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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인데 미안해”…국회를 눈물 바다로 만든 엄마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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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인데 미안해”…국회를 눈물 바다로 만든 엄마의 일기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 살균제 비극]<11> 아이 잃은 엄마들

장하나 의원은 왜 국회에서 울었나
눈시울을 붉히던 사람들은 마침내 흐느끼기 시작했다. 다들 주체 없이 흐르는 눈물을 연신 훔치기 바빴다. 북받쳐 오르는 슬픔이 장내에 가득했다. 연단 앞에는 한 여성이 글을 읽고 있었다. 그는 글을 읽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눈앞을 가리는 눈물 때문에 중간 중간 낭독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 글 속의 사연은 그로 하여금 글 쓴 엄마가 되게 만들었다.
지난해 8월 31일, 첫 가습기 살균제 피해 추모대회가 열렸던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아이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야만 했던 어느 엄마가 참담한 심정으로 절절하게 써내려갔던 일기를 다른 사람이 대신 낭독하고 있었다. 낭독한 이는 대한민국 국회의원 장하나 씨였다. 그는 처음에는 담담하게 이 일기를 읽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목이 메기 시작했다. 후반부에 가서는 흐느낌도 모자랐던지 울음을 터트렸다. 피해자 가족이든 아니든 추모대회에 참석한 100여 명은 모두 한결같이 함께 울거나 흐느끼거나 눈시울을 붉혔다.
말할 수 없이 정말 잘 만들어 눈물샘을 자극하는 그 어떤 감동 영화보다도, 만인의 심금을 울리는, 그 어떤 명작 시나 소설보다도 더 진한 울림을 그 일기는 담고 있었다. 일기를 쓴 주인공도 그날 그 자리에 있었다. 그녀는 차마 그 일기를 자신이 직접 낭독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녀에게 너무나 아픈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부은정 씨의 일기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고통을 겪고 있는, 특히 영원한 이별로 찢어지는 슬픔을 간직한 사망 피해자 가족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그녀가 병상에 있던 아들을 그리며 스케치북에 그린, 인공호흡기를 하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단상 위에 걸려 있어 그날 참석한 모든 이들의 가슴을 찢어놓았다.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아들아. 하늘이 무너지는 이 현실을 엄마가 어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이냐. 정말 보낼 수가 없다. 정말 널 보낼 수가 없다. 어떻게, 어떻게 널 낳았고 길렀는데 어떻게 널 낳았는데…. 준호야. 준호야. 네가 엄마의 살아가는 힘이었는데. 너로 인해 우리 가족이, 엄마아빠가 얼마나 행복했는데. 우리의 기둥, 행복, 사랑이 너였다. 영원히 엄마아빠의 사랑인 것 잊지 마. (중략) 사랑하는 아들아. 내 아들아. 22개월 동안 행복하고 소중한 기억만 담고 저 푸른, 행복한 하늘나라에서 다시 엄마에게 태어나렴! 제발 엄마에게 다시 태어나렴! 사랑한다. 사랑한단 말로도 부족한 이 가슴을 도려내고 싶다. 미안하고, 미안하고 사랑한다. 영원히 아들아! 엄마아빠 잊지 마!“
엄마는 아들 준호를 2006년 6월 4일 멀리 떠나보내고 새벽 3시 45분에 마지막 일기를 썼다. 2004년 7월 5일 저녁 5시 6분에 고고지성(呱呱之聲)을 지르며 태어난 아이는 엄마의 사랑이 듬뿍 담긴 일기장을 읽어보지도 못한 채 고통의 세월을 살다가 떠나갔다. 하지만 그를 그리는 애틋한 엄마의 사랑이 짙게 밴 일기는 남아 우리에게 가습기 살균제 비극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고통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생명과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해주고 있다.
엄마의 일기에는…“어린이날인데 미안해”
이 일기는 준호네 가족뿐만 아니라 적어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에게는 <안네의 일기>보다 더 살갑게 다가온다. <안네의 일기>가 독일 나치의 만행을 일깨워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일기 가운데 하나라면 준호 엄마 부은정 씨의 일기는 가습기 살균제가 이 땅에 뿌린 비극의 고통을 우리로 하여금 잊지 않도록 해주었다.

