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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삼성 '추천 할당제'는 해프닝이 아니다

[편집국에서]대학까지 재벌의 식민지된 대한민국의 자화상

지난달 말 삼성그룹이 신입사원 공채에 '대학총장 추천제'를 도입하려다가 '차등 할당'을 문제삼은 지역과 대학 사회의 격렬한 반발에 전격철회한 사건이 있었다. 이를 두고 어떤 언론들은 "삼성이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하고 곧바로 취소한 해프닝"이라고 정리하기도 한다. 정말 그 정도일까?

나는 이 사건에서 정말 놀란 것은 '차등 할당'으로 지역과 대학과 성을 차별하고 대학의 서열화를 초래할 방식을 아무 문제의식 없이 시행하려고 했던 삼성의 오만함이 아니었다.

지역과 대학에서 나온 반응이 기껏해야 "왜 차별하느냐"는 반발이었다는 점에 놀랐다. 심지어 어떤 대학 관계자들은 "첫술에 배부르랴"면서 "우리가 더 노력하면 나중에 더 많은 할당을 받을 수 있다"면서 '성숙한 태도'마저 보여주었다고 한다.


사실 일개 기업이 필요한 인재를 자기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뽑겠다는데 반발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 않는가? 그렇다. 삼성은 대한민국에서 '일개 기업'이 아니다.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마치 정부가 '추천 할당제'를 시행하듯 지역과 대학들이 반발한 모양새는 이미 삼성은 우리 사회에서 '정부급'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어느 나라에 삼성 같은 위상을 가진 기업이 있을까?

그래서 '삼성' 같은 재벌의 역사가 다른 나라에도 있는지 궁금해졌다. 우선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재벌의 정의를 찾아보았다. "재계(財界)에서, 여러 개의 기업을 거느리며 막강한 재력과 거대한 자본을 가지고 있는 자본가·기업가의 무리"라고 되어 있다.


바로 이런 정의가 맹탕이며 핵심을 벗어난 '하나마나한 정의'라는 것이며, 사전이나 교과서 지식만으로 세상을 객관적으로 안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다. 역사가 '승자의 관점의 기록'이라고 하듯이 재벌의 국어사전 정의를 보니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기술된 것이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재벌이 어떻게 정의되어 있나 궁금했다. 재벌은 옥스포드 영어사전에 그대로 등재된 외래어다. 알파벳으로 chaebol, 김치처럼 그냥 우리말을 알파벳으로 표기만 바꾼 것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자신의 73세 생일인 지난 1월 9일 오후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삼성그룹 사장단 신년 만찬에 부인인 홍라희 리움미술관 관장(왼쪽)과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손을 꼭 붙잡고 참석하고 있다.ⓒ연합뉴스

국어사전으로 '재벌'을 안다면...

영어사전의 정의를 보니, "가문이 소유한 한국의 기업집단"이라고 되어 있다. 외국에도 가문이 소유한 기업집단이 있는데, 왜 굳이 '재벌'을 외래어로 별도 취급한 것일까. 바로 '한국'에 방점이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가 급성장한 배경을 설명할 때, 재벌이라는 독특한 기업집단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한국의 재벌은 단순히 가문이 소유한 기업집단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반면에 국어사전 정의는 재벌의 또다른 핵심 요소인 '가문 소유'라는 것조차 빼놓았다. 지금 한국의 대표 재벌 삼성그룹은 북한처럼 3대 세습을 앞두고 있다.

결국 한국의 재벌과 한국의 경제성장 과정을 보면, 재벌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역할을 한 대규모 기업집단이다. 그러니 한국 경제에 대해 '재벌'이 뭔지 모르고 얘기하는 것은 진실과 거리가 먼 얘기가 된다.

한국의 재벌이 단순히 가문이 소유한 기업집단이 아니라는 것은 국가와 관련이 있다. 국가가 키워주고, 이제는 국가도 어쩌기 힘든 특정 가문이 소유한 대규모 기업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60~70년대 개발독재 시대에는 관치금융으로 몇몇 기업에게 국가의 자원을 집중시켰다. 그것도 중공업 등 자원이 많이 들어가는 산업을 위주로 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일부 기업들이 국가의 지원을 바탕으로 급성장했다. 이것이 재벌이 형성된 배경이다.


이런 방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경제에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했다. 공정한 경쟁에서 승리한 기업이 재벌로 성장한 게 아니기 때문에 독립적인 중소기업이 성장하기 힘들게 되었다. 게다가 이런 재벌의 형성 과정은 정경유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IMF 외환위기 이후 금융은 개혁됐다고 하지만, 수출을 위주로 하는 우리 경제에서 재벌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정부의 지원은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환율 정책이다. 재계에서 환율이 내려가면 수출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환율방어에 나서달라고 호소하면 정부는 수입물가가 오르는 부담을 안고서라도 환율방어에 나섰다.

국가가 중소기업이나 서민의 희생을 무릅쓰고 수출 주도로 경제성장을 이끄는 일종의 특공대식으로 육성하고 지원한 것이 한국의 재벌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재벌들이 스스로 노력한 면도 있지만, 재벌은 국영기업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법인세 실효세율, 법정 세율의 절반으로 만든 '절세 비법'

재계에서 늘 하는 얘기가 "정부가 제발 간섭하지 말라. 무슨 권한으로 개입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재벌그룹들은 이런 얘기할 자격이 없다는 조사 결과도 나와 있다. 최근의 사례는 <한겨레> 신문 3일자 "나랏돈 '연 125조 원' 대기업에 쏠린다"는 보도다. 이 보도에 따르면, 전체 기업의 0.09%에 해당하는 3053개 대기업에 예산만 21조 원, 각종 정책금융 보증 등을 합하면 125조 원이 넘는 정부의 지원이 이뤄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 몇몇 재벌들이 지원 혜택의 상당한 비중을 가져간다.

