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한지는 참 독특한 종이다.
한국 사람의 정서와 한지가 갖고 있는 따뜻하고 은은한 물성은 참 많이 닮아있다.
닥종이의 질기고 강인함과 깊은 바다의 품속 같은 포용력을 지닌 한지는 무엇이든 잘 스며들게 하고 일단 스며들면 잘 번진다.
자신의 몸에 와 닿는 것에 대한 일체의 선입견이 없다.
무엇이든 다 자신의 품안에 기꺼이 품는다.
한지가 갖고 있는 이런 정서의 따뜻함과 건강함이 부러웠다.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때 난 항상 한지가 갖고 있는 번짐과 스밈을 생각한다.
그런 순결한 번짐과 스밈을 꿈꾼다.
인연.
그 놀라운 시간과 공간의 스침 속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과의 인연.
인연은 기다리거나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저절로 그렇게 되어 지는 것이라고 했다.
봄이 가면 여름이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는 것처럼 자연스런 순환이다.
수 없이 많은 인연들.
이 친구들과 인연은 나에게 또 다른 삶의 모티브를 만들어주었다.
사람과의 관계는 서로의 배려와 인내와 비움이 충만 했을 때 성장할 수 있다.
관계의 평등을 그 친구들을 통해서 깨달아가고 있고, 성장 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사진을 배워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뜻한 정서를 공유하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친구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정서다.
사랑, 따뜻함, 배려, 정, 아낌, 나눔...
영혼이 따뜻해야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스며들어야 번질 수 있다.
무엇이든 스며드는 것이 먼저다.
스며들기 위해서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야 된다.
그래야 타인이 와서 번지는 법이다.
모든 것의 시작은 내 자신이다.
어쩌면 그들에게 사진은 한낱 장치에 불과하다.
어떤 것이든 마찬가지이다.
사진가 고현주씨는 2008년부터 안양소년원 아이들에게 사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연재는 그 아이들이 소년원에서 찍어낸 사진을 소개하고 그 과정을 정리한 것입니다. 그는 청소년예술지원센터 '(사)꿈꾸는 카메라'를 통해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아이들이 사진을 통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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