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초원이라 불리는 몽골이나 중앙아시아를 다니다보면 황무지와 같은 사막을 더 많이 보게 된다. 실상 우리가 생각하는 초원은 더욱 북쪽으로 올라가 시베리아의 타이가 숲 정도에서 그 푸르른 풍경을 볼 수 있다.
1만 년 전 최후의 빙하기가 끝나고 지구는 무척이나 물이 풍부한 대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던 지구가 지금은 사막화 시대를 살고 있다. 사막화는 누구의 탓일까? 원래 지구의 순환법칙에 따른 자연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사납게 변해버린 인간의 이기적인 에너지 낭비 탓인지, 그도 아니면 초근목피까지 먹어치우는 염소 때문인지......
우리는 쉽게 사막과 초원의 경계에서 양과 염소를 치며 살아가는 유목민들을 떠올린다. 이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풀도 남지 않아 사막이 확대되고 있다고. 그래서 최근 중국 정부는 유목민을 초원에서 소개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끝까지 남아있겠다고 버티는 사람들에게는 가축의 수를 제한한다. 여러모로 이들에게 사막화의 혐의를 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다리야 강변에서 사막화의 진짜 주범을 만났다. 그건 지구적으로 돌아다니는 거대 자본이었다. 파미르에서 기원해 중앙아시아의 카라쿰과 키질쿰 사막을 지나 아랄해로 흘러들어가는 아무다리야, 시르다리야 강은 말랐다. 수천년간 유목민들의 젓줄이었던 강이 말라버린 것이다. 소련시절 지역 간 무역을 활성화한다는 목표로 이 지역에 떨어진 특산물이 목화였다. 강물을 이리저리 빼서 목화농장을 거대하게 키웠다. 덕분에 식량은 수입해야 했고 사막은 점점 확대됐다. 소련의 해체 후 목화가 인기를 잃자 이번에는 초원과 사막 언저리에 케시미어를 생산할 수 있는 양과 염소가 가득 찼다. 사막은 더욱 확대됐다.
기후변화는 우리 인류가 자연에 대해 대규모 공포를 느끼기 시작한 서장이다. 하지만 이 공포는 불가항력적인 공포가 아니라 죄책감을 동반한 공포이다. 인간이, 특히 자본이 이 기후변화를 야기했을지 모른다는 범죄자의 그 것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공범을 자꾸 만들려 하고 있다. 그리고는 공범 중에서도 가장 힘없고 약한 유목민들을 주범으로 낙인찍으려 한다. 그들의 하루 에너지 소비량은 일등 에너지 낭비국 미국인에 비해 1천분에 1도 안 된다. 그들은 오늘도 가축의 고기와 젓을 먹고 가축의 똥으로 난방하고 가축의 기름으로 불을 밝힌다. 그들은 낭비하는 것이 별로 없다.
이상엽 /사진가,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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