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순이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몸이 크다.
행동도 굼뜨고 느렸다.
말도 별로 없고 남의 눈치도 보는 듯했다.
어떤 때는 답답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난 이 친구가 감각까지 둔한 줄 알았다.
제주도 사진여행 가서 나를 가장 많이 놀라게 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미순이었다.
사진에세이를 가장 짜임새 있게 썼고, 글도 솔직해서 좋았다.
그리고 사진 한 장 한 장마다 자신의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한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누가 강요한 것도, 누가 쓰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녀는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고스란히 밖에다 내어 놓았다.
마치 아픈 내장을 밖에 꺼내 놓듯이 그렇게 힘들게 자신의 아픔을 꺼내 놓았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상처를 말하기는 쉽지 않다.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까?'에서부터 '내가 상처 받지 않을까?' 하는 수많은 생각들이
오가면서 결국 주저주저하다 그만두게 되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상처를 누군가에게 꺼내 보일 때 수없이 많은 계산과 생각을 한다.
타인으로부터 상처 받았던 경험이 있었던 사람일수록 남에게 드러내놓기는 더욱 어렵다.
드러내는 일은 그래서 힘들다.
사진은 이 친구들에게 있어 드러냄으로서의 매개물로 너무나 적절한 도구이다.
이 친구들에게는 사진을 잘 찍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잘 드러내는 일이 우선이다.
어떤 작가는 나에게 '왜 아이들에게 사진을 이런 식으로 가르치세요?'하고 물었다.
'이런 식' 이란 말은 이론을 무시하고 사진을 찍게 한다는 뜻일 게다.
이론은 필요하지만 중요하지 않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필요에 의해 배우면 되는 거니까, 수없이 많은 사진 이론서들이 널려있고, 인터넷 들어가면 사진에 관심이 많은 블로거들이 쓴 사진이론 강좌가 수도 없이 많다.
꼭 필요하다면 배우면 된다. 그 때 배워도 늦지 않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일은 배워서 되는 게 아니다.
자신의 상처를 꺼내 놓는 일은 누가 시켜서 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감정이란 자꾸 드러내놓고 글을 쓰는 행위든, 찍는 행위든, 연주하는 행위든 그 어떤 행위를 통해서 건강하게 소모되는 것이다.
미순이가 과연 그 좁은 공간에서 자신의 감정을 사진으로 표현하는 작업이 없이 자연에 데리고 나갔을 때 땅위에 세밀하게 퍼져있는 들풀들을 볼 수 있었을까?
그 풀들을 보면서 행복한 도마뱀이란 이미지를 생각할 수 있었을까?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 사람들에게는 마음이 두 개 생긴다.
하나는 원래 있었던 심장 안에, 또 하나는 눈 안에..
세포들이 놀래서 튀어나온 게 눈이라고 한다.
우리가 보는 눈은 그래서 놀라운 세포덩어리들이다.
미순이가 발견한 '행복한 도마뱀' 놀랍지 않은가?
그 발견이 ,
그 감성이,
자신의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날것 그대로' 직시하게끔 해 주는 것.
내 발바닥이 있는 '지금, 여기'를 보게 끔 해 주는 것.
그래서 '지금, 여기' 에서부터 또 다른 꿈을 희망하게끔 해 주는 것.
그것이 사진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참, 좋겠다.
사진가 고현주씨는 2008년부터 안양소년원 아이들에게 사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연재는 그 아이들이 소년원에서 찍어낸 사진을 소개하고 그 과정을 정리한 것입니다. 그는 청소년예술지원센터 '(사)꿈꾸는 카메라'를 통해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아이들이 사진을 통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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