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공사가 끝났습니다. 강은 바다가 돼 버렸습니다. 본래의 모습을 기억하기도 쉽지 않을만큼 흔적조차 깊은 물에 잠겼습니다. 이 모든 공정이 불과 3년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사업이 시작되기 전인 2008년부터 남한강을 기록한 사진가 박용훈씨가 4년 동안 기록한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아름답던 풍경은 물론, 참혹한 공사현장과 어색하게 변해버린 오늘의 강변까지를 담았습니다. 공사 전 마지막까지 웃고 있던 강의 얼굴은 너무 아름다워서 슬프기까지 합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그 아련한 풍경과 함께, 다시는 보지 말아야 할 아프고 불편한 기억을 동시에 전합니다.<편집자>
사람들이 여강이라고 부른 여주 남한강은 소박하고 정겨운 강이었다. 낙동강처럼 고운 백사장이 강 따라 끝없이 펼쳐지던 그런 풍경은 없었지만 하얀 속살을 보이는 여울에서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들을 기다리는 백로, 깔깔대며 맑은 강에서 노는 아이들, 여기저기 습지와 갈대의 춤사위, 올망졸망 펼쳐진 조약돌 강변, 그 강변에서 알을 품다가 사람을 따돌리느라 애간장을 태우던 작은 물떼새, 아늑한 백사장과 강변 버드나무 수풀, 놀라 뛰어 달아나던 고라니와 꿩 그리고 모래에 부채를 그리는 방동사니와 개미지옥과 도리섬 사구에서 자주 만났던 표범장지뱀, 일년을 살아야 겨우 손가락만하여 애써 척박한 돌밭만 찾아다니지만 가을이면 노란 꽃술에 연보랏빛 청초한 꽃을 한꺼번에 피워내던 단양쑥부쟁이들, 아침햇살에 반짝이던 도리마을 앞 강물과 붉은 낙조를 뿜어내던 흥원창... 여강은 아름다웠고, 구비구비 강 따라 보석이었다.
강이 죽었다고 했던가? 그 강을 살린다며 2010년 들어선 어느 겨울날 바위늪구비 일대의 버드나무들을 모두 베어내고 뽑아내고 아예 습지를 수장하고, 강에서 폭약을 터뜨리고 바위들을 깨부수고, 물막이로 강을 나누고 강물을 다 뽑아내고, 물고기들이 떼로 죽거나 물이 빠져 드러난 바위 틈틈이 머리를 처박고 죽거나 조개들은 우왕좌왕하다가 말라죽거나 갈 곳 잃은 새들은 공사장을 배회하고, 단양쑥부쟁이는 뿌리가 뽑혔다. 그리고, 강이 좋아 백사장이 보이는 곳에 집을 지었던 한 시인은 망가지는 강을 보며 저녁마다 울었다.
강바닥을 파고 닥닥 긁어낸 후 다시 강물을 채웠다. 강은 넓고 깊어졌고 강을 가로질러 기둥을 크게 박은 보는 가라하면 가고 서라하면 서는 강을 만들었다. '생명이 깨어나는' 그 강에 잘 포장된 자전거도로보다 우선하는 것은 없었다. 한 때 농토였고 수변습지였으며 고라니의 침실이었고 버드나무 군락지였던 곳들은 4대강변 따라 끊기지 않고 이어져야 하는 자전거길에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강 따라 마주선 절벽이 깎여나갔고, 과수밭이 잘려나가고, 한적한 도로가 있어도 자전거길은 강을 바로 마주보며 달려야했다. 바위늪구비 남은 땅에도 더 이상의 공존은 없다. 오로지 사람을 위한 땅이 있을 뿐이다. 그나마도 강 따라 펜스가 쳐지고 펜스 길따라 사람의 왕래가 없어서 무성한 풀이 앞을 막는다. 사람들은 전처럼 강에서 물놀이를 하지 못하고 펜스 앞에 놓인 벤치에 앉아 커지기만 한 강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만 있을 뿐이다.
강에 그렇게 많은 물을 채웠는데 가뭄해소에 요긴했다거나 전보다 더 맑은 물을 더 잘 사용하게 되었다는 소식은 없다. 기후변화에 대비한다고 하였지만 4대강의 녹조창궐은 18년 만에 찾아온 폭염 탓일 뿐이다. 22조를 들였다는데 무엇이 좋아진 것일까? 아름답던 백사장과 뛰놀던 고라니와 도리섬 옆에서 한가롭던 고니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파란하늘 뭉게구름 그리는 강에서 맑은 웃음소리 강물 따라 흘려보내며 한 여름을 놀던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반만년 비단결 같은 금수강산이라는 이 땅에다 고작 2년 반 동안 우리는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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