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투자촉진법(외촉법)을 막아선 마지막 성벽.' 정치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바로 박영선(54)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떠올릴 것이다. 서울 구로을이 지역구(3선)인 박 위원장은 지난해 정부와 여당이 밀어붙인 외촉법을 마지막 순간까지 반대했고, 결국 법안이 법사위를 통과할 때는 "이 법안만큼은 내 손으로 상정할 수 없다"며 위원장석을 떠나 야당 간사에게 회의 진행을 맡겼다.
최근 차기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한 박 위원장은 27일 <프레시안>과 한 인터뷰에서 원내 경선에 도전한 이유 역시 연말국회 당시의 상황과 무관치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민주당의 노선에 대해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했다며 야당이 견지했어야 할 '원칙'이 흔들린 사례 중의 하나로 외촉법 문제를 들었다.
박 위원장은 최근 민주당 지도부가 '안철수 신당'과의 경쟁을 의식해 우(右)클릭을 하고 있다는 평가와 관련, 경제민주화 정책이나 대북 노선의 수정보다는 부동산 정책 등 민생 분야에서의 전환이 우선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다음은 박 위원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편집자>
"물에 물 탄 듯한 민주당, 원내대표 돼 활력 불어넣겠다"
프레시안 : 지방선거에 후보로 참여하기보다는 원내대표 경선 출마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고 들었다.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배경을 설명해달라.
박영선 : 서울시장 쪽도 완전히 닫아놓은 상태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을 살려야 하고, 당에 활력을 불어넣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더 강하다. 민주주의 사회는 정당정치가 기본이다. 당이 살지 않으면 민주주의 정당정치가 제대로 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원내대표 출마를 하는 쪽으로, 무게의 비중을 그쪽에 더 두고 있다는 의미로 말한 것이다.
프레시안 : 완전히 닫아놓은 상태가 아니라면, 서울시장 후보 경선도 아직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인가?
박영선 : 정치란 매일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죽어도 아니다'라고 답하기는 어렵지만, 가능성은 적다. 지금은 원내대표 출마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프레시안 : 원내에서 당을 살리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라는 인식인데, 사실 지난해를 돌아보면 민주당이 원내에서 127석 의석에 걸맞은 성과를 보인 게 뭐였는지 기억나는 게 딱히 없다. 노력에 비해 성과가 나지 않은 근본적 이유가 어디 있다고 보나?
박영선 : 국민들은 민주당이 지난 1년을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보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저는 원내지도부가 굉장히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지만 원인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근본적으로는 원칙이 흔들렸기 때문이라고 본다. 다음으로는 '야당이 해야 할 일'에 대한 것이다. 소외된 사람, 약자, 억울한 사람들을 대변해야 한다. 그런 2가지에서 민주당이 열심히는 했지만 국민들 눈에는 성에 차지 않은 게 아닌가 한다.
원칙이 흔들렸다는 것과 관련해 2가지(사례)가 있는데, 하나는 지난 연말의 외촉법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국정원 댓글 문제다. 국정원 댓글과 관련해서는 문제 제기가 연초부터 있었는데 민주당 지도부는 발동이 너무 늦게 걸렸다. 그러다보니 국민들이 답답하게 생각했다. 발동을 일찍 걸어 이 문제를 상반기에 정리하고, 하반기에는 국민들이 바라는 먹고사는 문제에 올인 하는 것으로 전략을 세웠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외촉법 문제는 왜 원칙에 어긋나는가, 2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이 법은 지주회사법의 근간을 흔드는, 우리나라 경제 원칙에 어긋나는 법이다. 둘째, 민주당이 경제민주화를 외치고 '을지로위원회'(경제적 약자 대변을 위한 민주당 내 조직. '을지로'는 '을乙을 지키는 길'이라는 뜻 : 편집자)를 만들었는데, 이런 것을 주장하면서 외촉법에 찬성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박근혜 정권이 '외촉법 통과가 안 되면 경제 발전도 안 되고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아 죽어도 통과시켜야 한다'고 나온다면, 묵인 정도가 민주당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양보다. '좋다, 통과시켜 줄 테니 한번 해 보라. 잘못됐을 때는 당신들이 책임져야 한다' 이런 정도의 강한 대국민 메시지가 필요하지 않았나 본다.
