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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대한의사협회, '의료 영리화' 반대 외칠 자격 있나

[편집국에서]국민을 바보로 아는 '정치적 투쟁'

박근혜 정부가 보건의료 분야의 투자활성화대책을 추진하자 대한의사협회(이하 의사협회)가 '3월 3일 총파업'을 예고하면서 저지투쟁의 선봉에 나섰다. 어찌된 일인지 의사협회를 이익단체로 비난하던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도 의사협회의 저지투쟁을 적극 지지하며 의사협회를 '공동투쟁'의 동지로 반기고 있다. 공동투쟁의 명분은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늘릴 원격의료와 의료 영리화를 저지한다"는 것이다.

의료산업노조는 그렇다치고, 의사협회 같은 이익단체가 정말 국민을 위해 투쟁하는 것일까? 국민은 그저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필요한 때에 적정한 부담으로 제공받는 방향으로 의료체제가 개선되는 정책을 원할 뿐이다.

하지만 국민을 위한 정책이 무엇인지를 제시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한 투쟁은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스스로 이름을 붙였듯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부치는 것은 '투자활성화대책'이다. 투자활성화 대책이 결국 자본을 위한 정책이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의료소비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는 것은 '조삼모사'식 미끼에 불과하다. 시간이 갈수록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식으로 부담이 돌아올 것이다.


투쟁의 프레임에서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세력은 이미 지고들어가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정책에 반대한다면, 어제의 적도 오늘의 동지가 된다면서 끌어안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전형적인 '정치적 이합집산'에 불과하다.

나는 스스로 설정한 긍정적인 의미의 프레임 설정 없이 '반대 프레임'으로 승부를 거는 세력이 성공하는 경우는 알지 못한다. 일단 저지는 할 수 있는지 모르지만, 언젠가 그 정책은 '국민'을 배신하는 형태로 관철될 것이다. 아마 '반대 세력'끼리도 나중에 서로 배신했다고 비난전이 펼쳐지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국민건강보험 당연지정제에 대해 위헌소송을 두 번이라 제기한 의사협회가 '의료 영리화' 투쟁의 선봉에 나섰다.ⓒ연합뉴스

'영업의 자유' 침해한다며 국민건강보험 위헌소송 걸었던 의사협회

의사협회가 '총파업'을 경고했다고 하지만, 의사협회의 반대 투쟁 명분이 '의료수가 인상'의 포장용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심이 든다. 이런 의심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이미 의사협회 회원 의사들 사이에서는 "이번 기회에 의료수가 인상을 관철하자"는 요구가 팽배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의사협회가 '의료 영리화'를 반대한다면서 구체적으로 '원격의료·영리병원 반대'라는 명분을 앞세우고 있다. 하지만 의사협회는 의료수가가 너무 낮다면서 국민건강보험법에 규정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사회주의라면서 2002년과 2012년 두 차례나 위헌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는 일정한 요건에 해당하는 모든 의료기관이 건강보험의 요양급여를 실시해야 한다는 제도다. 이 제도로 인해 국민은 모든 병의원에서 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고, 병의원이 시행한 의료행위의 비용은 건강보험이 정한 수가로 동일하게 책정된다.


그러나 의사협회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의료기관의 '영업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며, 질병의 치료방법에 대한 개인의 선호 및 기호가 무시되어 국민의 진료 선택권을 심각하게 제한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내가 알기로도 그동안 이 땅에서 의료 민영화 요구를 앞장서서 해왔던 세력이 바로 의사협회다. 그런데 이들이 이제와서 '의료 민영화' 반대에 나서다가 '의료 민영화'라는 것이 이미 민영화된 의료계에 어울리지 않는 구호인 것을 깨닫고 '의료 영리화 반대'로 용어를 바꾸고 국민을 내세우며 투쟁에 나섰다.

국민 대다수가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설문 내용 보니 가관


의사협회가 국민을 바보 취급하며 기만하고 있다는 것은 지난 15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알 수 있다. 설문 자체가 몰아가기 식이어서 여론조사로서의 권위가 상실된 것이다. 물론 이런 설문 조사를 수행한 한국갤럽도 국내의 여론조사 기관의 수준을 보여준다.

한국갤럽이 의사협회의 의뢰를 받아 지난 6일부터 13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무작위 전화를 돌려 조사했다는 결과만 보면, 국민 대다수가 원격진료와 영리화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왔다.

그런데 12개의 설문 문항들을 보니 대체로 노골적인 '유도성 질문'으로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병·의원이 가까워서 의사와 직접 대면진료가 가능한 경우"라는 조건을 제시한 뒤, "그래도 휴대전화 등을 활용한 진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원격진료가 필요하지 않은 상황을 우선 전제한 뒤 필요성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것이다. 나라도 당연히 "원격진료가 필요없다"고 답할 것이다. 응답자의 68.3%가 "필요없다"고 답했다는데, 설문 구성으로 본다면 오히려 적게 나온 느낌이다.


