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민주-안철수 격전지 된 호남, 오히려 의제 실종?"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민주-안철수 격전지 된 호남, 오히려 의제 실종?"

[민심탐방] 민주당과 새정치신당 운명 가를 호남 민심 향배

지방선거에서 호남이 주목을 받은 적은 드물었다. 호남에서 ‘민주당 공천=당선’은 공식이나 다름없었기 때문. 그러나 이번 6.4 지방선거는 다르다. 호남의 맹주였던 민주당 앞에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이끄는 ‘새정치신당(가칭)’이란 강력한 대항마가 등장했다. 안 의원의 정계진출 선언 이후 호남은 ‘민주당 해바라기’ 모습을 거뒀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과 새정치신당은 호남에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호남을 기반으로 당을 꾸려온 민주당으로선 최초이자 최대 위기인 셈이다.

호남의 변화는 이미 기정사실이다. 그러나 변화가 실제로 검증된 적은 없다. 이번 선거는 지금껏 풍문으로만 돌았던 호남 내 안철수 돌풍의 파급력을 확인할 기회다. 현재 민주당과 새정치신당은 백중세 상황을 두고 아전인수격 해석을 내놓고 있다. 새정치신당은 “민주당의 호남 시대는 끝났다”고 호언하고, 민주당은 “빈 수레가 요란한 만년 제3정당이 될 것”이라고 한다.

거대한 변화를 온몸으로 맞닥뜨리고 있는 두 세력에 이번 호남 선거 결과는 매우 중요하다. 민주당이 패배할 경우, 새정치신당의 호언대로 제 터전을 잃고 유목민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반대로 새정치신당이 패배할 경우, 여론의 관심에서 밀려나 세 확장의 동력을 잃을 공산이 크다. 결국 호남이 이 두 세력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게 되는 셈이다.

4일부터 예비후보 등록을 실시한다. 지방선거가 본격 시작됐다는 의미다. 선거를 정확히 4개월 앞둔 설 연휴 기간, 운명의 열쇠를 쥔 호남 주민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부인 최명길씨가 설연휴 호남·충청 '국민들께 세배드립니다’민심투어를 마치고 2일 오전 국회에 도착, 마무리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광주 토박이 가족, 처음으로 정치 얘기로 싸웠다”

호남 유권자들은 이번 지방선거의 의미를 이전과 사뭇 다르게 느끼는 듯했다. 주민들은 ‘첫 경험’을 고백했다.

전라북도 부안에 사는 이규범(48·남) 씨는 “지방선거에서 고민을 하는 건 거의 처음인 것 같다”고 했다. 이 씨는 스스럼없이 “나는 줄곧 민주당의 ‘거수기’였다. 누가 뭐래도 호남 사람이니까”라고 했다. 그러다 지난 대선부턴 심각한 내적 갈등을 겪고 있다고 했다. 그나마 대선 당시엔 문재인·안철수 두 단일화 후보들을 두고 속으로만 고민했지, 투표권을 행사할 일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선 투표장에 가지 않는 한 누가 되든 각 한 명씩을 뽑아야만 한다. 이 씨는 “고민하고 투표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천천히 생각을 해보고 결정해야겠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 출신 박상지(가명·26·여) 씨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치 얘기하다가 부모님과 싸웠다”고 말했다. 선거 때마다 의견이 다른 적이 없던 박 씨는 이번 설 명절에 부모님과 TV 뉴스를 보다가 정치 얘기로 설전을 치렀다고 했다. 박 씨의 부모님은 민주당 열혈 지지자인 반면, 박 씨는 안 의원 지지자다. 박 씨는 “민주당에 변화가 필요해서라도 안철수 의원이 이번에 이겨야 한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지만,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나를 배신자인 것처럼 말씀하시더라”고 말했다.

박 씨는 또 “광주 사는 친구들을 보면 광주시장 선거는 신당 사람을 뽑겠다고 한다. 강운태 시장이나 다른 민주당 예비후보에 대한 호불호보단 안철수 신당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광주는 새정치신당이 호남에서 깃발을 꽂을 확률이 제일 높은 지역이다. 많은 여론조사에서 새정치신당 후보가 호조를 보이고 있다. 한겨레와 리서치플러스가 지난달 22~25일 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보면, 새정치신당 후보인 윤장현 새정치추진위원 공동위원장이 광주시장 후보 가상대결에서 강운태 시장보다 6.2%포인트 높은 지지를 받았다. 윤 위원장은 민주당의 다른 후보인 이용섭 의원을 상대로 한 대결에서도 10.7%포인트 앞섰다. 광주·전라남도언론인포럼 7개 회원사가 공동으로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뷰에 의뢰해 지난 25∼26일 1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선 신당 후보(38.8%)와 민주당 후보(38.7%)가 오차 범위 내 초접전 중이다.

