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우여곡절 끝에 전당대회를 통한 통합신당 추진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내홍이 그칠줄 모르고 있다. 통합신당파 내부의 정체성 논란에 이어 말만 무성하던 선도탈당까지 가시화되고 있는 것.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조직특보를 지낸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이자 호남권에 적잖은 지분을 가진 염동연 의원이 지난 5일 "열린우리당이라는 거대한 호수는 수류탄 하나만 던져도 깨진다"며 선도탈당 결행의지를 밝혔다.
"물꼬를 트기 위해 선도탈당 결행하겠다"
염 의원은 "통합신당의 물꼬를 트기 위해 선도탈당을 결행하겠다"며 "모든 세력이 기득권을 포기하고 '헤쳐모여'를 해야 한다"며 "당을 지키겠다는 사람은 존중해주고 갈라선 뒤에 통합이란 큰 길에서 다시 만나면 된다"고 밝혔다.
이는 최근 당사수파의 일부가 전당대회 추진을 반대하는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제출하고 신당파 안에서도 내분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전당대회를 통한 신당추진이 난항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이 열린우리당이라는 형해화된 껍데기만 유지될 수 있다는 것.
또한 염 의원은 평소부터 '우리당, 민주당, 고건의 기계적 결합은 안 되고 헤쳐모여식 대통합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쳐 왔기 때문에 애초부터 '질서있는 통합신당추진'을 주장하는 당내 주류와도 거리가 없지 않았다.
염 의원의 이같은 '수류탄 투척 예고'는 복잡한 여권 내 상황은 물론 염 의원 본인의 독특한 당내 포지션과 맞물려 만만찮은 파장을 낳고 있다.
그간 친고건계 의원을 중심으로 선도탈당론이 심심찮게 제기됐지만, 고 전 총리의 지지율 하락세 등으로 인해 '결심'을 굳히는 의원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염 의원이 탈당을 행동으로 옮길 경우, 염 의원과 최종 목표는 다르더라도 '먼저 우리당을 깨야 한다'는 전술적 목표에 동의하는 의원들이 '결행'에 나설 수 있다는 것. 현재 여당 안팎에서는 적게는 10여 명, 많게는 20여 명이 전당대회 이전 탈당가능자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중진급 초선' 염동연의 복잡한 포지션
한편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여름 염 의원을 청와대에 불러 "국회의원 한 번 더 하는 게 중요하냐"며 자신에게 힘을 실어줄 것을 당부한 바 있다. 하지만 염 의원은 부정적 답변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최근 염 의원은 "대통합의 호랑이를 그리려는데, 붓도 들기 전에 노 대통령이 '고양이를 그리려 한다'고 앞서 재단하고 있다"고 공공연히 불만을 표출했다.
이는 염 의원이 노 대통령의 측근이지만 지역연고가 호남일 뿐더러 정치적 성장배경도 대통령의 386 측근들과는 180도 다르기 때문.
일각에서는 염 의원을 친 고건 인사로 분류하는 시선도 있지만 염 의원의 포지션은 좀 더 복잡하다. 초선 의원임에도 불구하고 당 사무총장을 지내고 우리당 호남권 맹주를 자임하는 등 중진급의 파워를 지니고 있는 염 의원은 호남지역 의원들뿐 아니라 임종석, 이계안 등 수도권 의원들과도 가깝게 지내고 있다.
염 의원은 지난 해 2월 전당대회에서는 민주당과 통합 등 호남 지역 전통적 지지세력 회복을 주장하며 출마한 임종석 의원을 공개적으로 후원하기도 했다.
범 통합신당파로 분류되지만 강봉균으로 대표되는 '과천 실용파'와는 정반대 위치에 서 있는 최재천 의원이 염 의원의 탈당결행론에 대해 "긍정적이며 필요한 일"이라고 반긴 것도 복잡한 상황을 방증한다.
염 의원은 탈당결행을 발표하기 하루 전인 4일 정동영 전 당의장을 따로 만나 자신의 속내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의장 측은 "듣기만 했다"고 밝혔지만 염 의원의 발표 이후 우리당 전현직 지도부는 7일 급거 회동해 향후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친노직계 "통합신당파 내홍 날 줄 알았다"
한편 염 의원의 결행 발표에 대해 청와대와 친노직계의 움직임은 일단은 담담하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통령 측근이라고 보도가 많이 되던데 그 양반은 '前 측근'이 아니냐"며 "딱히 우리가 뭐라고 말할 것은 없다"고 말했다.
친노직계 참정연 대표를 맡고 있는 김형주 의원도 "임계점에 온 것이 아닌가 싶다"며 "전남지역 의원들을 중심으로 탈당을 결행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염 의원과 김 의원은 지금 처해 있는 자리는 다르지만 '뜻이 안 맞으면 서로 상처주고 싸울 필요 없이 일단 헤어졌다가 나중에 대통합의 자리에서 뭉치면 된다'는 공통된 지론을 갖고 있다.
친노진영의 한 인사는 "저 쪽(통합신당파)이 '노무현 반대'만 있었지 사실 다들 속내가 다른 콩가루 집안 아니었냐"며 "이런 상황이 발생할 줄 알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숫자를 앞세워 친노진영은 제압할 때는 잠복해 있던 정책노선, 조직노선의 차이가 이렇게 물위로 올라오면서 열린우리당의 혼란상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 당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인 '리더십 부재'가 위기상황이 닥쳐오자 혼란상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 모양새다.
'선도탈당 결행' 발표 이후 해외로 떠난 염 의원이 귀국하는 9일 이후 상황은 더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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