"김한길표 '우클릭', 이해는 하지만… 安신당과는 협력적 경쟁관계로 가야"
프레시안 : 민주당은 야당이 해야 할 원칙에서 미흡했다는 평가인데, 최근 김한길 대표 지도부가 기존과 다른 노선을 천명하고 있다. 경제정책 방점을 성장 쪽으로 옮기는 것 같기도 하고, 햇볕정책에 대해서도 변화된 상황에 맞게 재점검해야 한다고 한다. '우클릭'이라는 단정적 표현은 어폐가 있을 수 있지만 그렇게 오해받을 만한 소지도 많다.
박영선 : 당 지도부가 중원, 중도층 지지를 회복하기 위해서 '우클릭'을 해야 한다고 하는 것에 일면 동감하는 면이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첫째로 원칙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로 방향성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느냐다. 햇볕정책에 대해 (지도부가)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이해는 가지만,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는 의원들과의 소통이 좀 더 필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민주당이 변모해서 우클릭을 하고 중원을 회복하고 경제 활성화에 기여해야 한다고 한다면, 저는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변화된 자세를 보이는 게 중요하지 않나 한다. 지도부는 경제민주화 쪽 보다는 대기업 살리기 쪽으로 가는데, 그보다는 부동산 관련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보면 지금은 1990년대, 2000년대 초반과는 부동산 시장 자체가 바뀌었다. 한국 인구 추세를 보면 2012년 합계출산율이 1.3이고 2013년은 더 떨어질 것이라고 한다. 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이 추세대로라면 2500년에는 한국이 없어질 것이라고까지 한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의 부동산 정책은 '베이비 부머' 세대가 50대가 됐을 때의 정책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를 안 낳기 때문에 인구 감소에 따라 부동산 정책의 대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이는 내수를 끌어올리는 데 중요한 하나의 요소다.
그래서 민주당이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 갱신 청구권을 주장하고 있는데, 제가 대표발의한 법이다. 이 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주택) 임대사업자에 대해서는 필요한 규제를 하되 임대사업자들의 주택 구매는 규제를 완화해 주는 쪽으로 여당과 협상이 필요한 것 아닌가 한다.
이런 부분은 여당과 절충의 여지가 있으나, 지난 연말에 보니 여당이 방향을 못 잡고 있다. 뭘 내주고 뭘 가져와야 하는지 확고한 원칙 없이, 건설업자와 다주택 소유자들의 말만 듣고 정책을 입안하려는 모순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내대표를 제가 왜 하려고 하느냐에 대해 당을 살리고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라고 (지금까지) 설명을 드렸고, 두 번째로는 민주당이 변화하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한국이 여성 대통령을 탄생시켜 한국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세계에 각인시켰듯, 민주당도 첫 '여성 원내대표' 시대를 맞이해 민주당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국민에게 강하게 어필할 필요가 있다. 제가 당 대변인을 지낸 것도 여성으로서는 처음이었는데, 그 때 열린우리당이 과반의석을 확보했다. 그런 변화를 지금 국민들이 민주당에 바라고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 : 지금 민주당이 난감한 상황인데, 박근혜 정부와의 대척점도 명확히 형성하지 못했고 신당 창당을 추진하는 안철수 의원 쪽과도 위험한 경쟁을 하는 게 아닌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안철수 신당'과는 어떤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박영선 : 안철수 신당과는 협력적 경쟁관계로 가야 하는 게 아닌가 한다. 이번 지방선거는 인물과 정책 중심의 선거가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민주당이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경제민주화 이슈는 더 강화해야 할 것인데, 과연 얼마나 서민들의 아픔을 알아주고 서민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느냐,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느냐가 지방선거의 핵심 요소가 된다고 본다. 안철수 신당의 그동안의 행보가 이런 프레임에 맞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왜 협력적 경쟁관계냐, 제가 지난 18대 국회에서 오픈 프라이머리 관련 법안을 낸 적이 있다. 제 법안은 미국 캘리포니아주(州)의 선거제도를 한국에도 정착시키자는 것인데, 소수 정당이 아무리 많이 생겨도 1차적으로 주민들에 의해 본선 진출자 2명이 가려지고 이 2명이 결선 투표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소수 정당이 많이 생겨도 문제가 없지 않느냐 하는 생각에서 법안을 냈는데, 이런 저의 생각이 아직도 유효하다고 본다.
프레시안 : 협력적 경쟁관계라고 했는데, 지도부가 얘기하는 '동반자적 경쟁 관계'와 뭐가 다른가?
