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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그러더라, '핸드폰 꺼내는 것만 봐도 무섭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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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그러더라, '핸드폰 꺼내는 것만 봐도 무섭다'고"

[이 주의 조합원] 이라크·아프간 2년 주둔한 김휘호 씨

"왜 하필 저인가요?"

의아하다는 반응이 수화기를 타고 넘어왔다. '이 주의 조합원' 코너를 통해, 사는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다는 요청에 대한 김휘호(27) 씨의 반문이었다. 사실 한 줄 때문이었다. 협동조합팀으로부터 들은 김 씨의 경력 중 ‘이라크 파병’이라는 그 한 줄. 그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궁금해, 부산에 있는 김 씨에게 연락했다.

김 씨는 육군 부사관으로 군 복무를 하던 중, 2008년 이라크로 파병됐다. 자원한 건 아니었다. "하필이면 제2 전공이 아랍어였어요. '아랍어 할 줄 아냐'고 묻더니 이라크로 가라더군요." 그렇게 간 이라크에서 1년 6개월을 보냈다. 김 씨가 파병된 곳은 이라크만이 아니었다. 한국에 돌아와 6개월을 머문 후, 이번엔 아프가니스탄으로 가야 했다. 아프가니스탄에 머문 기간은 6개월. 4년에 가까운 군 복무 기간 중 절반이 넘는 2년을 그렇게 해외에서 보냈다.

"위기 상황이요? 오히려 한국에 주둔한 부대가 더 위험했을 걸요. (웃음)" 이라크·아프간은 미국이 주도한 전쟁 후 상황이 더 불안정해진 지역이다. 그래서 이라크·아프간 하면 폭발, 민간인 사망 같은 무거운 소식을 떠올리는 이가 적지 않다. 다행히 김 씨가 머문 곳은 심각한 위험을 매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다고 한다. "전쟁 영화 같은 위험한 상황이 많지는 않았어요. (대개) 1차 검문은 이라크군이 맡고 한국군은 2차 검문을 맡는 식인데, (심각한 문제는 주로) 1차 지역에서 생겼거든요."

그러나 "RPG(로켓 추진 수류탄)가 가끔 날아오는" 것은 감수해야 했다. "한 번은 부대 안으로 날아온 적도 있어요." 보직 특성상 미군과 협업할 일이 많았던 김 씨는 미군이 죽어나가는 걸 많이 봐야 했다(어떤 보직이었는지는, 김 씨의 요청으로 공개하지 않는다). 폭발물이 터졌다는 소식이 끊이지 않는 이라크에서도 그랬다. "우리가 있던 이라크 북부는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남부와 중부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더군요.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일이 있었(던 적도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미군이 그러더라고요. (상황이 험악하니) 사람들이 핸드폰 꺼내는 것만 봐도 무섭다고."

▲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아프간군과 함께 작전을 나갔을 때 찍은 사진. 오사마 빈 라덴이 사망하기 전이어서, 작전을 나갈 때 거의 중무장을 하고 나갔다고 한다. ⓒ김휘호

"<프레시안>, 짱돌 하나는 참 잘 던지는 언론"

김 씨는 2011년 전역했다. 그러나 한국은 이라크·아프간과는 또 다른 전장이었다. 대학을 다니기도 쉽지 않은 땅이었다. "제 또래가 '이명박 세대'예요. 반값 등록금 왜 안 하냐고 목소리 높였던. 제가 다닌 학교는 나은 편이었지만(학기당 등록금 240만 원 정도), 다른 지역의 친구들은 등록금을 400만∼500만 원 내야 했어요. 생활비, 교재비를 포함하면 1000만 원대인데, 그게 어디 적은 돈인가요? 부모님한테 손 벌리는 것도 한두 번이죠. 욕 나올 만하죠."

대학을 마치고 사회로 나아가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취업난 때문이다. 이를 해결할 대책으로 이명박 정부가 제시했던 청년 인턴제도 김 씨를 비롯한 이들에겐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었다. "청년 인턴, 저도 공기업 쪽에서 석 달 해봤어요. (해당 기업에 출근하니) 화분에 물이나 줘라, 그냥 공부할 것 가져와라, 이러더군요. '시다바리'인지 인턴인지…. 친구들하고 청년 인턴제 욕 많이 했어요."

취업에 유리하다는 경영학과 출신이고 광고 공모전에서 상도 탔지만, 일자리를 구하는 건 쉽지 않았다. 김 씨는 취업 준비를 접고 친구들과 함께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창업이 쉽진 않지만 취업이 워낙 어려우니까요. 우울한 뉴스만 들리잖아요."

김 씨는 예술가를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을 구상하고 있다. "원하는 예술 활동을 하면서 생활도 유지할 수 있는 돈을 벌기가 어렵잖아요. (예컨대) 음악인들이 일정한 장소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하고, 더 큰 무대로 진출할 계기를 마련해주고, 전략적으로 코치해주는 사회적 기업이 생기면 좋지 않을까요? (만화가 지망생을 지원하는) 일본의 토키와장 프로젝트처럼. 취지는 이러한데, 아직 확정된 건 없어요. 계획서를 썼다 지웠다 하고 있어요. (그래도) 3월부터는 본격적으로 해볼까 해요."

김 씨에게 <프레시안>은 '짱돌 언론'이다. 김 씨를 <프레시안>으로 이끈 건 최근 영화로 만들어진 삼성 반도체 백혈병 사건이다. (☞관련 기사 : "어떻게 삼성을 건드려…개봉 자체가 기적") "지인 중에 삼성에서 일하는 분도 있고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을 잘 아는 분도 있어서, 삼성 반도체 사건에 대해 얘기를 듣고 있었어요. 그런데 주요 언론에 잘 안 나오더라고요. 그러다 <프레시안> 보도를 접했어요. (사안을) 자세히 다루는 걸 보면서, 짱돌 하나는 참 잘 던지는 언론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 후 <프레시안>은 김 씨가 찾아보는 언론으로 자리매김했다. "요즘엔 싸돌아다니느라 '주간 프레시안 뷰' 외에는 많이 못 보지만, '현대사 이야기' 같은 걸 관심 있게 보고 있어요. 윤태호 작가가 네이트에 연재한 웹툰 '인천 상륙 작전'을 보고 나서 (현대사를)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에 보게 됐는데,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돼 놀라웠어요. 이런 일도 있었구나 싶더라고요. (예전에 게재된) '한국의 워킹푸어'도 좋았고요."

지난해 <프레시안>이 주식회사에서 협동조합으로 전환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김 씨는 "불안감을 느꼈다"고 한다. "조합원이 (충분히) 안 모일까봐서요. '내가 보는 신문이 하나 줄어드는 것 아냐' 하는 걱정이 들었어요." 갈 길은 여전히 멀지만, 김 씨처럼 걱정하며 힘을 보태준 이들 덕분에 <프레시안>은 오늘도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앞으로도 좋은 기사를 내고, 짱돌도 (필요할 때) 가끔 던지는 그런 언론이 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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