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87년 6월항쟁 이후 시대의 역사적 과제를 공약했었고 대통령이 된 후 저는 이 공약을 충실히 이행했다. 거의 성취가 됐다"고 지난 4년 자신의 재임기간을 평가했다.
노 대통령은 23일 밤 공중파 방송과 뉴스 전문 케이블 방송을 통해 생중계된 신년 연두연설에 앞서 이날 저녁 사전배포된 연설문을 통해 경제, 사회투자, 안보, 정부 혁신, 국가 비전 등 국정의 거의 전 영역에 대해 "지금 와서 보면 어느 정부도 해결하지 못했던 많은 일들을 해결했다"며 스스로에게 높은 점수를 매겼다.
노 대통령은 다른 한편으로 "야당과 언론들이 끊임없이 우리 경제를 위기니 파탄이니 하면서 저주하는 가운데 수출이 3000억 달러를 넘어섰다"는 식으로 야당과 언론을 강하게 질타했다.
또한 노 대통령은 "민생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책임은 통감하고 있다"면서도 "민생문제를 만든 책임은 없다. 참여정부의 민생문제는 물려받은 것이다. 문민정부 시절에 생긴 것을 물려받은 것이다"며 책임소재를 김영삼 정부로 돌리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의 창당은 분당이 아니다"고 열린우리당 창당의 정당성을 옹호하며 "그런데 열린우리당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 지역주의의 원심력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통합신당은 도로 민주당'이라는 노 대통령의 지론이 다시 강조된 것이다.
노 대통령은 우리당 사태에 대해 구체적 언급을 피했지만 '우리당의 내홍은 지역주의 원심력 때문'이라는 대통령의 현실인식이 향후 어떻게 구체화 될지가 관심사다.
"FTA 비관론은 아무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청와대 관계자들이 이미 예고한대로 노 대통령의 이날 연설에서 새로운 내용은 눈에 띄지 않았다. 대체로 노 대통령이 지난 연말부터 강조해 왔던 내용들이 집대성된 수준으로 연설은 진행됐다.
민생 경제, 사회정책과 관련한 개별과제들 가운데 한미FTA를 첫 번째로 꼽은 노 대통령은 "개방은 대세"라면서 "산업혁명 때는 기계파괴운동이 있었지만 맞지 않다는 것이 오래 전에 증명되었듯이 세계화시대에 개방을 반대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한미 FTA 반대=개방 반대'라는 등식을 내세웠다.
노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진보개혁 세력이 앞으로 정치적, 사회적 주도세력이 되기 위해서는 개방에 대한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 역사의 주류 세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초기에 FTA와 관련하여 여러 비관론이 무성했지만 결국 지금은 아무 근거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은 이같은 주장에 대한 구체적 근거를 대는 대신 "94년 WTO 가입 당시에도 반대자들은 '다 죽는다'고 했지만 그 예언은 맞지 않았다"며 "어제 아침 K-TV를 보니까 나프타(북미자유무역협정)가 멕시코 경제와 국민생활에 미친 영향에 대해, 이전에 MBC, KBS에서 본 것과는 아주 다른 내용이 나왔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대통령 자리가 자랑스럽지 않았다"
안보정책과 관련해서도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가 지켜 온 몇 가지 원칙을 알면 참여정부의 모든 정책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노 대통령은 "대북정책의 핵심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이고 통일은 그 다음"이라며 "한미관계는 일방적 의존관계를 상호관계로 점진적으로 변화시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노 대통령은 "나는 안보를 정략에 이용한 일이 없다"며 "반기문 총장 당선에는 나도 생색을 좀 내고 싶었으나, 대통령이 노벨상을 받아도 돈 주고 샀냐고 헐뜯는 나라에서 본전 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덮어버렸다"고 말했다.
안보 분야에서도 노 대통령 특유의 직설적 언사는 이어졌다. 노 대통령은 "작전통제권 환수는 20년 전부터 한나라당 정부가 공약하고 추진하던 것"이라며 "솔직히 말씀드리면, 야당과 언론이 몰아치니 여론마저 돌아서는 것을 보고 대한민국 대통령 자리가 자랑스럽지 않았다"고까지 말했다.
이날 연설에서 많은 부분 보수 야당과 언론을 비판한 노 대통령이었지만 한미FTA문제와 더불어 안보 분야에 있어선 진보진영을 비판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따질 것은 따지더라도 상대를 존중할 것은 존중해야 한다"며 "한미관계를 비롯한 주변국과의 외교관계를 옛날대로 가자고 하는 주장은 원칙에 맞지 않고 일거에 바꾸자고 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대통령 될지 안 될지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이날 연설에서 노 대통령은 야당의 유력대선주자들을 향해서도 직격탄을 날렸다. 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언급하면서 "대통령이 될지 안될지도 알 수 없는 차기주자라는 사람들까지 나서서 현직 대통령의 권한을 놓고 되느니 안 되느니 하는 것이 적절한 태도는 아닌 것 같다. 오만하게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노 대통령은 "우리 경제의 성장률에 대한 인식은 바꿀 때가 됐다"며 현 정부의 경제성장률이 낮다는 비판을 반박하는 한편 "경제를 아는 어떤 대통령도 5%를 훌쩍 넘는 성장률을 이루지는 못할 것"이라며 "지금의 경제를 파탄으로이라고 말하는 차기 주자들이 성장률을 얼마로 공약하는지 지켜 볼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개헌 논의에 일체 응하지 않고 있는 것을 비판하면서 "자기에게 유리 불리를 생각하기 전에 중요한 국가적 의제에 관해서 국민 앞에 의견을 밝히는 것이 지도자의 도리"라며 차기 대선 주자들의 개헌논의 참여를 촉구했다.
또한 노 대통령은 사법개혁, 연금개혁의 조속한 국회 처리를 당부하며 "다음 대통령이 되어서 무엇을 잘 하겠다고 할 것이 아니라 지금 처리할 일을 제대로 처리해 주는 것이 가장 좋은 선거운동일 것"이라고 한나라당을 겨냥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의 자신감과 높은 평가, 공감대 얻을까?
노 대통령은 '언론의 평가는 물론 국민의 평가도 작년에 완전히 포기해버렸다'는 지난 3일의 발언과 마찬가지로 이 날도 "지금 저의 관심은 성공한 대통령이나 역사의 평가가 아니다"면서도 "열정과 성의,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어 제게 주어진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날도 언론과 대립각을 세우기를 주저하지 않은 노 대통령은 "그 동안 수십 번 말했던 내용들, 들은 사람들은 맞는 말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여론조사를 해보면 아주 다른 답이 나온다"며 "제대로 전달이 안 된 것인지, 이유를 알 수가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자신이 국민들에게 전달하려는 내용을 언론이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주장인 셈이다.
이어 노 대통령은 "여러분, 내일 아침 일부 언론을 한 번 보십시오. 오늘 여러분이 이 자리에서 보고들은 것과는 사뭇 다른 기사가 나올 것"이라고 언론에 대한 불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오늘은 여러분이 생방송으로 보신 내용이라서 많이는 왜곡하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의 의도대로 언론의 필터를 거치지 않고 직접 생방송, 그것도 즉석 연설 형식으로 이날 연설이 진행됐다. 자신의 의도대로 진행된 연설을 통해 이날 노 대통령이 표출한 강한 자신감과 지난 4년에 대한 만족스러운 평가가 국민들로부터 어떤 반응을 얻을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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