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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를 왜 하냐고?…"이제 개XX라고 안 부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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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를 왜 하냐고?…"이제 개XX라고 안 부르네요"

[박점규의 동행]<20> 이주노동자의 고용허가제 없애야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하는 노동자들에게 군대가 총기를 난사해 최소 5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부상을 입은 캄보디아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한국 대사관과 기업이 캄보디아 정부에 파업 사태 조기 해결을 촉구하면서 유혈 진압이 일어났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관심이 폭증하고 있습니다.

지난 12일 서울 보신각 앞에서는 캄보디아 노동자들을 비롯해 1500여 명이 '유혈진압 규탄 이주노동자 행동의 날' 결의대회를 열고 캄보디아와 한국 정부를 규탄했습니다. 이어 민주노총과 사회단체는 국제공동조사단 활동을 위해 13일 캄보디아로 출국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에게 캄보디아는 베트남, 태국과 함께 저렴하게 동남아 여행을 할 수 있는 관광지입니다. 캄보디아에서 1975년부터 1979년에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200만 명이 학살당했고, 이를 영화화한 '킬링필드'의 나라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30년 동안 훈센 정권이 장기집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이번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캄보디아의 한 달 임금이 우리 돈으로 8만 원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군대의 발포 때문에 캄보디아 수출의 80%를 차지하는 의류 산업을 쥐락펴락하는 곳이 한국 기업이고, 의류 노동자 5명 중 한 명이 한국 기업 소속이라는 사실도 알려졌습니다.

한국 기업이 우리의 신발 한 켤레 값도 되지 않는 돈을 월급으로 주면서 파업 사태를 해결하지 않으면 공장을 철수하겠다고 캄보디아 정부를 협박한 것은 아닐까요? 한국 기업이 캄보디아 노동자들을 '빨리빨리'와 '개××'를 외치며 짐승처럼 부려 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 캄보디아판 '광주 사태'와 관련해 한국 봉제 기업들이 강제 진압 요구에 앞장선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10일 서울 외교부 앞에서 시민단체들이 한국 정부와 기업의 책임을 묻는 시위 장면. ⓒAP=연합뉴스

신발 한 켤레 값도 안 되는 월급 주는 캄보디아 한국 기업

금속노조 경주지부에서 일하고 있는 정진홍(37) 부지부장은 캄보디아 노동자들을 비롯해 이주노동자들을 자주 만납니다. 한국에서는 총을 쏘지는 않지만 이주노동자들을 '짐승'처럼 대하는 것은 캄보디아나 한국이나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 12월 경주 건천 공단에 있는 자동차 시트 제조업체 (주)금강에서 한국노동자들과 캄보디아를 비롯해 외국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손을 맞잡았습니다. 금강은 이명박의 아들 이시형이 이사로 있는 다스에 시트를 납품하는 회사로 5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주야 맞교대와 밤샘 근무를 밥 먹듯이 해도 임금과 근로 조건이 열악해 노동자들이 뭉치기 시작했고 12월 10일 노동조합 깃발을 띄웠습니다.

정진홍 부지부장은 한국 노동자들에게 왜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하는지 설득하고 토론했습니다. 의사소통이 되는 이주노동자들에게도 노조의 필요성을 설명했습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140명 넘게 노조에 가입했고 이주노동자들은 10여 명이 참여했습니다.

정진홍 부지부장과 금강지회는 이주노동자들의 불만과 고충이 무엇인지 듣기 위해 12월 22일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러 나라 노동자들이 모여 있다 보니 통역하는 사람도 여러 명이 필요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기숙사는 너무 더러워서 여름에 냄새나고 파리 떼가 들끓었다는 이야기, 겨울에는 너무 춥고, 난방비와 세금을 본인들이 부담하게 해서 힘들다는 이야기, 방 한 칸에 네 명이 지내는데 야간 근무를 하고 돌아오면 문을 두드려서 잠을 잘 수가 없다는 이야기들이 이어졌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체류기간이었습니다. 3년을 근무한 후 회사가 1년 10개월을 연장할 수 있는데 이 기간 안에 한국에 올 때 진 빚도 갚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노조는 회사와 교섭을 통해 4년 10개월 뒤에서 한 번 더 연장되도록 노력하고, 상여금과 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노조는 이주노동자 기숙사를 방문해 실태를 조사했고, 곧바로 회사에 제기해 당장 숙소 환경을 개선하고 전세 계약이 끝나는 4개월 후에 깨끗한 숙소로 이전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이런 노력 끝에 고용 허가제를 통해 일하고 있는 캄보디아, 필리핀,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중국 노동자 30명이 노조에 가입했습니다. 한국과 5개 나라의 노동자가 하나로 뭉친 아름다운 노조는 12월 31일 회사와 첫 교섭을 시작으로 갑오면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한국과 5개 나라 노동자가 하나의 노조로

