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민회관에 하쿠오 학교 동문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강당 주변으로 서너 명이 무리를 지어 저마다 유인물을 나눠주며 후쇼샤 교과서 반대 활동을 하고 있었다. 주변 지역과 다른 학교의 동문들이었다. 그들 중에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교육을 생각하는 스기나미(杉竝)구 시민모임'의 마루하마 에리코 씨가 기자에게 관심을 보였다.
"한국에서는 시민운동의 힘이 대단하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힘이 미약해 후쇼샤 교과서를 막을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 한국에서도 많이 도와주세요."
마루하마 씨는 스기나미구와 자매결연 관계인 서초구를 방문해 스기나미구 구청장에게 후쇼샤 교과서 채택 반대 압력을 넣어달라고 요청한 적도 있다. 그가 기자에게 한 마디 덧붙였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교과서 때문에 이런 집회 할 일이 없어서 좋겠어요."
▲ 2005년 7월, 도쿄의 한 구민회관에서 열린 '후쇼샤 교과서 채택 반대 집회' 장면. ⓒ프레시안(김하영) |
그로부터 9년. 비슷한 풍경이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교문 앞에서 벌어지게 될 줄이야.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해야 할까? 학생과 학부모, 시민단체 등의 반발에 의해 마지막 남은 파주 한민고등학교 마저 교과서 채택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이 난리다. 교육부가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철회한 학교들을 특별조사하겠단다. 여당도 마찬가지다.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마녀 사냥'이라고 공식 논평했고, 김무성 의원은 우익시민단체 신년회에 가서 "교육부의 엄격한 검정을 거쳐 통과된 역사 교과서를 전교조의 테러에 의해 채택되지 않는 나라는 자유대한민국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같은 자리에서 황우여 대표도 "교과서를 하나 만들었는데 1%의 채택도 어려운 나라가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라며 "비통하게 보고 있다"고 했다.
'1% 채택도 어려운 나가 세상에 어디 있냐'고? 바로 옆에 있었다. 일본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1%를 넘었다고 하지만 일본의 후쇼샤 교과서 채택률은 2001년 0.039%, 2005년 0.4%였다.
그 시절 일본에서도 황우여 대표와 비슷한 말을 하던 사람이 있다. 아베 총리다. 그가 자민당 간사장 대리 시절이던 2004년에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주최한 우익패널 심포지움에 참석해 후쇼샤 교과서를 적극 지지하는 메시지를 전달했고, 관방장관이던 2005년에는 한 지방의원 심포지엄에서 "지역 교육위원회가 조용한 분위기에서 교과서를 채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정부가 최우선으로 할 일"이라고 했다.
2005년의 일본. 2014년의 한국. 뭔가 비슷하지 않나?
한 가지 더. 황우여 대표가 <YTN>과의 인터뷰에서 "다양한 교과서를 채택하되 궁극적으로 역사는 한 가지를 가르치는 게 국가의 의무"라며 국정 교과서 환원 가능성을 언급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아베 총리가 교과서에 역사·영토 문제를 다룰 땐 정부의 견해를 반영하도록 '교과서 검정기준'을 개정하겠다고 한다. 사실상 국정 교과서가 되는 것이다. 이건 뭐, 판박이다.
황우여 대표는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억장이 무너진다는 말이 있는데 그런 것을 순간적으로 느꼈다"며 "신사 참배는 전후 체제에 대한 하나의 도전적인 행동인데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한일 의원외교에) 냉각기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고. 그런데 아베 총리는 황우여 대표를 '뭔가 통하는' 친구처럼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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