반응도 뜨거웠다. 하지만 <스트랜드 매거진>에 '빨간 머리 연맹'이 연재되면서부터 독자의 생각은 코난 도일의 생각과 점점 달라지기 시작했다.

3.

▲찰스 도일이 그린 삽화. 맨 오른쪽이 셜록 홈즈.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여했다가 부상을 입고 본국으로 돌아온 왓슨 박스는, 성 바솔로뮤 병원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겪은 후 셜록 홈즈와 함께 베이커 스트리트에서 하숙 생활을 시작한다. 외모와 행동만으로 사람의 경력을 알아내고 극단적으로 치우친 지식을 가졌으며, 추리의 과학을 설파하다가 바이올린을 켜대는 이 묘한 사내는 여러모로 왓슨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한 방울의 물에서 대서양이나 나이아가라 폭포의 가능성을 발견해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셜록 홈즈의 직업은 다름 아닌 자문 탐정. 셜록 홈즈와 존 왓슨은 (대체적으로 무능한) 경찰의 요청으로 로리스턴 가든 3번지로 향하고 그곳에서 드레버라는 남자의 시신과 붉게 물든 'RACHE'라는 글자를 발견한다.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 예를 들어 <셜록 홈즈의 귀환> 같은 작품으로 셜록 홈즈를 접한 독자들에게 <주홍색 연구>는 무척이나 이채로운 경험이다. 헌팅캡과 프록코트를 걸치고 사냥개처럼 범죄자를 뒤쫓는 우리 머릿속의 셜록 홈즈와는 다소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 확연한 차이는 삽화에서 먼저 드러난다. <주홍색 연구> 초판 삽화는 당시 알코올 중독 때문에 수용소를 전전하던 아서 코난 도일의 아버지 찰스 앨터몬트 도일이 그렸는데……, 솔직히 굳이 찾아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은 3판에 실린 조지 허친슨의 그림인데, 잘 빗어 넘긴 고수머리에 바지를 심하게 올려 입은 듯한 수줍은 셜록 홈즈가 등장한다. 국내 황금가지 판본에 있는 삽화는 1902년 독일어 판에 수록된 그림으로, 역시 고수머리의 셜록 홈즈가 수줍게 미소 짓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셜록 홈즈의 이미지는 <스트랜드 매거진>의 삽화가 시드니 파젯이 만들어낸 것이다.

<주홍색 연구>에는 시리즈 끝까지 이어지는 주된 요소들이 빠짐없이 등장하지만, 이 이야기가 시리즈가 아닌 단발성 기획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건의 무게중심은 뒷부분인 모르몬교에 얽힌 끔찍한 비극에 있고, 복수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범인'은 어떻게 보면 셜록 홈즈보다 더 비중 있게 그려진다. 셜록 홈즈는 다소 과장돼 있으며 더 명랑하고, 왓슨은 더욱 평범해 보인다. 이들은 <주홍색 연구>라는 복수극에 최적화된 주인공들일 뿐, 아직은 이야기를 이끌어가지 못한다.

▲조지 허친슨이 그린 삽화. 왼쪽이 셜록 홈즈.
4.
그럼에도 셜록 홈즈는 첫 등장부터 너무나 인상적이다. 머릿속에 기억을 위한 체계적인 다락을 가진 이 남자는 과학적 발견에 미친 듯 환호하면서도, 며칠씩 멍한 눈빛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소파에 누워 있다. 극단적으로 편향된 지식은 오로지 범죄의 해결로만 향하며, 태양계 따위는 어떻게 돼도 아무런 상관없다. 실험으로 얼룩진 손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오로지 관찰만으로 상대의 모든 것을 간파한다. 그는 빅토리아 시대의 정신을 간직한 신사이면서도 코카인을 흡입하며 모든 경계를 뛰어넘는 진정한 자유인이었다.

대부분의 셜록 홈즈 이야기에서 독자는 결코 그와 경쟁할 수 없다. 단서는 주어지지 않고 놀라운 결과만 뒤늦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시리즈의 처음부터 엿보이는 이러한 특징들은 셜록 홈즈가 가진 불멸의 생명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우리가 매료된 건 규칙에 꽉 매인 미스터리 속 명탐정이 아니라, 이상적이고 초인적인 명탐정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셜록 홈즈는 그 시작부터 불멸이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진행 중인 전설로 남게 됐다.


*함께 읽어볼 만한 작품들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아서 코난 도일 외 지음, 정태원 편역 및 옮김, 비채 펴냄)
셜록 홈즈 시리즈의 성공으로 비슷한 모방작들이 탄생했다. 하지만 그들은 단순히 아류에 머무르지 않았고, 미스터리의 황금기로 넘어갈 수 있는 든든한 징검돌이 되었다. 고 정태원 선생이 엮은 이 책은 이제껏 한글로 볼 수 없었던 19세기 말 단편이 수록돼 있다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놀드 베넷, 클리포드 애시다운, 재크 푸트렐, 아서 모리슨 등의 작품이 수록돼 있다.

-<셜록 홈즈 미공개 사건집>(존 딕슨 카·에이드리언 코난 도일 지음, 권일영 옮김, 북스피어 펴냄)
셜록 홈즈의 수많은 패스티시 중 가장 이채로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은 아서 코난 도일의 막내아들로, 열정적인 셜로키언이자 미스터리의 거장인 존 딕슨 카와 함께 또 다른 셜록 홈즈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아버지의 저작을 계승했기 때문인지 이야기의 모양새는 셜록 홈즈의 그것과 꼭 닮았고 원작에서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던 얘기를 파헤친다.


-<노래하는 백골>(오스틴 프리먼 지음, 김종휘 옮김, 동서문화사 펴냄)
미스터리에 본격적인 과학 수사 방법을 도입한 오스틴 프리먼. 그의 페르소나 손다이크 박사는 셜록 홈즈의 라이벌 중 제법 오랜 기간 동안 살아남은 캐릭터이다. 지금 눈으로 바라보면 '과학 수사'란 당연히 낡아 보일 수밖에 없겠지만, 이 단편집은 구조적으로 매우 흥미롭다. 특히, '오스카 브로트스키 사건'은 범인이 아니라 범행이 밝혀지는 과정에 집중하는 '도서(倒敍) 미스터리'의 선구자 격인 작품이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