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토지문화관에서 한달에 두 번씩 도원 유승국(道原 柳承國) 선생의 주역강의를 연세대 매지리분교 철학과의 특강형식으로 개설하였다. 나는 그 강의에서 꼬박꼬박 주역의 기초를 배우고 주역 속에 숨겨져 있는 정역의 예감을 읽는다. 놀라운 것은 유선생님이시다. 팔순의 연세에 세 시간씩 꼬박 서서 열정적으로 강의하시는 그 에너지는 어디서부터 오는가?
대답은 하나다.
진리에 대한 사랑에서일 것이다.
나는 강의를 들을 때마다 무척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행복을 느낀다.
'등탑팔괘' 때문이 아니다.
'신결승' 때문도 아니다.
'별수련' 때문도 진정 아니다.
그것은 이미 잊은 지 오래다.
다만 주역의 진리 자체에 감동해서다.
주역과 정역은 이제부터 밝아오기 시작하는 세계의 새로운 미래다. 이것을 공부하고 있기에 나는 확신에 차서 민족과 동양과 신세대와 신문명, 신문화를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유선생님은 동양 중에는 노른자인 한민족의 전통사상, 그 전통철학을 세 가지로 요약하시었다.
생명과 평화.
그리고 극과 극 사이의 모순대립과 동시에 일치조화하는 태극. 즉 음양이다.
전세계, 전지구가 부딪치고 있는 이른바 '대혼돈(Big Chaos)'에 대한 대답은 이 세 가지뿐이다. 강의는 이 셋을 양파껍질 까듯이 되풀이되풀이하면서 파들어가며 또한 질적으로 확산수렴한다.
이미 작년인 신사(辛巳)년부터 기이한 후천개벽이 시작되었으니 우리 민족의 사명인 성배(聖杯), 곧 새로운 삶과 새로운 세계의 원형을 보여주는 개진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공자는 말했다. 아침에 진리를 들었으면 저녁에 죽는다 해도 좋으리라고.
나도 마찬가지 심경이니 이 길에서 쓰러지더라도 나는 행복하다. 그리고 이 행복은 그저 덧없이 왔다 덧없이 가는 쾌락이 아니니 더욱 행복하다.
또 한가지.
주역의 기초를 더 단단히 배우기 위해 나, 아내, 김영동(金永東) 아우 셋만이 서울에서 또 한달에 두 번씩 임채우(林采祐) 선생의 역강의를 듣는다.
공부할수록 무서워지고 공부할수록 겸허해지는 이 공부를 무어라 부르는가?
'공부(功夫)' 즉 '쿵후' 이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쿵후!'
그래!
나는 이소룡(李小龍)이다.
'잠룡물용(潛龍勿用)'이란 뜻이니 아직 나설 때가 아니요 아는 체 할 때도 아니어서 그저 이런저런 저간의 소식만 전한다는 뜻이다.
소식. 이것이 회상이다.
기억이 소식인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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