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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자연의학 아유르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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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자연의학 아유르베다

3월의 인도학교

인도학교(교장 이거룡, 인도철학자)가 새해 봄학기 강의를 준비합니다. 이번 강의 주제는 <인도의 자연의학 아유르베다>입니다.

이거룡 교장선생님은 동국대 대학원에서 인도철학을 공부한 후 인도 마드라스대 라다크리슈난연구소(석사), 델리대 대학원(박사)을 졸업했습니다. 현재 선문대 통합의학대학원 원장으로 있으며 'EBS 세상보기' 강좌를 통해 심원한 인도의 사상과 문화를 쉽고 생동감 있게 다룬 바 있습니다. 라다크리슈난의 명저 <인도철학사>(전4권)를 우리말로 옮겼으며, 저서로 <아름다운 파괴> <두려워하면 갇혀버린다>와 공저로 <논쟁으로 본 불교철학> <구도자의 나라> <몸 또는 욕망의 사다리> 등이 있습니다.


▲인도의 아유르베다는 서양의학의 한계에 대한 반성과 함께 새롭게 조명되는 자연의학이다. Ⓒ 인도학교


교장선생님은 봄학기를 준비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힐링 열풍이 거셉니다. 무병장수라는 말 대신에 유병장수라는 말도 심심찮게 듣습니다. 우리 사회에 힐링이 유행하고 유병장수가 허용되는 것은 질병에 대한 접근방식이 공격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사고방식과 관련됩니다. 항생제를 투여하고 환부를 도려내기보다는 오히려 인체의 자연치유력을 믿으며, 심지어 질병도 삶의 일부로 용서하며 살자는 것이지요. 또한 힐링 열풍의 배후에는 서양의학의 한계에 대한 자각도 있습니다. 서양의학은 질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체의 면역력과 자연치유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반성도 있습니다.

인도의 아유르베다(Āyurveda)는 서양의학의 한계에 대한 반성과 함께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자연의학이며, 인간과 세계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특징으로 하는 전인의학(全人醫學)입니다. 오래된 미래의 의학입니다. 아유르베다는 육체와 마음의 상관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동일한 증상이라도 환자의 개인적인 차이를 인정하는 체질의학입니다. 또한 단지 질병의 나타난 증상이 아니라 원인을 치료하고자 하며, 이 과정에서 수술 또는 항(抗)자나 진(鎭)자가 들어간 약물을 사용하기보다는 인체의 자연치유력 회복에 중점을 둡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인도의 우주론과 인간 이해에 토대를 둔 아유르베다의 이론과 실제를 소개하고, 오래된 미래의 의학으로서 아유르베다가 우리의 삶에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강의가 끝난 후에는 함께 인도의 중요한 아유르베다 센터를 둘러보는 계획도 있습니다.


2014년 봄학기 강의는 3, 4월 매주 화요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총 8강으로 열립니다.

제1강[3월4일] 서양의학의 한계와 아유르베다
항암으로 살해당하다

제2강[3월11일] 아유르베다의 우주론과 인간 이해
세계와 인간의 동일(Loka-Puruṣa-Samya)

제3강[3월18일] 인도 수행전통(아유르베다-요가-딴뜨라)에서 몸(Śarīra)의 의미
5요소(Mahābhūta) 병렬구조 / 5겹 덮개(Kośa) 중층구조 / 남성(Śiva)-여성(Śakti) 양극구조

제4강[3월25일] 3-도샤(doṣa) 이론
체질의료로서 아유르베다의 특징

제5강[4월1일] 질병과 건강
세계와 인간의 소통과 조화 / 지식(Prajna), 감관(Indriya), 우주적 리듬(kala)

제6강[4월8일] 5가지 정화법(Pañcakarma)
비움의 의학

제7강[4월15일] 요가 호흡법의 자연치유적 활용
심신통합치유기제로서 요가의 호흡법

제8강[4월22일] 만뜨라요가와 영성치료
파동의학으로서 만뜨라요가의 이론과 실제

강의는 인문학습원 강북강의실(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 아래 약도 참조. 강의실이 바뀌었으니 착오없으시기 바랍니다)에서 열리며 참가비는 22만원입니다. 자세한 문의와 참가신청은 인문학습원 홈페이지 www.huschool.com 전화 050-5609-5609 이메일 master@huschool.com을 이용해주세요. 인도학교는 생활 속의 인문학 체험공동체인 인문학습원(대표 이근성)이 지원합니다.

☞참가신청 바로가기

▲ 강의실 약도

이거룡 교장선생님은 <인도학교를 열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도 비행기가 어떻게 땅에서 뜨는지, 어떻게 하늘을 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앞 날개에 제트엔진이 달려 있어서 마치 고무풍선에 가득 채워진 바람이 일시에 빠질 때 풍선이 일정한 방향으로 날아가는 것처럼 비행기도 그렇게 이륙하고 비행한다는 정도를 알고 있을 뿐이지요. 아마 중학교 때였던가, 비행기 동체는 무게를 가볍게 하기 위하여 '듀랄루민'이라는 가볍고 단단한 합금으로 만든다고 배웠는데,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군요.

