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3일부터 중국 동북 3성에 있는 조선족 민족학교 6곳을 둘러봤다. 현재 조선족 민족학교는 최근 20년 동안 학교수가 5분의 1로 줄었으며 학생수는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한 때 중국인들은 굶어도 조선족들은 이밥(쌀밥)을 먹으며 번성했다던 조선족 마을의 붕괴가 한참 진행 중이었다.
계림향이라는 작은 마을로 들어서자 간판에 한글과 중국말이 함께 씌어져 있는 것을 보고 조선족 마을이라는 것을 단숨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을은 텅 비어 있고 인적도 드물었다. 모두 외지로 떠나고 마을엔 노인들과 아이들만 남아 있다. 큰 도시나 한국으로 돈 벌러 떠난 가정이 많아 학교 학생들의 대부분이 친척집이나 조부모에게 맡겨져 있다.
1860년경 계속된 흉작으로 농사라도 마음껏 지어보고자 만주 땅으로 건너간 조선족 1세대들이 지금 조선족의 기원이다. 이어 일제의 수탈에 못 이겨 이주하거나 독립운동가들이 근거지로 삼아 활약하면서 조선인의 만주생활은 이어져왔다. 일찍이 우리의 높은 교육열로 한민족의 정체성을 키우고 독립운동가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서전서숙, 명동학교, 신흥무관학교 등이 지금의 조선족민족학교의 출발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유구한 역사를 안고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조선족학교들은 현재 결손가정 아이들의 심리적 문제, 이중언어학습에 대한 부담, 민족문화교육의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어려움을 안고 있다. 중국정부에서야 소수민족 정책이 비교적 잘 되고 있어 교육부 지원 등은 한족 학교와 다르지 않으나, 우리글과 우리문화를 교육하는 학교에서 민족교육 콘텐츠의 부재만큼은 심각하다.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한글로 된 책들은 자체적으로 출판된 양이 매우 적고 한국에서 출판된 것들은 쉽게 구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전에 지원된 한국 책들도 너무 오래됐고, 아이들에게 적합한 도서도 부족하다. 독서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책을 통한 우리말 도서자원이 없으니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또한 사라져 가는 민족문화를 살리고자 문화교육을 중시하고 있지만, 어떤 학교의 경우 사물놀이 기구는 있는데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상황에 처해 있기도 하다.
이 학교의 모토는 '사랑이 반이다'이다. 교사 1인당 학생 2명을 책임지면서 대리부모의 역할까지 한다. 또 2009년부터 민족문화체험하기 프로그램을 만들어 김치담그기, 윷놀이, 장기대회 등을 열어 학생들과 지역주민들에게까지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계림향 조선족학교 임춘국 부교장(38)은 자신은 부모와 조부모의 영향으로 우리 민족 글을 배우고 우리 민족 말을 써야 한다고 교육을 받아 당연히 교원도 조선민족학교에서 하길 원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부모의 부재로 가정에서의 교육이 전혀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 민족교육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를 학생들이 망각하지 않도록 학교에서 더 열심히 교육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듯 민족교육에 대한 열의와 애정에 비해 현재 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여건은 몹시 열악한 상태다. 그래서 동북아평화연대에서는 민간 차원의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개발해 각 교육청과 관련기관과 기업의 지원을 끌어내고 있다. 교사 교육 연수, 한국 전통문화 연수, 결손가정 학생들을 위한 심리상담교사 양성, 한국 도서 등 교육 콘텐츠 보급, 유치원 교사 양성 프로그램 개발 및 교구 지원 등이 그것이다.
이 중 도서보내기 캠페인은 해외에 있는 동포들을 위해 우리 모두가 동참하여 지원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한글로 된 책이 제대로 구비되어 있지 못한 학교들이 대부분인 현실에 2008년부터 시범적으로 도서가 지원된 동녕현 삼차구중심소학교의 사례가 재밌다.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책을 읽히기 위해 끊임없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지원한 결과 운동장에서 놀 때 중국말로 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우리말을 하기 시작했고, 독후감 쓰기 덕분에 아이들의 문장력 실력 또한 많은 향상을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학생들의 자신감과 활기참이 다른 학교와 달랐다.
이렇듯 교육이라는 단비는 아이들의 미래를 바꾸고 중국 내 우리 민족의 위상을 달리하게 만든다. 한중 수교 20년으로 중국과의 활발한 교류가 이어지는 동안 우리 중국동포들은 그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이는 그들이 고집스럽게 지켜온 우리말과 우리글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민족교육이 계속 이어져 중국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이 조선민족이라는 자부심 잃지 않고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우리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그 일환으로 현재 동북아평화연대에서 진행하고 있는 도서보내기 캠페인에 우리의 관심을 모아보자. 책을 직접 모아주거나 기금으로 후원할 수 있다. www.peaceasi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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