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람이나 자연이 늘 있던 자리에 있을 때 존재감을 상실한다.
늘 '거기 있음'으로 인해 새롭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새롭게 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내 눈 앞에 원하든, 원치 않든 늘 그 자리에 있으니까 소중함을 잊어버린다.
일상의 소중함을 잊어버리듯이 말이다.
참 아이러니 하게도 사람들은 '거기 없음'으로 인해 존재에 대한 기억을 하기 시작하고 추억을 더듬기 시작한다.
오로지 결핍의 순간에만 기억을 회복한다.
사라지거나 모습을 바꾸어야만 그때서야 '거기에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움'이란 '결핍'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정서이다.
'어떤 대상을 좋아하거나 곁에 두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어서 애타는 마음, 과거의 경험이나 추억을 그리는 애틋한 마음' 이 그리움이라고 한다.
완전히 충만해 있을 때 우리는 누구를, 그 무언가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무언가 모자라고, 그 자리에 그 사람이, 혹은 그 풍경이 없을 때 우리는 '그립다'는 말을 한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지나간 시간들을 추억하기 위함이고, 기억하기 위함이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의 충족과 누르고 난 뒤의 결핍.
그 끊임없는 반복 속에서 사진가는 자신의 기억을 이미지로 만들어낸다.
기억은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이미지는 기억을 재생산한다.
'그때 거기서 그런 일이 있었다.
'그때 거기서 그런 음악을 들었다'
'그때 거기서 그런 말을 했다'
내가 만난 이 친구들은 자신의 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다.
워낙 상처가 깊기도 하겠지만 쉽게 어른을 믿지 않는다.
자신의 부모로부터, 또 다른 어른들로부터 받은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 걸까?
친구들의 마음에 다가가 자신의 기억들을 이미지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하는 동안 그들은 무수히 많은 생각과 기억들이 교차할 것이다. 같이 작업을 하다보면 자신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낸다.
'결핍'은 모자라고, 망가지고, 비어있고, 떠나고, 사라진, 빈틈이다.
缺 이지러질 결, 乏 모자랄 핍
건강하지 못한 정서이다.
'결핍'이라는 건강하지 않은 정서를 어떻게 '그리움'이란 건강한 정서로 바뀔 수 있을까?
그건 그들에게 영혼에 어떤 먹이를 주느냐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그들에게 기억을 끄집어 낸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런 과정이 없이는 결핍은 영혼의 황폐만 가져다 줄 뿐이다.
한 학기가 끝날 즈음 그들이 찍은 사진의 이미지를 보면 밝아졌음이 한 눈에 보인다.
기억하고 찍고 다시 기억하고 찍고를 반복하는 동안 그들의 결핍이 그리움이 되고, 아팠던 기억도, 슬픈 기억도, 나쁜 기억도 다 녹여내 푸르른 청춘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
사진가 고현주씨는 2008년부터 안양소년원 아이들에게 사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연재는 그 아이들이 소년원에서 찍어낸 사진을 소개하고 그 과정을 정리한 것입니다. 그는 청소년예술지원센터 '(사)꿈꾸는 카메라'를 통해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아이들이 사진을 통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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