박영선 : '동반자적'이라는 말과 '협력적'이라는 말은 좀 다르다. '동반자'라면 항상 우리 편이라는 것이다. 협력적이란 것은 다른 의미다. 예를 들어 새누리당과도 정책적으로 통한다면 같이 할 수 있는 것처럼 누구와도 같이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외촉법, 토론 붙었다면 통과 안 됐을 것…민주당 지도부, 꼭 찬성해야 했나"
프레시안 : 이른바 '진보·개혁진영'에서는 외촉법에 대한 문제 제기가 계속 있어 왔다. 그러나 지난해 예산 통과를 앞두고 대강 넘어간 꼴인데, 외촉법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정리해 본다면?
박영선 : 지주회사법이라는 것 자체가 IMF 경제위기 이후에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 순환 출자, 경제력 집중 때문에 경제위기가 일어났다'는 판단에서 자꾸 옆으로 퍼지려는 회사들을 종대로 세운 것이다.
미국과 독일의 경우는 모회사가 자회사까지만 만들도록 하고 있지만, 우리는 3단계 손자회사까지 만들게 했다. 재벌들이 '그것도 부족하다'고 해서 2007년 8월에 증손회사까지 만들도록 해줬는데 그래도 더 이상 가는 건 곤란하니 (손자회사가 증손회사를 만들 때는) 지분을 100% 투자하게 했다.
그렇게 해 줬더니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재벌 계열사가 500여 개나 늘었다. 대부분 떡볶이 회사, 빵집 회사, 콩나물 회사 이런 것들이었고 이로 인해 골목상권이 '못 살겠다'고 아우성을 쳤다. 그래서 2012년 대선의 화두가 경제민주화가 된 것이다.
그런데 외촉법은 외국인에 특혜를 줘서 우리 기업에 대한 역차별 문제가 있고, 지분 50%까지만 투자하게 해서 회사 1개 만들 것을 2개 만들 수 있도록 길을 터준 것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은 부정적 요인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또 재벌기업들의 회사가 2배 이상 늘어나면 골목상권과 중소기업은 죽게 된다. 이렇게 '재벌의 구름'을 더 두텁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이 법을 통과시키면서 경제민주화를 얘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만약 민주당이 박근혜 정권의 강압에 의해 외촉법을 통과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반대한다. 이 법에는 이런 문제점이 있다. 그런데 너희들이 꼭 해야 한다고 하니 할 수 없이 통과시켜 주는 것이다. 너희들이 책임지라', 지도부가 이렇게 떳떳하고 당당하게 나가야지, 다른 법안이랑 거래를 한다든지 하는 상황을 만든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제가 이것을 끝까지 반대한 것이다.
프레시안 : 표결 결과를 봐도 민주당 의원들이 박 의원 의견에 상당히 찬성한 것으로 보인다.
박영선 : 민주당에서는 외촉법 찬성이 16명밖에 없었고 대부분 당 지도부였다. 물론 지도부 입장도 이해는 한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이 법을 통과시켜 주기로 미리 약속한 것 때문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것인데, 저는 그것은 납득을 못 하겠다. 통과시켜 준다고 해서 꼭 지도부가 찬성표를 던져야 하는가? 기권할 수도 있는 거다.
여당이 꼭 통과시켜야 하는 법이라면 국민들에게 호소하고 국민들이 납득하게 해서 통과시키는 게 맞다. 그런데 토론할 기회도 주지 않고 '이것 아니면 예산도 안 된다'면서 5000만 국민의 1년 예산을 집권당이 외촉법에 걸었다는 것이 납득이 안 된다. 예산을 볼모로 통과시켜야 할 만큼 이 법이 국민들 목을 죄고 있던 법이냐. 그렇지 않다.
이것은 재벌에 대한 특혜, 그리고 회사 2개가 외국인 자본을 끌어들여 (증손)회사를 만들어야 하는 그 회사들의 속사정 때문이다. 국회를 그런 식으로 무력화시킨 것이고, 실질적으로 로비가 있었다고 본다. 왜냐, 그 2개 기업에서 (법률)개정안을 만들어서, 기업이 만든 페이퍼(보고서)가 국회를 돌아다녔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의원 발의나 정부 발의라면 이해가 가지만, 기업에서 법의 장단점을 검토하고 법조문을 만들어 '이렇게 고칠 때 어떻게 된다'는 페이퍼가 돌아다닐 정도면 여당에 로비가 있었다는 증거다. 그렇게 뒷거래 하듯 법을 통과시키는 게 맞느냐? 강력한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 기업이 의견을 낼 수는 있지만, 기업에서 법조문을 만들어 들고 다니면서 사람들 만나 설명하는 행위는 잘못됐다고 본다.