금속노조는 규약 44조에 정규직, 사무직, 비정규직, 이주노동자를 막론하고 하나의 사업장에서 하나의 노조로 편제하도록 명시하고 있습니다. 정규직노조가 문을 열어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이고, 권리향상을 위해 함께 싸워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금속노조의 '1사 1조직' 규약에 따라 경주지부는 산하 20여 개 사업장에서 모두 규칙을 개정했고,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여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집구석 사업장인 다스에서는 정규직 노동자 700여 명이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 100여 명을 노조로 받아들이고 매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6월에는 자동차 차체를 만들어 현대자동차에 납품하는 엠에스오토텍과 명신이라는 회사에서 이주노동자 40명을 노조로 가입시켰습니다. 이어 회사와의 단체협약에서 이주노동자의 근속연수에 따른 차등 상여금을 일괄 300%로 인상하기로 했고, 5만 원이었던 명절과 여름 휴가비를 정규직과 동일한 30만 원으로 인상하는 데 합의했습니다.

금속노조 산하 현대자동차지부는 세 번의 대의원대회에서 규정 개정 안건이 상정됐지만 모두 부결되고 말았고, 한국지엠에서도 지난해 1사1조직 안건을 상정했지만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대기업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하나의 노조로 받아들이기는커녕 정규직 고용의 방패막이로 여기는 것을 생각하면 이주노동자까지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고 임금인상을 위해 싸우는 금속노조 경주지부의 노력은 바람직한 노동운동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 지난해 12월 22일 금속노조 경주지부와 금강 이주노동자들이 간담회를 마치고 찍은 사진. ⓒ박점규

노조가 나서 이주노동자 상여금과 휴가비 인상

정진홍 부지부장은 이주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하고 나서 개×× 소리를 안 듣게 되어 너무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높으신 사장님들은 지금도 이주노동자들을 돼지우리의 돼지들처럼 더러운 기숙사에 몰아넣고 욕설을 퍼부으며 밤낮으로 일을 시키고 있을 것입니다.

이주노동자를 노조에 가입시키는 일은 대단히 힘들고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말이 통하지 않아 노동조합을 쉽게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에서 온 노동자들은 노조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지만, 캄보디아 노동자들은 아예 노동조합이 뭔지를 모릅니다.

통역을 동원하고, 한국어를 가르치고, 몸짓 발짓 해가며 노조를 알려주고 임금도 올라가고 근로조건도 나아지면 본국으로 돌아갑니다. 4년 10개월이 금세 지나가 버립니다. 법이 바뀌어서 4년 10개월을 연장할 수 있지만 한 사업장에서 계속 일했을 때만 가능하기 때문에 대단히 어렵습니다.

대구, 천안, 경주 등 여러 곳에서 이주노동자들이 금속노조나 건설노조에 가입해 노동조합을 배웠지만 일할 수 있는 기간이 끝나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한국어 사용에 익숙하고 노조를 배운 이주노조 활동가들이 다른 이주노동자들을 조직하는 일은 고용 허가제 아래에서는 불가능합니다.

더군다나 사용자들이 이주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하청업체를 통해 사내하청으로 사용하면서 노조 조직화는 훨씬 더 어렵습니다. 노조 가입을 이유로 업체와 계약을 해지하면 이주노동자는 다른 사업장으로 옮겨야 하고, 세 번밖에 옮길 수 없기 때문에 강제 추방당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알려지면 출입국 사무소에 끌려가 추방당하기 때문에 노조가입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정진홍 부지부장은 경주의 중소 조선소와 자동차부품 공장에서 일하는 많은 이주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해 욕설을 듣지 않고 일하게 하고 싶지만 한 해에 한두 곳을 조직하기도 힘겹습니다.

고용허가제 노예제도 10년 이젠 없애야

한국의 이주노동자는 70만 명으로 민주노총 조합원보다 많습니다. 이들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이주노동자를 일회용 노동자, 인간 노예로 만드는 고용 허가제를 없애고 사업장 이동의 자유와 노동3권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올해 8월 17일은 고용 허가제 시행 10년을 맞습니다.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노동 허가제를 도입해야 합니다.

정진홍 부지부장은 밖에서는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면서 자신의 사업장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모른 척하는 노조운동은 안된다고 말합니다. 밖에서는 고용허가제 폐지를 말하면서 자신의 사업장에 있는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하지 않는 것은 민주노조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금강에서 자동차 시트를 만드는 캄보디아 노동자가 개×× 소리를 듣지 않고 일하고, 엠에스오토텍에서 자동차 차체를 만드는 인도네시아 노동자가 강제 추방당할 걱정을 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노동조합 때문입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노예제도 10년 고용허가제를 없애는 데 앞장서고, 자신의 사업장과 지역에서 이주노동자들에게 손을 내미는 새해가 되길 소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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