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들은 쉬운 길로 가기보다 옳은 길을 찾기 위해 6년을 싸운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2005년 여름, 기륭에서 처음 본 것은 철문 쇠창살 너머로 보이는 조합원들이었다. 한 아이가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안에 있는 엄마와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눴다. 1970년대도 아닌 2005년에 보아서는 안 되는 장면이었다. 그때부터 이 기록은 시작됐다.
6년의 기억을 톺아보는 것이 괴로운 일만은 아니었다. 일상적인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추위와 비바람에 맞서면서도, 끝이 잘 보이지 않는 막막함이 덮쳐도 이들한테는 항상 웃음이 있었다. 그 폭력에, 막막함에 먼저 지쳐 떨어져나가는 것은 부끄럽게도 조합원들이 아니라 카메라였다. 6년 내내 온몸을 옥죄는 상황만 있었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찍지 못했거나 정신적 외상이라도 입었을지 모른다. 사진을 찍으며 받았던 고통을 치유해 준 건 그런 기륭의 조합원들이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다음 세대에 비정규직이라는 잘못된 유산을 넘겨줄 수 없다는 신념을 지키며 세속과 타협하지 않는 '인간성'을 조합원들에게서 봤다면, 사측으로부터는 인간성이 말살되는 과정을 봤다. 그것을 기륭전자 구사옥 철문이 상징했다. 철문은 서서히 막혀갔다. 공장 안이 훤히 보이던 철골 구조 반이 철판으로 막혔다. 조합원들은 앉아서 문 아래쪽으로 세상을 바라봤다. 얼마 후 바닥 한 뼘을 남기고 철문은 철판으로 막혔다.
이제 조합원들은 땅에 엎드려서 작은 틈으로 바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사측은 그 틈도 내버려두지 않았다. 철문이 완전히 막혀버린 뒤에도 철문의 변신은 계속됐다. 경찰 버스가 철문을 대신하기도 했고 용역들의 검은 몸이 문이 되기도 했다. 담에는 뾰족한 유리파편을 묻었고 철조망이 둘러졌다. 그 철조망을 따라 감시카메라도 설치됐다. 교도소를 만든 것이다.
최저임금에 10원을 더 얹어서 불법으로 살아 있는 기계를 쓴 사람들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그들은 보여줬다. 이 사진들은 보이든 보이지 않든 그 철문을 배경으로 기록됐다.
기륭 조합원들이 문자해고·잡담해고를 당하고 6년째 싸워오는 동안 정규직이 되는 건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힘든 세상이 됐다. 어떻게 이런 세상이 된 걸까. 처음에 함께했던 200여 명의 조합원들은 지금 어디에서 얼마짜리 기계가 되어 있을까. 이런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한 사람들이 있다면, 당신들 자식은 비정규직으로 일하게 하겠느냐고 묻고 싶다.
이 사진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40년 전 전태일의 외침을 가슴에 안고 6년째 싸워온 사람들에 대한 끝났으되 끝나지 않은 기록이다.
<기륭전자 사태 일지>
2005년 7월 5일 부당 대량해고에 반발해 기륭전자 노동조합 결성
2005년 8월 24일 전면파업 돌입
2005년 10월 17일 공권력 투입 2명 구속 / 회사 앞 천막농성 돌입
2006년 7월 6일~15일 한강다리 농성, 총리공관 앞 농성, 동아일보 건물 옥상점거 농성
2007년 8월 24일 2주년. 비정규 여성투쟁사업장 기륭, 이랜드, 뉴코아, KTX와 공동투쟁
2008년 3월 <기륭비정규 투쟁 승리를 위한 공대위> 결성
2008년 5월 11일 서울시청 하이서울페스티발 16m 조명탑
2008년 5월 26일~6월 12일 구로역 35M CCTV철탑 농성 돌입
2008년 6월 11일 전 조합원 기륭전자 앞 무기한 단식농성
2008년 6월 28일 서울시청 앞 1040인 동조단식 조직 삼보일배
2008년 8월 14일 교섭 노사 간 의견접근 안되어 결렬
2008년 9월 25일 암 투병하던 권명희 조합원 영면
2008년 10월 15일 미국 시리우스 원정투쟁 출국
2008년 10월 20일 상징탑 고공농성. 용역깡패 난입. 20여 명 부상. 17명 연행
2008년 10월 21일 기륭전자 공장이전
2009년 4월 20일 기륭공대위 김천석 집행위원 영면
2010년 6월 3일 기륭 신사옥 앞 집회금지 가처분 고시
2010년 8월 14일 포클레인 동원 농성장 강제철거 시도
2010년 10월 13일 노사 문제 해결 촉구를 위한 단식농성 돌입
2010년 10월 15일 대형 포클레인 부지 진입 시도. 포클레인 위 농성 돌입
2010년 11월 1일 1895일만에 노사 협상 타결. 10명 정규직화 합의
☞ 정택용 사진가 인터뷰 바로가기: "'다칠지도 모르는데'…솔직히 도망치고 싶었죠"
※ 영상 속 '함께해 주신 분들'의 명단은 기륭전자 조합원의 무기한 단식에 동조해 2008년 6월 28일 하루 동안 단식에 참여한 분들의 명단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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