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2003년쯤이던가 2004년쯤이던가, 전북 전주시 모악산(母嶽山) 자락 구릿골(銅谷)에 있는 김형렬(金炯烈)가의 귀퉁이방에서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 선생이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앞으로 오는 후천시대에는 율려(律呂)가 세상을 다스릴 것이다."
율려가 무엇인가?
율려가 무엇이관대 세상을 다스린다는 것인가? 세상을 다스린다는 것은 바로 정치인데 그 정치를 주재하는 것이 율려라니 도대체 율려란 무엇을 말하는가?
율려란 쉽게 말하면 음악(音樂)이다. 다만 주역(周易)이나 정역(正易) 등 태극음양의 우주질서에 맞추어 만들어진 우주만물의 음악을 율려라고 특정해 부르는 것이다.
그러니 강증산 선생의 말씀은 곧,
'음악이 세상을 다스린다'란 말이다. 다만 그 음악이 우주의 새로운 질서에 알맞을 때의 일이다.
율려가 우주의 질서라면 그것은 곧 생명의 질서이기도 한 것이니 가다듬어 말하자면 율려는 우주만물의 생명질서에 알맞는 음악을 말한다. 그 질서를 수리화(數理化)하고 철학화한 것이 역(易)이요 그 질서의 음악적 원리를 서술한 것이 지금은 없어져버린 악경(樂經)이며 지금에 남아 있는 예기(禮記) 중의 악기(樂記)이다.
악기에는 다음과 같은 말뜻이 있다.
'나라가 망할려면 음악부터 썩는다.'
그러니 음악이 간사하고 음탕하면 곧 사회와 국가가 망하는 첫 조짐이다.
공자는 왜 악기를 들고 강변에서 어슬렁거렸을까?
새로운 세상을 열려면 새로운 인간의 행동, 즉 새로운 예절(禮)을 창조해야 하고 새로운 예절을 창조해내는 것은 새로운 음악(樂)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람의 삶과 사회를 변혁하려면 새로운 예악(禮樂)을 일으켜야 하는데, 그것을 일으키려면 자기의 마음의 질서와 우주만물의 생명질서가 함께 움직이는 그 새로움을 인식하기 위해 자기를 관찰하고 세계를 관찰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동양의 성왕(聖王)들은 모두 자기의 독특한 음악이 있었으니 그 대표적인 것이 순(舜)임금의 소악(韶樂)이다. 우주의 새 질서에 일치하는 자기의 정치철학인 셈이다. 이것이 바로 율려다.
새로운 왕조에도 새 율려가 있었으니 5만년 만에 크게 바뀐다는 지금의 이 후천(後天)세상에 새 율려가 없겠는가?
율려의 여섯 가지 율(律)은 역(易)에서 양(陽)이요 하늘이요 남성이요 군자이며 제왕이고 여섯 가지 여(呂)는 음(陰)이요 땅이요 여성이요 소인이요 민중이다.
그러매 율려는 아무래도 남성과 군자와 제왕 중심의 봉건제시대의 우주음악이다. 즉 선천(先天)이다. 2800년이나 내려오는 중국의 주역은 바로 이 선천의 율려를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주역과 율려는 음을 억제하고 양을 높이는 윤리(抑陰尊陽) 위에 서 있다.
그러면 후천의 여성과 소인과 민중 중심의 민주제 시대의 우주음악, 생명음악은 무엇일까? 1883년에 충남 연산(連山)에서 공표된 김일부(金一夫) 선생의 한국 역학인 정역(正易)은 그것을 '여율(呂律)'이라고 공공연히 뒤집어놓고 있다. 그래서 정역과 여율은 양을 조절하고 음을 움직이는 철리(調陽律陰) 위에 서 있다.
2005 년, 2006년쯤 강증산 선생이 자기의 부인인 수부(首婦) 고판례에게 천지대권(天地大權)을 넘긴 뒤에 세상을 바꾸는 '천지굿'을 열었는데 이 때에 중국에서 건너온 당악(唐樂)이나 송악(宋樂) 같은 궁정음악, 즉 아악(雅樂)이 아니라 무지렁이 농사꾼들의 농악(農樂)인 '풍물(風物)'과 걸뱅이, 사당패 같은 천민(賤民)들의 '걸군악'을 울렸으니 그것이 바로 '여율'이다. 여율은 민속악(民俗樂) 즉, 민중음악이요 또한 궁정에서 사용했다 하더라도 중국에서 건너온 것이 아니라 신라적부터 내려오는 '수재천' 같은 민족음악인 정악(正樂)인 것이다. '여율'은 한마디로 후천민중민족 시대의 민중민족음악이니 이것이 바로 오늘 여기 우리의 율려이다.
후천은 선천을 다 때려부시고 서는 새로움이 아니라 후천이 중심에 있으되 동시에 후천의 새로움과 선천의 오래됨이 함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율'은 민중적 민속악과 민족적 우주음악인 정악이 함께 동거하는 것, '여율로서의 율려'라 하겠다.
나는 동양사상과 문화의 전통 위에서 생명문화운동을 추진하기 위해 율려운동을 제안하고 '《율려란 무엇인가?》라는 책까지 출판했으며 무수히 무수히 설명해왔다. 그러나 거의 모든 반응, 계속된 반응은 '어렵다' '모르겠다'이다.
나는 이것이 우선 내 탓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공부를 철저히 해야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작년 신사(辛巳)년 하반기부터 율려의 수리와 철학서인 주역을 두 가지 강의를 통해 공부하고 있다. 율려는 주역과 정역을 알아야 쉽게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 세 가지 얘기를 꼭 덧붙이고 싶다. 그 하나는 나의 역공부가 사실은 율려보다 '시쓰기'에 큰 목표가 있다는 것이니 문학을 통해서 율려로 직행하자는 것이고 그 둘은 구한말(舊韓末)에 나라와 문명이 기우는 위기에 대응하여 민간에서는 동학혁명 등이 유행한 데 반해 지식층에서는 율려와 율려서적이 대유행이었다는 것이며 그 셋은 동학사상의 핵심인 열세자 주문의 맨 마지막 완결태인 '만사를 깨우침(万事知)'에서 그 '만사'가 바로 여러 가지 신구(新舊)의 '역수(易數)'이니 곧 '율려'라. 동학혁명의 주재가 다름아닌 '칼노래(劍歌)'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호방하고 웅장한 우주만물과 인간세상의 새로운 생명질서인가?
오늘 우리에게는 이 칼노래보다 도리어 더 크고 우람하고, 더 깊고 높은 '칼노래' 즉 '여율적 율려'가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혹은 새로운 역학 또는 칼노래의 문화적 과학적 확장 전개가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시호(時乎) 시호 이내 시호
부재래지(不再來之) 시호로다
만세일지 장부로서
오만년지 시호로다
용천검(龍泉劍) 날랜 칼은
일월을 희롱하고
게으른 무수장삼(無袖長衫)
우주에 덮여 있네
좋을시고 좋을시고
이내 신명 좋을시고
장부당전(丈夫當前) 무장사(無壯士)라
좋을시고 좋을시고.
중국학자 유효군(兪曉群)은 그의 '술수탐비(術數探秘)'에서 '율려'를 바람이라고 했다. 바람은 하늘의 뜻을 나타내는 동서남북의 변화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 율려는 풍류(風流)인 것이다. 좀더 수리적으로, 역리적으로 종합된 풍류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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