“전북지사, 후보 확정되면 분위기 바뀔까”

‘안철수 현상’의 진원지로 불리는 전북 역시 새정치신당이 거는 기대가 높다. 민주당에 대한 지지세가 광주·전남에 비해 비교적 덜하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상으론 조사마다 결과가 크게 엇갈린다. 주간경향·리서치뷰가 지난달 15일부터 나흘간 벌인 조사에 따르면 새정치신당 후보(42.8%)가 민주당 후보(31.8%)를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전북도민일보와 전주 문화방송(MBC)이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해 지난달 25~26일 실시한 조사에선 민주당 후보(45.2%)가 신당 후보(27.6%)를 앞섰다.

조사마다 결과가 들쭉날쭉한 건 지지도가 안정적인 광주에 비하면 신당 후보가 확정적이지 않은 탓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북의 한 대학의 강사인 강우성(가명·44·남) 씨는 “신당 쪽 선거 준비가 늦어지고 있다. 후보가 확정적이지 않으니 이렇다 할 지지 표명도 없지만,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신당 후보로 출사표를 던지면 현재 민주당 탈당 준비 중인 시도의원들이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선거 운동에 힘이 실리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줄곧 출마를 고심하던 강 전 장관은 3일 “출마 여부는 3월 창당 후 판단하겠다”면서도 “도움이 되는 역할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사실상 출마 의사를 밝혔다.

강 씨는 “전북은 변화에 대한 갈망이 큰 지역”이라면서 “많은 지역 주민들은 이번 선거가 변화의 시작점이 되길 바라고 있다. 우선 선거 개혁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북 지역 지자체장 비리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일당 독재가 지역 정치판을 혼탁하게 만드는 제일 큰 원인”이라면서 “지역 독재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서 새로운 세력과 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정치신당에 대한 지지를 간접적으로 밝힌 것.

가족들과 영화 <변호인>을 관람한 김민교(50·남) 씨 역시 신당에 대한 호감을 드러냈다. 그는 “지방선거는 행정가를 뽑는 선거이기 때문에 지역을 잘 알고 행정 경험이 많은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후보 자질과 관계없이 마음이 가는 것은 안철수 신당 쪽이다. 지역 일꾼들이 새롭게 물갈이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다만 “얼마나 호남에 관심을 두고 있느냐에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인지도가 낮은 지역 후보들보다도 안 의원이 먼저 전북을 자주 방문하고 주민과 스킨십을 갖는다면 그 효과를 결코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 의원은 예비후보 등록 시작 다음날인 5일 전주를 방문, 전북권 민심 공략에 나설 계획이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다녀간 직후 이뤄지는 방문으로, 안 의원 측이 전북 지역을 두고 민주당에 ‘맞불’을 놓겠다는 심산인 것으로 해석이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 ⓒ연합뉴스

“선거철 되니 국정원 이슈, 감쪽같이 사라졌다”

호남 주민들은 지지 세력에 관계없이 민주당과 새정치신당 모두 야당 역할에 충실할 것을 당부했다. 일부 주민들은 정치권이 지나치게 ‘선거 모드’에만 열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북 전주 시내 초등학교 교사인 이지현(가명·27·여) 씨는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이 국정원 이슈 등 민감 현안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숙 농성하면서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국정원 문제에 관심 가져달라고 할 땐 언제고, 선거가 닥치니 입을 꾹 닫는다. 이런 모습을 보면 실망스럽고, 간사하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동료 교사인 김준(가명·31·남) 씨는 안 의원 측에 그 책임의 일부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대선 당시 야권 단일화 후보로 안 후보를 지지했다는 강 씨는 “이제서야 왜 사람들이 ‘안철수는 안 된다’고 했는지 알겠다”고 했다. 그는 이미 야권의 한 축으로 굳어진 안 의원 세력이 탈정치를 조장하고 있다고 했다.

김 씨는 “아무리 지방선거가 지역 이슈나 민생 이슈가 앞선다고 해도 국정원 문제처럼 해결되지 않은 정치적 사안들이 많다. 그런데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 명분을 내세우며 민감 현안에 말을 꺼리고, 민주당은 안철수 지지층 눈치를 보느라 현안 얘길 꺼내질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야의 구태 정치 싸움이 싫어서 안철수를 지지했지만, 안철수 등장 후 중요한 이슈들은 실종되고 오히려 더 선거에만 목을 매게 되는 구태 정치가 나타나는 것 같다. 아이러니하다”고 했다. 김 씨는 “젊은 사람들 중에도 지난해까진 신선한 느낌에 안철수 지지를 했지만, 피로를 느끼고 돌아선 경우도 꽤 많다. 야당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지난 지방선거에선 무상급식 강력한 의제라도 있었지만 올해는 지방선거에 의제가 없다. 지역 정책은 물론이거니와 당 정책 대결 없이 세 싸움만 벌이다 끝날 것 같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