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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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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302>

민족미학

본디 부산 민족미학연구소의 소장 채희완 아우와의 약속은 일정 기간 부산에 머물면서 민족미학의 기초에 관련된 일련의 강의를 해주기로 한 것이었다. 우선 강의하고 뒤에 희완 아우와 연구소 팀이 그 강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정리해 실천문학사에서 책으로 출판하는 것이 처음 계획이었다. 그러나 훗날 원고를 받아보고 나니 너무도 난삽하여 출판을 무기한 보류해버렸다.

강의는 채희완 아우의 《탈춤》이라는 책을 텍스트로 하여 '환(環)―탈춤의 민족미학'이라는 제목으로 민족미학의 첫 구성 근거로서의 시간, 공간, 육체, 시각, 진화에 관한 다섯 항목으로 이루어졌다. 언젠가는 출판될 것으로 알고 여기엔 그 다음다음 해인 4334년(2001년) 4월 8일자 〈일산에서〉로 되어 있는 나의 서문을 우선 그대로 소개한다.

환(環)의 심화ㆍ확산을!

재작년 겨울에 나는 부산 해운대에 있었다. 눈을 들어 바라보면 바로 바다요, 바다 너머 맑은 날이면 쓰시마 섬이 보였다.

바다엔 빛의 숲이 선 것 같았다. 진종일 눈부셨고, 바다로부터는 처음 듣는 노랫소리가 내내 들려왔다. 밤에 고깃배들이 밤바다 저쪽에 휘황한 불을 밝힐 때 아름다운 흰 집인 민족미학연구소에 나가 강의를 했다. 그리고 바닷가에선 영신들이 그 밤에 긴긴 옛 가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생각해보니 참으로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강의는 '환(環)'에 관한 것이었고 '환'은 탈춤이 지닌 민족미학의 핵심 주제였다. 《천부경》에 "삼사성환 오칠일(三四成環 五七一)"이란 구절에 '환'이 나타나고, 채희완 교수의 《탈춤》이란 책에 탈춤의 핵심 주제로서 또다시 '환'이 나타나는데, 이 '환' 또는 '환중(環中)'은 장자 철학의 주요 테마이며, 일본 학자 사카이(版井)에 하면 또한 현대 원자물리학의 핵운동에 관한 주요 법칙이기도 한 것이다.

이 '환'에 관해 묵상한 결과, 또 강의한 결과가 이번 책이다. 때로 난삽하고 애매하기도 해서 논의의 여지가 있겠지만, 초미의 관심사인 민족미학을 세우는 데에서 쟁론이 없을 수 없고, 더욱이 나에게 이번 강의는 젊은 미학자들이 민족미학을 탐구하는 데 징검다리를 놓는다는 의미가 있으므로 도리어 잘된 것이라 생각한다. 많이 비판하고 토론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바다 위에서 빛나는 햇살을 보며 많은 시간 나는 우리 민족의 옛 터전이었다는 바이칼 호수와 시베리아 설원을 생각했다. 그 허공에서 한 '고독한 변화의 신(獨化之神)'이 두려운 바람 소리 속에서 오래도록 홀로 외쳤다고 한다. 그 홀로 외침이 '환' 또는 '환중'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노자나 장자는 동이족과 화하족이 문명의 문호를 따로 내기 이전 타원커우(大汶口)문화에서조차 하나의 모태인 선도仙道 개념의 중국적 표현이다. 나는 '환'이 그래서 우리의 《천부경》과 노장학이 공유한 테마라고 생각한다.

