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몰랐다.
내가 어느새 환갑이 되었는가?
나는 내 생일조차 기억 못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우들이 어느새 내 생일까지 기억하고 그날 오전에 '개벽'이라는 불고기집에서 밥상을 차려놓고 나를 불렀다.
김민기, 채희완, 김영동, 임진택, 임정희, 유재찬, 이광모, 김영복, 홍성담, 김석만, 이상우, 윤형근 아우들과 두껍스님, 문단의 강형철, 현준만, 김영현 아우들이 모여 있었다.
무슨 말을 하랴! 헛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무척이나 뒤뚱거리며 허겁지겁 살아온 것 같다. 아우들아, 미안하다. 인사말도 뭐라 했는지 지금은 기억에 없다. 다만 밥자리가 끝나고 풍동의 '숲속의 섬'에 가서 술들을 마셨다.
술도 못 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웃는 일과 돌아온 갑자에 부쳐 내 스스로에게 잘 살자고 맹세하는 것뿐.
시와 그림이라는 내 일을 열심히 하고 공적인 일로는 아내를 도와 개벽적 페미니즘의 길, 즉 '마고복본'을 실천할 것.
정심봉사正心奉仕할 것.
텅 빈 마음으로 명상과 변혁을 통일하는 '요기-싸르'의 길을 걸을 것.
'흰 그늘'의 길에 끝끝내 설 것.
그뿐!
회갑 기사가 너무 싱겁다.
작년 초에 쓴 〈서쪽〉이라는 시와 〈설날 1〉을 기념으로 짚고 넘어간다.
***서쪽**
저녁이면
해가
머리맡에 탄다
서쪽으로 눕는다
매일 저녁
죽음을 연습한다
늙어
한강 건너 염하 너머
강화 숲속 어딘가 외딴 흙집에
깊이 묻히고자
묻혀 잊히고자
이리 누워 버릇한다
해타는 서쪽
저기 저 김포 허공에
비행기들 자꾸만 뜨고
내 오랜 꿈들도 함께 자꾸만 뜨고
아름다운 삶,
어여쁜 죽음,
또
혹시는
산 채로 늙은 채로
다시 태어나는 안쓰러운
한 짧은 律呂聲.
***설날 1**
이십 년 전
삼십 년 전
옛 몸뚱이
그리도 태우더니
모진 그 생각 한 자락
새하얀
환갑 나이
이 설날 아침에
치렁치렁 귀신이 되어
차례상 앞에 와
문득 선다
선 채
나를 꼬눈다
흰눈 위에 잠시 이는
바람처럼 살다가나 했더니
헛꿈이었나
어젯밤 전화에
울먹이던 노모 때문인가
바람 접고
쌩고롬한 하늘 속 든다
하늘가에 오똑 선
돌하르방
뚝
떨구는
피 한 방울
검은 돌소금이 어느덧
피를 지우고
심오한 설 햇빛이여 설 햇빛을 모심이여
이 모진 한 생각은.
모질게 살겠다는 모진 각오와 모진 생각들을 넘어서려 한다. 무엇으로? '모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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