설사 그렇다 해도, 아무리 날개에 성능 좋은 제트엔진을 달고 듀랄루민으로 가벼워진 몸이라는 것을 안다 해도, 막상 활주로에 몸을 뉘인 그 큰 덩치를 보면, 탑승구 앞에서 기다리는 그 많은 사람들과 이미 실었을 그 무거운 짐들을 생각하면, 비행기가 땅을 박차고 하늘을 난다는 사실은 여전히 불가사의처럼 느껴집니다. 그 큰 덩치의 이륙과 비행은 저에게 다만 기적으로 다가올 뿐이지요. 무거워진 몸을 느낄 때, 시시각각으로 내리누르는 시간의 무게를 느낄 때마다 저는 활주로 위에 맥없이 누운 비행기를 생각합니다.

도무지 뜰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그 큰 덩치가 땅을 박차고 하늘을 나는 것처럼, 도무지 뜰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나의 현존이지만, 그래도 언젠가 문득 이 무거운 중력을 떨치고 이륙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생각해 보면, 비행기는 그냥 뜨지 않습니다. 도무지 그 큰 덩치를 지탱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작은 바퀴 세 개로 노심초사 활주로까지 기어가서, 온 몸을 떨며 땅을 박차고 날아오릅니다.

비행기라고 왜 두렵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땅을 버리지 않는 한 하늘을 얻을 수 없습니다. 누구든 무엇이든, 일정한 방향과 목표를 지니는 한 온 몸을 떨며 휘청거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노력하는 한 방황하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지요. 그러나 괘도를 상실하지 않은 휘청거림, 그 서투른 몸부림의 궤적은 차라리 아름답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여 년의 인도 공부를 통하여 저는 체념과 초월의 경계를 넘나드는 숱한 구도자들의 아름다운 몸부림을 보았습니다. '길 위의 삶'을 보았습니다. 살아있는 자만이 그을 수 있는 신선한 궤적도 보았습니다. '살아있다'는 말은 '괘지 않고 흐른다'는 말이며, 흐름은 한쪽으로 기우뚱할 때 일어나는 것이지요. 기우뚱한 균형은 위험하지만, 살아있는 흐름을 원한다면 기우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일 삶이 기우뚱하지 않다면, 그래서 위험하지 않다면, 죽음이 오기 전에 이미 죽어있는지도 모릅니다. 고인 물이 그렇듯이, 흐르지 않는 삶은 결국 썩게 됩니다. 의식이란 미래로 이어져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흐르지 않으면서 흐름을 생각하기 때문에 썩는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의식은 지금 이 순간에 있지 않을 때 썩기 시작합니다. 시루에 담긴 콩나물은 썩지 않고 잘 자라지요. 물이 지나가는 순간 온몸의 촉수를 뻗어 영양분을 흡수하기 때문입니다. 언제 다시 물이 지나갈지 모르고, 다음 순간이 보장되어 있지 않을 때, 콩나물은 오히려 건강하게 자라납니다. 순간에 충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예 콩나물을 물에 담가두면 금방 썩어버리지요. 내일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일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현재의 순간이 느슨해진 것입니다.

누구든 무엇이든 현재의 순간이 느슨해지면 썩기 마련입니다. 고대 인도의 수행자들이 끊임없이 유행(遊行)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심지어 자이나교에서는 한 곳에서 이틀 이상 머리를 눕히는 것을 금했습니다. 어디엔가 머문다는 것은 다만 다시 떠나기 위한 멈춤일 뿐이니까요. 걸식이 식사의 기본원칙이었던 것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먹는 것, 자는 것, 입는 것에서 내일을 보장할 수 없는 위험한 삶일지라도, 스스로가 위험한 상황을 연출하며 사는 것이 수행자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이게도 누구든 무엇이든 괜찮은 놈이 잘 썩기도 합니다. 음식은 잘 썩어야 괜찮은 음식이지요. 만일 빵을 샀는데 일주일이 지나도 곰팡이가 피지 않는다면, 그 빵은 먹을 수 없는 빵입니다. 식물도 괜찮은 놈들이 잘 썩습니다. 난이 그렇고 콩나물이 그렇지요. 사람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괜찮은 사람이 잘 썩습니다. 세간에 닳고 닳은 사람은 잘 썩지도 않더군요. 저는 마음바탕이 괜찮고 민감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이 잘 썩는다고 생각합니다.

잘 썩는 사람들 중에는 이른바 성직자나 수행자들도 포함됩니다. 쓸 만한 바탕을 타고 났기 때문에 성직자가 되고 구도의 길을 떠나지만, 그 누구보다도 썩기 쉬운 이들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독 성직자나 수행자들에게 엄격한 계율이 강조되었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편안한 일상에 만족하는, 안전한 사람들은 잘 썩지 않기 때문에 굳이 이런저런 계율이 필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폐인이 될 가능성이 적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또한 안전한 사람들은 초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적습니다. 잘 썩는다는 것은 쉽게 전환이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위험합니다.

위험하다는 것은 '초인'이냐 '폐인'이냐의 기로에 서있다는 말입니다. 목을 꺾고 죽을 수도 있는가 하면 또한 찰나 간에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도 있는 순간이 바로 위험한 순간입니다. 위험하다는 것은 '피하라'는 말이 아니라, 다만 '조심하라'는 말일 뿐이지요. 위험하다고 피하기만 한다면 삶은 무의미할 뿐이겠지요. 삶이 위험하지 않다면, 가슴 떨리는 삶도 있을 수 없습니다.

초월과 명상, 신비주의와 요가로 대변되는 인도의 사상과 문화는 참된 자아를 발견하고 차원 높은 영성을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위대한 발자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8년 가을에 문을 연 인도학교는 인도사상의 입장에서 오늘날 우리의 사유방식과 문화를 짚어봄으로써, 물질만능의 왜곡된 가치관이 지배하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는데 그 뜻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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