'환' '환중'에는 물리학ㆍ철학의 개념으로서의 우월함 이외에 기이하게도 커다란 쓸쓸함과 깊은 외로움이 달라붙어 있다. 또 하나 생각나는 게 있는데 서양의 물리학자 뤼크레스가 물리학의 원리들을 시의 운율에 따라 읊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풍류에 대한 인문학적 고집만으로는 일면성을 면하기 어렵다. 그리하여 율려를 풍류로, 풍류를 율려로 가져가지 않으면 안 된다. 바이칼 호수의 눈부신 햇살과 시베리아 대설원의 저 푸르른 허공에서 외롭게 외치는, 고독한 변화의 신의 목소리인 천부가 율려와 풍류의 형식으로 현대에 되살아나는 길, 이것이 앞으로 젊은 미학자들이 노력해야 할 방향이며, '빅 카오스'에 대한 대답으로서 동아시아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또 마땅히 시작될 대문예부흥, 대문화혁명의 시적이며 수리적인 새 미학의 상징이 될 것이다.

늘 술을 즐기는, 행복한 채희완 교수를 바라보며 가끔 내 삶을 생각한다. 술도, 담배도, 아리따운 사랑도 다 잃어버린 내 여생에 유일한 낙이 있다면 그것은 진리, 특히 민족미학적 진리에 이르는 몇 개의 징검다리를 놓고 가는 일에 겸손되이 몰두하는 것뿐일 게다.

다만 젊은 예술가들, 미학자들, 예술학도 들에게 바라는 바가 하나 있다. 어떤 사람의 사상을 얼핏 보고 쉽게 무엇이다, 무엇이다 규정해버리거나 무슨 파, 무슨 주의자로 단정해버리는, 참으로 오랜 습관이 된, 그 경솔함을 이제 다시는 범하지 말고 그 사상과 함께 나와 민족과 세계 인류와 지구, 우주를 걱정하고 새 길을 모색하는 자리에서 토론하며 밤을 새우는 슬기와 용기의 긴 여정에 참가하라고 충고하고 싶다.

사실, 이 적막강산에 갈 길이 주어진다면, 그것은 예전처럼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이 안에서 태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것은 민족적이니 국수적이니 하는 부질없는 논의와 무관하게 동아시아와 한반도가 지닌 세계사적 소명과 책무라는 사실을 또한 말해주고 싶다.

나는 이번 강의를 하면서 채희완 교수의 《탈춤》에서 자극받은 바가 많다. 채교수와 부산 민족미학연구소 팀의 열정적인 탐구와 그 탐구 결과의 확산에 이 책이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또 젊은 예술가, 미학자, 예술학도 들의 미학 공부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 글로 서문을 대신할까 한다.

김지하 모심

시간이란 무엇인가?

시간이란 선(線)적인 것도, 극(劇)적인 것도 아니고, 알파와 오메가처럼 시작과 끝이 있는 것도 아니며, 지금 여기, 우리의 생명과 영성의 삶으로부터 과거로, 미래로 사방, 팔방, 시방으로 차원을 바꾸면서 단락단락을 지으면서 끊임없이 질적으로 확산되고, 또한 지금 여기의 나와 우리와 우주의 새 삶으로 끊임없이 질적으로 수렴되는 것. 여기 지금의 삶을 중심으로 수없이 많은 역류를 안고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 끝이 있으나 또한 끝없이 새로운 시작이 있는, 흘러가는 것만이 아니라 흐르면서 동시에 거꾸로 역류하는, 점진하면서도 폭발하는, 그러한 역易적인 것임을 탈춤과 시나위와 거의 모든 민족 전통예술의 시간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을 자각적으로 미학화ㆍ'투르기Turgy화'해야 한다.

공간이란 무엇인가? 공간은 무기물과 유기물의 생태적 혼거처도, 물질들의 복합체도 아니다. 공간은 동양의 풍수지리에서처럼 길고 복잡한, 의미가 충만한 맥(脈)이 있고, 혼란스러울 정도의 신비로운 층(層)이 있으니, 태극과 음양과 사상과 오행과 함께 역(易)처럼 64개의 의미 차원과 370여 경락계에, 또는 그 배수 이상인 780여의 복합적인 경표(經表)가 살아 있는, 의미심장한 생명체이다. 모든 연행예술에서 존재하는 공간 원리는 바로 이와 같은 풍수와 경표의 생명논리 위에 토대를 두고 있으니, 민족미학이 그 맥과 층위와 차원과 경표에 따른 생명론적인 미학적 세목을 새로이 탐구해야 할 때다.

