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뒤 창 너머로 히말라야가 보였다.
카트만두의 지독한 스모그와 그 상층의 구름을 뚫고 솟아 오른 '다막'행 '부다항공' 쌍발기. 엔진 소음에 섞인 몽환적 창밖 풍경은 그 자체가 모니터 속 작은 동영상 화면처럼 비현실적이었다. 그렇게 한참 창밖으로 히말라야가 흐르고 있었다. 네팔과 파키스탄으로 이어지는 아시아 난민 취재 일정. 돌연 파키스탄 일정이 무산되면서 네팔의 부탄 난민으로 한정된 취재가 썩 내키진 않았다.
"핫(hot)한 파키스탄이 빠지다니…."
늘 그렇듯 이번 취재도 현장을 보기 전엔 머릿속을 비우고자 했다. 하지만 어쩌랴. 어느새 피곤한 내 척추로 전달되는 비행기의 둔탁한 착륙이 '현실'과 '현장'이 코 앞 임을 일깨운다. 비워뒀던 머릿속을 채워 넣자. 생각하자 그 보편적 명제를….
"그 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
2008년 11월 7일. 일주일이라는 짧은 일정에 붙은 거창한 제목 '아시아 난민 테마 취재'가 적잖이 부끄럽다. 어쩔 수 없다. 가능한 많이 보고 깊게 들어가야 했다. 일곱 개의 부탄 난민 캠프 중 여섯 개의 캠프를 돌며 30여 명을 인터뷰했다. 각각의 난민 캠프에서 UNHCR(유엔난민기구)과 IOM(국제이주기구)의 헌신적인 활동이 조심스레 포착되었다. 오랜 문제들이 해결되고 있는 듯한 기운이 느껴졌고 캠프들은 술렁였다. 학교에서, 낡은 대나무 집 처마 아래에서, 흙바닥인 그들의 방안에서, 미로 같은 캠프 골목골목을 돌며 만난 이들을 사진에 담았다. 또 어눌한 음성을 기록했다. 한결같이 제3국으로 '재정착'과 부탄으로 '자발적 귀환'이 그들 모두의 운명 앞에 놓인 알파고 오메가처럼 보였다. 모두들 재정착을 말했고 모두들 자발적 귀환을 말했다.
네팔 남동부 '다막'지역에 형성된 7개의 부탄난민촌은 1990년 부탄 내 네팔출신의 '트샴파트스'족에 대한 부탄정부의 탄압으로 시작되었다. 1800년대부터 네팔에서 부탄으로 이주, 정착해 일정한 경제적 기반을 닦은 이들은 1958년 부탄의 정식 국민이 되었다. 그러나1990년 돌연 부탄정부가 이들의 언어와 복식을 부탄 식으로 의무화 했다. 또 이들이 부탄의 절대왕정을 반대한다는 이유를 들어 탄압하기 시작했다. 결국 '하나의 민족' '하나의 종교'를 내세운 부탄 정부가 이들의 종교(힌두) 등을 문제 삼아 강제 추방을 단행했다. 당시 부탄전체 인구의 7분의 1이나 되는 8만 명이 네팔과 부탄사이의 인도 국경을 지나 네팔의 남동부로 유입됐고, 이후 난민촌에서 태어난 이들까지 포함해 현재 10만 8천명이 네팔 남동부 다막지역에 7개의 난민촌을 이루며 분산 거주 중이다.
지난 18년 동안 난민촌에서 생활해온 이들은 네팔정부와 UNHCR(유엔 난민기구), WFP(세계식량계획)등의 도움으로 부탄으로의 자발적 귀환을 중점에 두고 부탄정부와 국제사회에 호소해왔으나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그러다 최근 UNHCR과 노르웨이, 덴마크를 주축으로 하는 '재정착지원국' 7개국이 나서 부탄난민들에게 제3국으로의 재정착을 제안해 2008년 8월 현재까지 6만 명이 재정착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부탄난민문제의 실마리를 열어가는 재정착방안도 완전한 대안으로 보기는 어렵다. 급격히 증가하는 재정착 신청에도 불구하고 각 세대별, 연령별로 재정착에 대한 견해가 상충하면서 난민촌 내부의 문제는 여전히 혼란의 불씨를 안고 있다. 재정착신청이 늘수록 "재정착이 행복하고 새로운 인생을 열어줄 것"이라는 기대와 부탄으로 귀환하려는 사람들의 불안감이 동시에 높아간다. "재정착이 진행되면서 부탄으로의 귀환 이라는 본래의 옵션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어떤 쪽을 선택해도 아니, 선택 그 차체에 흐르는 확신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깊은 골이 되어 어둡게 드러났다. 역시 완전한 문제의 해결은 불가능한 것일까? 우리 인간의 진화된 문명은 이들이 난민이기 이전의 온전한 삶으로 되돌릴 수는 없는 걸까?
사람은 별이 되어 만난다.
별들은 저마다 서사가 있다. 그래서 가슴이 아리기도 하고 따스해지기도 한다. 캠프 일정 마지막 날. 골드합 난민촌에서 만난 두 소녀 '니르말라'와 '딜 마야'는 다른 피부, 다른 눈 색깔을 하고 있지만 영롱하고 한없이 맑은 표정으로 내 앞에 다가왔다. 난민촌에서 태어나 다정한 친구로 자란 이 작은 소녀들에게 부여된 국제법상의 '난민'이라는 법률적 지위는 적어도 그 표정 앞에서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열 살에 불과한 소녀에게 선택된 두 개의 옵션은 지금 부탄난민들이 처한 현실의 모든 문제를 담고 있다. 제3국으로 '재정착'과 18년이 지나도 기약 없는 '머나먼 귀향'을 기다리는 일. 그리고 그 어느 곳도 순탄치 않을 자신의 험난한 미래를 헤쳐 나가야 하는 일. 이제 곧 소녀들은 헤어질 것이다.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취재하는 일에 있어 그들이 맞닥뜨린 현실과 그 고통의 경중을 한가로이 따져 물을 수는 없다. 현재 지구상에는 1000만 명의 난민이 있다. 아시아에만도 500만 명의 난민이 있다. 참혹한 전쟁과 기아, 불가항력의 재앙이 휩쓸고 간 현장에만 난민이 존재할 거라는 우리의 낡은 관념은 난민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할 뿐이다. 난민의 고통을 이른바 '타인의 고통'으로 대상화하는 또 다른 걸림돌일 수 있다. 결국 난민의 존재는 나와 우리 안에 있는 '야만의 얼굴'에 다름 아니다. 자, 그럼 무엇을 해야 할까?
의사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니르말라'와 '딜 마야'가 꿈을 이뤄 다시 만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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