프레시안 : 원내 전략의 실패는 이미 끝난 문제이니 재론의 의미가 없지만, 외촉법을 통과시키면서도 그 법의 중요성을 인식 못했다는 지적은 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박영선 : 집권 여당이 그것을 차단한 것이다. 이 법에 대해 토론이 붙었다면 통과가 힘들었다고 저는 생각한다. 여당도 그런 판단을 했을 것이다. 제가 이 법을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의중을 떠보기 위해 수차례 간접적인 움직임이 있었고 특히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그런 행위를 했다. 당시에도 제가 '산업위도 통과 안 했는데 왜 법사위를 노크하느냐'고 했었다. 산업부 장관으로서 잘못했다. 편법을 활용한 것이고, 토론의 장을 열지 않고 기습적으로 통과하려는 작전을 세운 것이다. 그런 것은 옳지 못하다.
문제점을 따지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외촉법은 특별법이니 원래 정무위로 가야 하는데 왜 산업위로 우회하느냐. 그 자체가 이 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여당이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그래서 여당에서도 대한민국 경제에 대해 올바른 생각을 가진 의원들 몇 명이 저한테 전화도 했었다. '이 법 자체가 대통령한테 입력이 잘못돼 있는 것 같은데, 우리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니 법사위에서 통과시키지 말아 달라'고 한 분도 있었다.
프레시안 : 대통령에게 '입력'이 잘못됐다, 이런 얘기를 여당 의원들이 했다는 게 흥미롭다.
박영선 : 황우여 대표도 외촉법이 내놓고 자랑할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아는 것 같다. 대통령에게 '입력이 잘못된'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어 지난해 박 대통령이 '국회가 금융정보분석원(FIU)법에 손을 대서 세금이 안 걷힌다'는 취지로 말한 적이 있다. (☞관련기사 보기) 법 통과됐다고 세금이 바로 걷히나. 일정 기간이 필요하다. 아직 법이 작동도 안 되는데 대통령이 그렇게 말한다는 것은, 누가 옆에서 잘못 얘기한다는 것이다.
FIU법은 사실 굉장히 무서운 거다. 지금 세무조사 때문에 기업들 불만이 굉장히 많지 않나. 개정 전의 FIU법은 현금 2000만 원 이상 거래하는 사람의 정보에는 바로 손을 댈 수 있게 한 것이다. 이건 법사위 소관사항이기도 하다. 검찰도 영장 없이는 거래 정보를 들여다볼 수 없게 돼 있는데, 국세청은 영장 없이 다 본다는 거 아닌가. 만약 법사위가 손을 안 댔으면 남의 통장을 막 들여다볼 수 있게 됐을 거다.
법사위(가 만든) 제어장치도 완벽하지 않다. 나중에 틀림없이 사고가 난다. 이 법의 취지는 세금 잘 걷히게 하자는 게 아니라, 마약거래 같은 이상한 현금거래를 잡기 위한 것이다. 개인 간의 거래 같은 사생활적 측면까지 들여다보려고 법이 있는 게 아니다. 수상하다 싶을 경우에만 들여다보게 해야 하고, 그러려면 여러 제어 장치가 있어야 한다. 미국에서도 법원 영장 없이는 FIU 자료를 못 들여다보게 해 놨다.
법사위에서 이런 부분을 걸러내지 않았으면 지금 카드회사의 개인정보 유출처럼 심각한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지금 법도 법이지만, 더 거를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는데 새누리당이 마치 이 법을 6월까지 안 통과시키면 세금이 안 걷힐 것처럼 하지 않았나. 그나마 정무위며 법사위에서 견제를 해서 나아졌는데, 그런 게 없었으면 심각한 문제가 초래됐을 것이다.
"외촉법 없어도 외국인 투자 할 수 있어…재벌가 기업 상속에 악용 가능성"
프레시안 : 외촉법을 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내내 얘기한 것이, 이 법이 통과되면 2조3000억 원의 투자 효과와 1만4000명의 고용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얘기였다. 외국 자본과 합작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 놓으면 대규모 자본투자에서 좀 유리해지는 것 아닌가 하는 반문도 있을 수 있다.
