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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헌정당 해산제도가 악용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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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헌정당 해산제도가 악용되는 나라

[이태경의 고공비행] 통합진보당 해산청구는 기각돼야

당·정·청이 똘똘 뭉쳐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청구와 정당 활동정지 가처분 신청을 추진하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및 은폐사건을 국민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만드는 것, 지방선거에서 야권연대의 가능성을 봉쇄하고 압승하는 것이 단기간에 달성하고자 하는 전략적 목표라면, 통진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청구 등과 함께 시민사회세력을 질식시킬 각종 법률들을 입안해 정치적 반대세력에 재기불능의 타격을 주어 한국사회를 완전히 보수일색으로 재편하겠다는 것이 장기적 전략목표일 것이다. 물론 당·정·청이 저런 무도하기 이를 데 없는 행동을 하는 데에는 박근혜의 퍼스넬리티도 적지 않게 작용할 것이다.

당·정·청의 의도와 전술은 매우 영민하다. 일단 내란음모를 획책하는 정당으로 통진당을 빨간 페인트를 칠한 후 위헌정당해산심판청구를 했는데, 통진당을 구하려고 연대투쟁에 나서자니 그 페인트에 묻을까봐 그 누구라도 전전긍긍하지 않을 수 없는 모양새다. 통진당을 고립무원의 처지로 만들고 통진당에 맹공을 퍼부은 후 곧 포문을 다른 정당과 시민사회에 돌릴 당·정·청의 행보가 뻔히 보이는데도 이를 제어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일단은 헌법재판소가 법의 외피만 두른 당·정·청의 폭주를 진정시켜야 할 것 같다. 헌법재판소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 집행부와 입법부의 위헌적 행위들에 대한 규범통제를 해야 할 의무가 헌법재판소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통진당에 대한 정부의 정당해산심판청구 등을 단호하게 기각시켜야 한다. 통진당은 민주적 기본질서에 어긋나는 강령을 갖고 있지도, 그런 행위를 한 사실도 없기 때문이다.

위헌정당해산심판청구의 근거가 된 방어적 민주주의

위헌정당해산심판청구는 방어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에서 유래한 제도이다. 방어적 민주주의란 민주주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거나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파괴하는 민주주의의 적으로부터 민주주의를 방어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현대 민주주의는 가치상대주의에 기초한 다원적 정치과정으로 이해되는데, 이러한 상대주의적 민주주의가 극단화되면 국가는 관용의 원리에 기초하여 모든 정치적 입장에 대해 중립을 지켜야 하며, 오직 다수의 지지를 받기만 하면 누구라도 집권할 수 있고, 어떤 정치적 방향도 채택·실현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알다시피 이러한 위험성은 독일의 나치스가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어 선거로 집권한 후 수권법을 제정하여 바이마르 민주주의를 붕괴시킴으로써 현실로 나타났다. 이러한 경험에 대한 반성으로 민주주의는 가치상대주의적 관용을 지양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책을 세워야 한다는 이론이 제기되었고 이것이 방어적 민주주의론으로 정립된 것이다. 즉 민주주의는 가능한 한 모든 견해와 주장을 허용하지만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거나 공격하는 주장과 견해는 허용하지 않으며 민주주의의 적으로부터 민주주의를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 방어적 민주주의인 것이다.

전후에 서독은 기본법을 제정해 위헌정당해산제와 기본권실효제 등의 방어적 민주주의 제도들을 도입하였다. 대한민국도 헌법 제8조 제4항에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의 제소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고 하여 위헌정당해산제도를 두고 있으며, 국가안전보장이나 질서유지를 위하여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한 헌법 제37조 제2항도 방어적 민주주의를 수용한 규정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방어적 민주주의는 가치상대주의적 민주주의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일정한 가치에 구속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가치구속적 민주주의관을 전제로 하는데,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민주주의의 가치구속의 내용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로 보고 있으며,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모든 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를 배제하고 그때그때 다수 의사와 자유 및 평등에 의거한 국민의 자기결정을 토대로 하는 법치국가적 통치질서"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한 자유민주 기본질서의 구체적 요소로서 인간의 존엄과 인격의 존중을 기본으로 하는 인권의 보장, 국민주권의 원리, 권력분립의 원리, 책임정치의 원리, 행정의 합법률성, 사법권의 독립, 복수정당제와 정당활동 자유 등을 들고 있다. 우리 헌법재판소가 생각하는 자유민주 기본질서의 구체적 요소도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를 추가하면 독일연방헌법재판소와 거의 동일하다.

주의할 것은 방어적 민주주의가 자칫 민주주의를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도구로 악용될 염려가 있다는 사실이다. 방어적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본질을 침해하는 자기모순을 범해서는 안 된다. 특히 방어적 민주주의가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정당설립의 자유 등 정치적 기본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수단으로 남용되어서는 안 되며, 헌법원리로서의 민주주의는 법치국가, 사회국가, 기본권 등의 본질을 침해해서도 안 된다. 또한 방어적 민주주의로 인한 각종 제한은 엄격한 비례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 방어적 민주주의를 남용 또는 오용할 경우의 위험은 민주주의에 대해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헌재에 기대한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위헌정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청구는 방어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구체화시킨 제도이며, 극히 엄격하게 그것도 비례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는 제도다. 통진당의 강령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었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는가? 통진당의 강령은 대한민국 헌법이 지향하는 민주적 기본질서와 충돌하지 않으며, 이석기 등의 행위도 사법적으로 정리된 것이 전혀 없을 뿐더러 정당의 활동과는 분리해 취급되어야 마땅하다. 따라서 통진당에 대한 위헌정당해산심판청구는 당연히 기각되어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존재의의를 헌법재판소가 스스로 증명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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