사실 환율 정책 이외에도 연구개발(R&D) 자금 지원, 특히 각종 비과세 감면으로 삼성전자의 법인세 실효세율이 법인세 최고세율 22%의 거의 절반인 11%대인 것으로 드러났다. 삼성전자처럼 재벌 그룹에 속하는 상위 10대 기업의 실효 법인세율은 13.0%로 대기업 평균 17.3%는 물론이고 중소기업 평균 13.3%보다 낮다.

흔히 재벌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 '문어발식 경영'을 얘기한다. 하지만 지금은 '문어발 경영'을 넘어선 '암적 경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재벌에 대한 비판 중 지배구조 문제보다는 업계에서 피부로 느끼는 더 실감나는 표현은 '손오공식 경영'이다. 손오공이 털을 뽑아 훅 입김을 불어넣으면 셀 수 없이 많은 분신들로 변하는 것처럼, 재벌이 도처에서 사업을 벌이는 것을 비꼰 것이다.

'문어발식 경영'이라는 말이 나올 때는 재벌이 사업을 다각화하다가 그룹 전체가 부실화되는 것을 비판하는 의미가 강했는데, 그나마 중소기업들이 함부로 하기 어려운 영역의 사업이 주된 것이었다.

반면 '손오공식 경영'은 재벌 가문이 2세대에 이어 3세대까지 이어지면서 이들이 온갖 자회사, 손자회사를 만들면서 나온 말이다. 북한에서 보듯 3대 세습에서도 성공적일 가능성은 기업의 역사에서도 1%도 안된다고 한다.

재벌이 '골목상권' 침해한 이유

따라서 재벌 3세들은 대기업을 경영할 능력이 없을 가능성이 높은데, 경영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너도나도 중소기업 업종에 뛰어들었다. 심지어 제빵이나 떡볶이, 김밥까지 진출하기 때문에 중소기업 죽이기 정도가 아니라 '골목상권 침해' 논란까지 벌어졌다.

그런데 이것도 사실 극소의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마치 가문의 소유처럼 좌지우지하는 재벌의 지배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문의 지배를 세습하기 위해서는 불법과 탈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드러난 '재벌의 흑역사'다.

지금도 재벌 그룹이 한국 경제의 국제경쟁력의 핵심이기 때문에 함부로 건드려면 안된다는 주장이 만만치 않다. 수출 위주의 한국 경제에서 재벌 체제는 외국에서도 시기할 정도로 강력한 장점이자 무기라는 옹호론도 여전하다.


그런데 재벌 체제를 계속 옹호하기에는 대가가 너무 크고 위험한 지경에 와있다. 우리 재벌은 한마디로 국가의 자원을 몰아주기 식으로 밀어주어야 국제경쟁력이 있는 체제이다. 그 대가는 여러 가지다. 우선 내수 침체다. 우리 정도의 인구와 경제규모를 가진 나라 중에서 내수의 비중이 한국처럼 적은 나라는 없다. 또한 재벌의 과실은 우리 사회에 제대로 배분되지 않는 구조다. 재벌 개혁론이 비등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재벌개혁론에 대해 재벌이 가만히 있을리 없다. 흔히 쓰는 방법이 부정적인 의미가 강한 '재벌'이라는 용어를 대체하면서 논점을 흐리는 것이다. 재벌에 대한 비판은 특정 가문이 수많은 계열사를 정당한 근거 없이 지배하는 구조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에 대해 재벌들은 "왜 대기업을 몰아세우기만 하느냐"고 항변한다.

재벌 비판 논점 흐리는 '대기업'이라는 용어

정부도 재벌의 눈치를 보는지 '재벌'은 공식용어가 아니라고 한다. 대규모기업집단, 대기업집단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하지만 대규모기업집단은 정부가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만든 개념일 뿐이다. 가문의 소유, 국가의 지원 같은 재벌의 특성이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대규모기업집단이지만, 포스코 같은 것은 재벌그룹이라고 하지 않는다.

문제는 재벌이라는 대체하기 어려운 용어가 쓰여야 하는 맥락에서, 대규모기업집단, 이걸 더 줄여서 대(규모) 기업집단, 다시 더 줄인 의미로 대(규모)기업(집단)이라는 용어로 재벌을 대체하면서 "대기업 흔들기를 하지 말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재벌이 성공적으로 버티기를 하는 동안, 우리는 경제를 넘어 더 큰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 모른다. '대학총장추천제 파문'은 이미 대학이 '상아탑'이 아니라 '재벌 공화국'의 이데올로기 산실로 전락했다는 현실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 아닐까?


20세기 중반에 들어 경제학이 가장 먼저 기업의 이데올로기 학문으로 전락했다는 것은 학계에서 잘 알려진 얘기다. 연구자금이 재계에서 주로 나오기 때문에 재계의 입맛에 맞는 것을 사후적으로 꿰어맞추는 '궤변학'이 되었다는 비판이다.


그런데 한국의 대학들은 이제 재벌이 아니면 존립하기도 어려운 '식민지'가 되었다. 그래서 '대학총장 추천제'에 대한 비판이 일었을 때 삼성에서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어리둥절해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런 사정을 아는 어떤 이들은 여론의 반발에 신속하게 '유보 결정'을 내린 삼성의 판단력에 대해 "역시! 삼성"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추겨세웠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삼성'이 이렇게 국민에게 왕처럼 군림하다가 갑자기 일본의 소니처럼 투기등급으로 떨어질 날이 오고 말 것이라는 싸늘한 경고도 나온다. 그때가 한국경제의 '아마겟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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