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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4번째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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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4번째 외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수요시위

오늘은 꽃무늬가 수 놓인 하얀 저고리를 골라 입었다. 참 익숙하고 오래된 외출이다.

어느새 가늘어진 팔뚝에도 검버섯이 피었다. 깊게 패인 주름에는 그림자가 지고 늘어진 눈꺼풀은 한참이나 내려와선 올라가질 않는다. 초침을 따라 늙어 온 세월이 벌써 70여년이다.

수요일 정오의 일본 대사관은 그들이 우리의 말을 듣고 있을거라고 착각할만큼 조용하다.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던 말들을 담아 들고 여기에 나온 세월도 벌써 18년. 이미 8년전부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집회라고 했으니 우리 만큼 기구한 사람들도 많지 않은 모양이다.

오늘은 일본에서 고베여학원대학교 학생들이 찾아왔다. 제 나라 정부보고 "사죄하라"고 외치는 손녀 뻘 되는 아이들이 고맙고도 안쓰럽다. 죄지은 사람처럼 서 있다 울기 시작하는 한 아이를 보니 괜히 미안하기까지 하다. 매번 찾아와 주는 고마운 일본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런 마음이었다. 우리 세대에서 풀지 못한 게 너무 많았다.

밤마다 옆에 눕던 말벗들이 눈 감기 시작한 지 오래다. 경술국치 100년이라는데 그동안 두 나라 정부는 무얼 했던가. 우리가 모두 죽어야 끝날 일이다. 누군가는 그걸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뻔뻔할수도, 이렇게 두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 우리의 목숨이 붙어 있어 유감이라면 미안하다고 할 밖에......

매번 마지막이길 바라며 길을 나서지만 이번에도 마지막은 되지 않을 것 같다. 다시 나눔의 집으로 가는 차에 오른다. 오늘의 외출은 여기까지다. 다음 주에도 나올 수 있겠지...... 나이가 드니 하루하루가 무섭다. 어느새 바람이 차갑다.

1992년 시작된 수요시위는 2002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집회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2010년 9월 8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934번째 수요시위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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