육체란 무엇인가? 배우와 예술가의 육체는 영성과 생명과 개성의 체계다. 그것 역시 태극ㆍ음양ㆍ사상ㆍ팔괘ㆍ64괘와 370여 또는 780여 가지의 기능과 성질과 의미를 가진 복잡한 생명체다. 또한 370여 개의 드러난 표층 경락계와 동시에 370여 개의 숨겨진 심층 경락계가 서로 복합적 교류관계 위에 서 있다. 육체를 매개로 하는 연행예술은 이 육체 형상과 육체 언어, 육체 상징 등을 이 같은 경락계의 태극음양오행론 등에서, 또는 선도풍류와 참동계(參同契) 태을금화(太乙金華) 등의 원리로부터 새로운 육체와 육체 언어의 미학을 추출해내야 할 것이다.

시각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시각 자체가 그 근본 심층에서 네 가지 층위의 시각, 즉 네 개의 눈동자로 돼 있고 앞뒤의 동시적 양면 시각 체계로 돼 있다. 이러한 개인들의 시각은 마당이나 판의 극과 굿에서 관객이 광대들을 둘러싼 둥근 원을 구성함으로써 협동적 시각, 시각의 협동, 시각의 시너지를 산출하여 육체적ㆍ개인적 시각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따라서 굿이나 극이나 시나위나 그림판을 그 계시된 표면과 그것이 계시하는 심층적 연관을 함께 인식하도록 하고 감동과 비판과 영적 묵상을 동시에 수반하게 한다. 이 같은 시각의 조건에 따라 조명과 무대 부속 미술과 극장 등의 기능과 구조가 재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희랍 이후 서양의 예술과 연극 등은 '시각의 미학 일변도'였다. 특히 르네상스 이후 그렇다. 시각 일변도의 미학의 한계를 돌파하여 협동적 시각, 전면적 시각, 혹은 온몸에 두뇌 기능이 있다는 시너지적인, 새로운 시각의 미학이 창조되어야 할 것이다.

진화란 무엇인가? 내면적ㆍ영적 인식과 외면적ㆍ생명생태적 복잡화 및 감각의 복잡성 등이 상호 연관된 유기적 진화관계에서 예술적 진화사상을 다시 검토해야 될 것이다. 자유의 진화, 자기조직화의 진화, 개체 발생을 통한 개체 나름의 내면적 전체를 실현하는 개체 종種의 진화, 그리고 '위로부터의 기제'를 중심으로 한 '아래로부터의 기제'의 진화도 마찬가지다. 이것들은 또한 《역경》의 미학을 탐색하고 신비적 미의식과 사이버적이고 디지털적인 수리 체계 사이의, 살아 생동하는 영적 관계를 창작과 향수에 활용함으로써 총괄적 현실의식과 초의식ㆍ무의식의 통합을 근거로 한 '감각 통합을 통한 깨달음'이나 대중문화의 삼차원적 중력장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차원 이상의 초월적 아우라의 표현, 제7식의 현실총괄의식과 제8식, 제9식의 초의식ㆍ무의식의 한마음〔一心〕으로 통합적 진화 표현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몸 안에서의 리비도와 아우라, 디지털과 에코라는 두 측면들의 교호관계에 의한 복잡한 변화를 미학화해야 한다.

강의 원고에서는 대체로 이상과 같은 다섯 가지 측면에 대한 미학적 접근을 복합시키거나 교차시켜 마치 역리에서와 같이 안과 밖〔內外〕, 위와 아래〔上下〕, 겉과 속〔表裏〕, 제대로와 거꾸로〔倒逆〕 등의 방법으로 다양한 해석을 시도하였다.

물론 원고가 난삽하고 제대로 정리되거나 교정된 것도 아니다. 그러니 비판인들 제대로 되었겠는가? 출간하려면 다음 기회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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