그녀의 일기는 준호가 서울중앙아산병원 응급실에 실려 온 지 13일째 되던 2006년 5월 5일 어린이날부터 시작된다. 그 뒤 하루가 멀다 하고 아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미안함, 사랑을 짙디짙은 블루가 배어 있는, 이보다 더 절절하고 간절할 수 없는 언어로 하얀 종이 위에 마구 토해냈다.
“2006년 5월 5일 준호 22개월 되는 날. 지금쯤이면 ‘∽마!’하고 ‘∽아!’하고 부시시 침대에 앉아 엄마를 찾고 있을 아들. 준호야. 네가 병원 응급실로 실려 들어온 지 벌써 십삼일 째다, 네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와 아빠가 챙겨줄 수 있는 ‘어린이날’인 데… 미안하다. 지난 시간이 모두 후회와 용서뿐이다. 자식을 지키지 못하고…건강하게 키우지 못한 이 엄마를 용서해줘. 사랑하고 미안하고…(중략) 사랑한다. 내 아들 준호! 이 세상 그 무엇과 비교되지 않는 준호 아들. 엄마가 이젠 옆에서 떠나지 않을게…네가 장가갈 때까지! 사랑해…오늘도 너무 잘했으리라 믿어. 사랑해! 사랑해 아들아. 못난 엄마 용서해! 오늘도 힘든 하루일 테지만 자랑스러운 울아들 잘 하리라 믿어! 이따 보자! ♡”
어린이날 다음날인 5월 6일 토요일은 억수 같은 봄비가 내렸다. 그날도 일기장은 아들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엄마의 애틋한 사랑의 언어가 빼곡 들어차 있었다. 자식을 정말 사랑하는 엄마는 저절로 언어의 마술사가 되는 것인가 보다.
“5월6일 무척이나 많은 비…비가 많이…봄에 오기엔 버거울 정도의 비다. 새벽에 울 준호가 다리를 드는 꿈을 꿨다. 자꾸 움직이는 널 생각하니 더 맘 아프다. (중략) 사랑하는 사랑하는 아들 준호야. 그래도 몸이 조금 좋아지고 있다니… 걱정 말아라 커 가면서 아빠랑 엄마랑 더 튼튼할 수 있게 도와줄게. 아니 엄마가 더 많이 노력할게… 사랑하는 아들아. 아빠랑 차창에 흐르는 빗방울 보면서 주말을 같이 했으면 하는 바람이 드는 아침이다. 곧 깨어날 널 위해 빨리 '토마스기차'와 '뿡뿡이'를 사야겠다. 사랑해 준호! 사랑해 준호! 그리고 너무 너무 자랑스럽다 우리 아들 양준호!”

그녀는 자식에 대한 사랑을 그림으로도 쏟아냈다. 5월 11일 스케치북에 담긴, 준호의 얼굴은 비록 인공호흡기에 연결한 콧줄로 호흡하고 있었지만 단꿈을 꾸는 듯 지극히 평온한 모습이었다. 아기 천사가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다. 5월 18일에는 싱그러운 녹색의 잎을 지닌, 쭉쭉 뻗은 소나무를 그렸다. 그리고 한 귀퉁이에 ‘언제나 푸르르렴…아들! 사랑한다 forever mom. 06.5.18’이라고 적었다.
엄마는 모든 것을 제 탓으로 여기고 있었다.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는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그러하듯이. 곧 깨어날 것이라고 믿었던, 그래서 ‘토마스기차’와 ‘뿡뿡이’를 가지고 신나게 놀게 해주겠다고 했던 엄마의 꿈은 2006년 6월 4일 산산조각이 났다. 적어도 장가갈 때까지 곁을 지켜주겠다고 굳게 다짐했던 엄마의 바람은 허망하게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희망의 끈을 단 한 번도, 끝까지 놓지 않았건만 세상은 너무나 야속했다.
그래도 그녀의 일기는 자식에 대한 사랑이란 게 어떤 것인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가습기 살균제의 비극이 어린 아이들과 어머니와 부모들에게 얼마나 큰 슬픔과 아린 고통을 주었는지를 그 무엇보다도 이 일기장 하나가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10년간 투병하는 아들 보며 일기 쓴 엄마
이 일기가 발병에서 죽음까지 너무나 짧은 기간 투병하다가 불꽃처럼 사라져간 준호의 이야기를 담았다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성준이의 엄마, 권은진 씨가 간직한 일기는 책 한 권으로 내도 충분할 만큼 길다. 성준이가 워낙 오랜 투병생활을 했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투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일기에도 준호 엄마의 일기처럼 자식의 아픔에 대한 고통과 아들에 대한 사랑, 생명과 건강에 대한 희망이 고스란히 모두 녹아 있다. 성준이는 2004년 2월부터 아주대병원과 서울중앙아산병원에서 오랜 투병 생활을 한 끝에 생명을 건졌다. 그 뒤 1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생활하고 있다.
“4월 18일(음력 2월 29일). 오늘이 최대 고비인가 보구나… 오늘만 잘 넘기면 된다고 정욱이 이모네 신촌 노스님께서 3일 기도에 들어가시고 용인사 스님도, 원각사 보살님도… 오후에 의사선생님이 오셔서 “우리 성준이가 숨이 잠시 동안 멈췄었다고 하시며 자꾸 반복되면 위험하다고 …” 그 소리에 얼마나 놀랐는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엄마, 아빠, 이모 모두가 울며 얼마나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 외할아버지께서 생전 절에 가서 부처님께 기도 안 하시더니 오늘은 108배를 하시는구나….”
성준이는 다행히도 가족들의 기도가 통했다. 물론 기도가 인간의 삶과 죽음을 가르는 선이나 잣대는 아닐 것이다. 준호보다 증상이 더 심하지 않은 상태였거나 준호보다 더 일찍 병원을 찾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우리가 알 수 없는 다른 이유든가.
가습기 살균제로 가족을 저세상으로 떠난 보낸, 특히 어린 자녀들을 떠나보낸 엄마와 아빠의 마음은 일기로 표현했든 하지 않았든 모두 같을 것이다. 일기장에 글을 쓰지 않았더라도 마음의 일기장에는 준호 엄마와 성준이 엄마처럼 끊임없이 자식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담았지 않았을까. 가습기 살균제가 아무리 지독해도 부모의 자식 사랑을 꺾을 수는 없다는 것을 일기장을 통해 분명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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