박영선 : 2조3000억 원이 들어오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경제 규모를 생각해 봐도 그렇고, 또 우리가 G20에 속하는 국가인데 2조3000억을 투자한다고 해서 국회가 논의도 안 하고 토론도 안 하고 법을 통과시키면 되나. 3류 국가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거꾸로 생각해서 우리가 미국에 '2조3000억을 투자할 테니 미국 지주회사법을 고쳐서 손자회사를 만들게 해 달라'고 하면 미국 의원들이 그렇게 하겠나? 미국 경제 근간을 흔드는 건데. 2조3000억에 법을 팔아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경제가 그 정도로 허약하지 않다.
또 1만4000명이 고용된다고 하는데, 분석해 보면 대부분이 건설인력이다. 그걸로 고용이 는다고 할 수 없다. 실제로 회사가 생겨서 늘어나는 일자리는 500~1000개다. 이거 늘리자고 법을 뜯어고치나? 그건 아니지 않느냐. 대단히 잘못됐다.
프레시안 : 외촉법에 따른 증손회사 설립 외에 현행 법 체계 안에서는 외국인 투자를 받을 수 없나?
박영선 : 지금 법으로도 된다. 증손회사 말고 손자회사에 투자하면 된다. 아들 회사, 즉 자회사에 투자해도 된다. 자회사나 손자회사가 외국인 투자를 받으면 (국내 기업은 신규로 설립되는 기업 지분의) 20%만 투자해도 된다. 현행법으로도 얼마든지 방법이 있다. 그런데 왜 반드시 법까지 뜯어고쳐서 해야 하느냐. 이런 질문을 김기식 의원이 SK와 GS 측에 여러 차례 했는데 아직 답을 못 들었다고 한다.
프레시안 : 그러니 외촉법을 고집하는 데에 '다른 의도가 있을 수 있다'는 의심이 나오는 것 같다.
박영선 : 우리나라 재벌의 역사를 보면, 재벌을 창시한 사람이 기업을 아들·손자에게 물려줬었는데 이제 증손자에게 물려주는 시대가 됐다. 증손자에게 회사를 합법적으로 물려주기 위해 이 법을 악용할 수 있다.
앞으로 어떤 사례가 있을지 모른다. 예를 들어 외국자본이 없으면 (증손회사 설립 시 손자회사는 지분의) 100%를 투자해야 하는데, 그러면 우리나라 기업에 역차별이 되니 (국내 기업에서) 반드시 문제제기를 하게 돼 있다. 그래서 우리 기업에도 역차별이 없도록 열어주게 되면 순환출자 구조, 문어발식 확장과 뭐가 다르나?
연말 국회에서 아이러니한 일이 있었는데, 같은 날(12월 31일) 오전에는 신규 순환출자 금지법을 통과시키고 오후에는 사실상 신규 순환·상호출자를 허용하는 외촉법을 통과시켰다. 국회가 모순적이고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 이 문제는 굉장히 심각하고 앞으로도 한국 국회가 과연 선진국회인지, 국민과 정의와 경제민주화를 생각하는 국회인지 지적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프레시안 : 외촉법이 외국인 투자를 끌어내는 것보다 재벌가의 기업 상속, 증여를 손쉽게 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인가?
박영선 : 그런 소지가 있을 수 있다. 재벌 증손자 중에도 '검은 머리 외국인'이 있을 수 있고, 기업이 자금을 외국으로 빼돌렸다가 다시 합법적으로 한국으로 가져올 수 있는 루트로 활용될 수도 있다. 악용 소지가 있는 법이다. 제가 그날 반대함으로써 다행히 법이 좀 수정되긴 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심의를 해서 허용하도록 하는 조항이 들어가서 조금 나아지긴 하지만, 그 조항 가지고 이 법을 악용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막을 수는 없다. 우는 아이 그치게 하려고 사탕을 물려주면 울음은 그치겠지만 치아가 썩지 않느냐.
프레시안 : 실제로 그런 부작용 등 여러 우려가 많다. 그런데 법은 이미 통과된 시점에서 단속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을까?
박영선 : 정무위에서 수정안을 내서 재개정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 일단 제가 이 문제를 이슈로 만들었고 공정위 심의를 거쳐야 하는 조항이 법에 들어 있어서 당장은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는 역할, 더 큰 일을 못 벌이게 하는 역할은 했지 않나 싶다.
프레시안 : 박 대통령이 대대적인 규제 완화 의지를 보이면서 이런 유사 법안들이 법사위로 올라왔을 때 같은 일이 또 재현될 수 있을 것 같다. 박 의원이 여태껏 보여준 원칙으로 미뤄보건대 다시 충돌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할 것인가?
