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남동부 '다막' 지역에 있는 '골드합' 난민캠프의 한 초등학교. 대나무로 엮어 만든 교실에는 의자도, 책상도 없다. 흙바닥에 나란히 앉아 있는 '니르말라 드르웡가나'와 '딜마야 구룽'은 이 교실에서 짝꿍이다. 난민촌에서 태어나고 자란 열 살배기 두 소녀는 서로 둘도 없는 친구다.
최근 이들 두 소녀의 가족은 서로 다른 선택을 해야 했다. '니르말라' 가족은 재정착을 신청해 곧 제 3국으로 떠날 예정이다. 그러나 '딜마야'의 가족은 고향인 부탄으로 돌아가기로 한 결정을 바꾸지 않기로 했다. 다가올 이별의 순간이 그려지는 듯 둘은 잡은 손을 놓지 않다가 이내 포옹까지 하며 얼굴을 맞댄다. 그러더니 입을 모아 함께 말한다.
"우리 헤어지게 되면 너무 슬플 거 같아요."
유엔난민기구(UNHCR)의 관리 아래 18년간 '장기 미해결 과제'로 남아 있던 네팔 내 부탄난민문제가 최근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고 있다. 무료하기만 하던 난민촌이 술렁이는 이유다.
다막 지역에 형성된 7개의 난민촌은 1990년 네팔 출신인 '트샴파트스'족에 대한 부탄 정부의 탄압으로 시작되었다. 1800년대부터 네팔에서 부탄으로 이주해 정착하며 경제적 기반을 닦아온 이들은 1958년 부탄의 정식 국민이 되었다. 그러나 1990년 부탄정부가 이들의 언어와 복식을 부탄 식으로 의무화 하고, 이들의 종교(힌두)가 부탄의 절대왕정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탄압하면서 급기야 강제 추방을 단행했다. 당시 부탄전체 인구의 7분의 1이나 되던 트샴파트스족 주민 8만 명은 네팔과 부탄 사이의 인도 국경을 지나 네팔의 남동부로 유입됐다. 이후 난민촌에서 태어난 이들까지 포함해 현재 10만8000명이 7개의 난민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지난 18년 동안 이곳 난민들은 네팔정부와 UNHCR(유엔 난민기구), WFP(세계식량계획)등의 도움으로 생활해왔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부탄에 귀환하는 방향에 중점을 두고 부탄 정부와 국제사회에 호소해왔으나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그러다 최근 UNHCR과 노르웨이, 덴마크를 주축으로 하는 '재정착지원국' 7개국이 나서 부탄난민들에게 제3국으로의 재정착을 제안했다. 이후 지난 8월을 기준으로 6만 명이 재정착에 관심이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재정착을 완전한 대안으로 보기는 어렵다. 재정착 신청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지만, 실제로는 각 세대별, 연령별로 재정착에 대한 견해가 엇갈리는 상황이다. 난민촌 내부가 여전히 혼란의 불씨를 안고 있는 것이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재정착이 새롭고 또 행복한 인생을 열어줄 것" 이라는 기대는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재정착 신청이 늘수록 부탄으로 귀환하려는 사람들의 불안감도 같이 높아간다. "재정착이 진행되면 '부탄으로의 귀환'이라는 본래의 목적이 불가능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심지어 재정착에 반대하는 일부 난민들은 다막 주재 IOM(국제이주기구)의 차량과 사무소를 공격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재정착을 통해 난민촌의 고달프고 무료한 나날을 접고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사람들과 지난날 소박하지만 행복하게 살아왔던 부탄에서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려는 사람들. 이들이 바라는 행복의 조건은 모두 똑같을 것이다. 자신의 의지대로 꿈을 실현하고, 한편으로 어떤 차별이나 정치적 박해, 또는 불이익도 받지 않으며 온전히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사회. 그 조건은 언제쯤 현실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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