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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춘대원군'? 흥선대원군에 비하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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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춘대원군'? 흥선대원군에 비하면 멀었다

[편집국에서] 김기춘과 박근혜 정권의 복고, 흥선대원군의 복고

역대 정권을 돌아보면,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 실세 논란이 심심찮게 있었다. 김영삼 정권 때 '소통령'(대통령의 아들 김현철 씨), 노무현 정권 때 '봉하대군'(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 이명박 정권 때 '영일대군'(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 등이 그들이다.

'소통령', '봉하대군', '영일대군'은 물론 당사자들이 스스로 붙인 명칭은 아니다. 이들의 행태를 못마땅하게 여긴 이들이 붙인 것이다. 조롱 섞인 별칭이 여러 개 붙는 경우도 있었다. 예컨대 '영일대군'에 더해 '상왕', '만사형통'으로 불린 이상득 전 의원이 그렇다.

박근혜 정권 들어 이 대열에 한 명 더 합류했다.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김 실장을 두고 세간에서 '기춘대원군'이란 말이 회자되고 있다. 김 실장을 19세기 말 조선의 권력자이던 흥선대원군에 빗댄 이 말의 발원지는 야권이다. 임금이 아니면서 임금보다 더한 권력을 행사한 흥선대원군처럼 김 실장이 PK(부산 경남) 편중 인사 등 전횡을 일삼고 있다는 비판이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낙마 등을 통해 국정원의 대선 개입에 대한 수사를 흔들고 정권 차원에서 일련의 공안 공세를 펼치는 것과 김 실장이 무관치 않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김 실장이 걸어온 길은 세간의 이러한 의혹에 힘을 실어준다. 7인회(박근혜 대통령의 올드보이 그룹)의 핵심으로 꼽히는 김 실장은 유신 독재 시절 엘리트 검사로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중앙정보부에서 경력을 쌓았다. 음습한 공작 정치의 산실, 바로 그 중앙정보부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김 실장은 민주주의를 짓밟은 유신 헌법의 기초자이자, 1992년 대선을 뒤흔든 악명 높은 '초원복집 사건'의 주역이기도 하다. '초원복집 사건'은 현대사를 좀먹은 공작 정치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사안이다.

그런 그가 비서실장으로 나선 후 사회 전반을 뒤흔드는 일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기춘대원군' 논란이 일자 김 실장은 "더 낮게, 더 겸허하게 일하겠다"며 몸을 낮췄다. 그러나 야권은 여전히 김 실장을 주목하고 있다. '기춘대원군'도 여의도를 넘어 곳곳에서 입길에 오르고 있다. 김 실장이 걸어온 길과 박근혜 정권의 현재 모습을 보면 의혹의 눈길이 쏠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연합뉴스

'기춘대원군' 규정, 과분하다

이렇게 '기춘대원군'이란 말이 나오는 맥락을 모르지 않지만, 딱 들어맞는 표현인지는 의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과분한 표현이라고 본다. 지하의 흥선대원군이 박근혜 정권의 오늘을 보고 '기춘대원군'이란 말을 들으면 서운함을 많이 느낄 것 같다는 말이다.

흥선대원군의 치세는 학계에서 평가가 엇갈리는 주제다. 이 자리에서 흥선대원군의 시대를 세세히 다룰 여유는 없지만, 그를 영웅시할 생각은 조금도 없음은 분명히 해둔다. 국왕 중심의 세상을 꿈꿨던 그의 복고주의에 공감하지도 않고, 실정을 덮을 의도도 없다.

그럼에도 '과분하다'고 한 건 흥선대원군은 백성의 피부에 와 닿을 만한 개혁 조치를 적어도 몇 가지는 했다는 점 때문이다. 설립 취지와 달리 백성의 등골을 빼며 온갖 패악을 부리던 서원을 대폭 정리한 것이나 특권층이던 양반에게 세금 부담을 지운 것 같은 조치다. 오로지 백성만을 위한 것이었다기보다는 왕권 강화라는 목적이 담긴 조치로 보는 것이 적절하겠지만, 그럼에도 당시 백성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이었다고 볼 수 있다. 기득권층이 거세게 반발한 것도 이를 반증한다.

그러나 김 실장을 비롯한 현 정권의 실세들이 집권 후 이런 조치를 취한 적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경제 민주화와 복지를 축으로 한 대선 공약들은 적잖게 폐기됐다. 기득권층의 반발을 넘어서려는 시도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공약 폐기가 아니라 조정일 뿐'이라는 변명에 급급한 모습이었다. 자신들 역시 기득권층의 일부였음에도 사안에 따라 기득권층에 속한 다른 세력을 누르며 백성의 지지를 구했던 흥선대원군 세력만도 못한 모습 아닌가. 복고를 꿈꾸는 점은 닮았지만, 이런 점에선 차이가 난다.

이러한 세력의 핵심으로 꼽히는 김 실장을 '기춘대원군'으로 규정하는 것이 과분한 이유다. 공자가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막지 않을 것이라며 서원 철폐를 밀어붙인 흥선대원군에 견주려면, 국민을 괴롭히는 고액 등록금이나 재벌 체제로 인한 문제를 풀기 위해 기득권층과 정면 대결하는 모습 정도는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 공안 칼날을 휘두르는 그 기세는 왜 기득권층 앞에선 고개를 숙이는가 하는 의문을 국민 다수가 품게 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물론 박근혜 정권이 벌이는 일의 모든 책임을 김 실장 개인에게 물을 수는 없다. 그러나 정권의 핵심인 김 실장이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기춘대원군'에 담긴 조롱을 걷어내는 것 또한 김 실장의 몫이다. 상갓집 개라는 양반들의 조롱을 달고 살며 때로는 밑바닥 백성의 삶도 가까이에서 지켜본 흥선대원군이 집권 후 취한 정도의 조치를 엘리트로만 살아온 김 실장을 비롯한 정권 실세들이 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야당에 권한다. 역사적 사례는 맥락을 고려해 갖다 썼으면 한다. 예컨대 흥선대원군은 직전 집권 세력인 안동 김 씨에 비해 인재 등용 폭을 넓혔다. 세도 정치에서 소외된 세력을 폭넓게 등용하는 것이 자신의 세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지 않고, '기춘대원군'의 근거 중 하나로 PK 편중 인사를 제시한 건 민망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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