박영선 : 사안 사안마다 상황을 판단해야한다. 제일 중요한 건 원칙인데, 원칙이 흔들리면 시간이 지나고 잘못됐다는 것이 밝혀진다. 원칙이 흔들리지 않게 오랫동안 뿌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원칙 속에서 세상이 변하고 사회가 변화하는 것에 대한 유연성을 어떻게 발휘할 것이냐가 문제인 것 같다.
"내가 강성? 시원하게 합의 잘 해준 건 기사 안 쓰더라"
프레시안 : 요약하면 민주당이 경제민주화와 상당히 배치되는 법을 너무 쉽게 터준 것 같다. 이로부터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흐름이 이해가 된다. 그런데 지난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이나 연말 외촉법 사태를 거치면서 박 의원이 대중들에게는 '강성'이라는 이미지가 생긴 것 같은데?
박영선 : 사실은 제가 법사위 간사를 할 때도 그렇고, 위원장 하면서도 해 주는 건 다 시원시원하게 해 준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원칙을 지키려고 애를 많이 썼다. 법사위 간사를 하면서도 30년 동안 통과 안 됐던 법을 제 손을 거쳐 통과되기도 했다. 의료분쟁중재원법이나 한국은행법은 제가 중재한 법이다.
지금 카드사 개인정보유출로 문제가 되고 있는 개인정보보호법도 제가 법사위 간사로 있으면서 이 법이 너무 허술해 꼼꼼히 들여다보면서 많이 강화를 시켰다. 그런데도 사고가 난다. 이번에 사고가 난 부분도 당시 법사위에서 지적이 있었는데 (정부에서는) '금융기관 간에 정보 교류가 있어야 모든 것을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더라. 그런 면에서 보면 제가 지금까지 했던 일들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강성 이미지라는 것은 보수언론이 만든 것일 수 있다. 그럴 때만 기사를 쓰니…(웃음). 제가 실질적으로 법사위 간사나 위원장으로 있으면서, 민주당의 기본 입장에 반하는데도 통과시켜 주거나 타당하다고 생각해서 협조한 것은 한 번도 기사를 쓰지 않더라.
예를 들면 밀양 사태 관련 '송·변전설비 주변 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송주법) 문제도 제 개인 견해와는 전혀 다르고 저는 실제로 기권했다. 법안을 보니 밀양 분들이 그렇게 울부짖을 만하다. 그런데 왜 이 법을 한 달간 중재 노력하면서 밀양 분들과 산업부 장관 다짐을 받고 통과시켜 줬느냐, 밀양 뿐 아니라 전북 군산이나 강원 등 전국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법인데 다른 지역에는 법 통과를 애타게 기다리는 주민들도 있었다.
그래서 한 부분만 봐서는 나라 운영을 못 하니, 전체적 그림이 중요하지만 밀양 분들의 아픔에 대해서는 산업부 장관이 책임지고 해결하라고 (장관의) 답변을 받고 통과시켜 준 거다. 지금 보면 산업부 장관이 약속을 잘 안 지키고 있다. 밀양 분들도 당시에 그것을 매우 걱정했다. 법 통과되면 틀림없이 안 할 거라고.
산업부 장관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결국 박 대통령에게 부담이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은 좋지 않고, 약속한 것은 지켜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공약은 다 파기하고, 법 통과를 위해서는 '다 해주겠다'고 했다가 나중에 와서는 모른 척하고, 이런 정부가 돼서는 안 된다.
프레시안 : 올해도 정치 일정이 즐비하다. 박 의원의 포부를 마지막으로 밝혀달라.
박영선 : 제가 왜 원내대표를 하려고 하고 정치를 하려고 하는가 하면, 저는 국가나 사회에 정의로운 시스템이 정착하지 않으면 선진국으로 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회 정의, 경제 정의가 중요하다. 정의가 안착될 때 누구에게나 골고루 기회가 주어지고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누구에게나 희망이 있는 사회가 된다.
이런 차별 없는 사회, 불평등이 대물림되지 않는 사회를 위해 정치인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보고, 민주당도 불평등으로부터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당 깃발을 들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에 희망이 생긴다.
삼성의 대학 할당제 같은 것도, 발상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방법론적 측면에서 어느 지역이나 대학이 차별을 받는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누구나 공정한 사회를 원하지 않나. 그래야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고, 그런 시대를 다시 구현해 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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