또다른 설문을 보자. "핸드폰 등을 활용한 진료의 경우, 의사에게 환자의 상태 파악, 전달이 제한되어 오진 등 사고의 위험이 있다는 의견이 있는데, 이에 대해 동의하십니까, 아니면 그렇지 않습니까?"라는 이 질문도 "오진 등 사고의 위험이 있다는 의견이 있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 이 설문에는 74.6%가 의사협회가 원하는 답변을 했다.


또 "휴대전화 등을 활용한 진료의 오진 가능성과 안전성에 대해 아직 시범사업을 통한 정책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설문도 참 노골적이다. 검증되지 않았다는 전제에서 물어보는데 답이 어떻게 나오겠는가? 80.2%가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

의료법인의 자회사 설립 허용에 대해서도 설문을 보면 이게 허용이 되면, ①거대자본이 투입돼 영리를 추구하게 되고 ②자회사가 비영리인 병원을 지배, 영리를 추구하는 역전 현상이 발생하여, 영리화의 원인이 된다는 의견이 있는데요, 이에 동의하십니까"라고 물었다. 55.7%가 "동의한다"고 답변했다고 하는데, 나는 이런 유도성 질문 내용으로 볼 때 의사협회가 바라는 기대치보다 너무 적게 나온 게 아닌가 한다.

이처럼 원격진료와 영리화에 대한 유도성 질문을 깔고 나서 마지막 문항으로 "정부가 원격의료와 영리병원을 계속 추진한다면 총파업까지 하겠다고 나섰는데, 이에 대해 찬성하십니까"라고 묻는 설문을 배치했지만, 찬성하는 답변 비율은 39.2%에 그쳤다. 응답자의 56.2%가 총 파업에 반대했다.


결국 '의료 영리화' 반대로 의협이 총파업을 실제로 단행할 가능성도 적지만, 여론을 무시하고 총파업에 나섰다가는 심각한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사협회의 이 설문 결과가 보여준다.

'의료 영리화' 정책 추진자가 반대 투쟁 위원장?


민주당도 국민을 바보로 알기는 마찬가지다. 민주당이 지난 10일 '의료영리화 저지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장에 의사 출신인 김용익 의원을 선임했다. 그러나 김 의원은 노무현 정부(2006년 1월~2008년 2월)에서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을 지내면서 '의료 영리화' 정책에 깊숙이 관여했던 인물이다.

김 의원은 "참여정부에서 추진한 의료영리화 정책은 잘못된 것이었으며 당시 청와대 사회정책수석비서관이던 저에게 그에 대한 모든 책임이 있음을 밝히고 사과한 바 있다"면서 "의료 영리화의 원조가 민주당"이라는 새누리당의 비난을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김 의원의 '속죄'로 민주당이 추진했던 의료영리화 정책이 '없던 일'이 될 수 없다. 김 의원은 "의료영리화는 어느 정부가 추진해도 나쁜 정책"이라고 했지만, 정권을 잃은 다음에 하는 속죄는 믿기 어렵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의료 영리화 추진은 정권 차원에서 밀어부친 것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초기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을 지낸 김성재 전 의원은 2010년 <프레시안>에 게재된 "시동 걸린 '의료 민영화', 막을 방법은?"라는 기고문에서 이렇게 썼다.

"참여정부는 신자유주의를 추종하여 의료산업화란 이름으로 의료민영화를 추진하였는데, 경제자유구역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외국인 영리법인 병원(주식회사 병원)이 내국인을 진료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으며, 보험업법을 개정하여 생명보험회사도 '실손'형 의료보험 상품을 판매하도록 허용함으로써 생명보험업계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서민을 위한 희망과 눈물을 아이콘으로 해서 당선되고 출범한 참여정부가 서민과 지지자를 배반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의료민영화의 추진은 참여정부 후반기 들어 의료민영화 법안의 국회 제출로 대미를 장식하게 되는데, 이는 유시민 전 복지부장관이 추진한 일이다."


"지금 이명박 정부의 본격적 신자유주의 노선 하에서 주식회사 영리병원을 허용하고,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의 역할을 활성화하는 소위 '의료민영화' 추진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이는 참여정부 시기에 추진되던 의료민영화 시도와 성격 상 차이가 없는 것이다."


이미 노무현 정부가 물꼬를 터준 민간의료보험으로 국민건강보험 체계는 위협을 받고 있다. 의사협회가 국민건강보험 당연지정제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던 2002년 민간의료보험 시장은 5조 원 정도였으나 2011년 기준 17조 원을 넘어섰다. 국민건강보험 재정수입의 절반에 육박하는 비용을 국민이 별도로 지불하고 있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의 보장률은 60%대 초반에 머물면서 민간의료보험 시장이 급격히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당연지정제 폐지에 앞장섰던 의사협회와 의료민영화를 정권 차원에서 추진했던 민주당이 '의료영리화' 반대 투쟁의 선봉이라는 것이 영 마음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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