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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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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91>

변산의 밤

변산의 밤.

캄캄했다.

물결도 없고 달도 별도 없었다.

왕포 앞바다는 캄캄하게 잠들어 있었다.

담배 또 담배, 그리고 담배!

내가 앉은 짝띠 저 뒤편 술집에서 아우들이 떠들고 있었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검은 어둠속에 피어오르는 흰 담배연기 속으로 한가지 분명한 사실이 떠올랐다.

내가 시인이라는 사실이었다.

그것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시인이 무얼하는 사람인가?

아!

나는 짧게 외쳤다.

내가 찾고 있는 해답이 나의 직업 안에 들어 있었다.

내 의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아무리 풀뿌리지역운동, 생명운동을 하고 변혁운동을 해서 사회를 바꾸어놓는다 하더라도 '마음보'가, 정신이, 넋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것이었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

생명운동, 풀뿌리지역운동, 사회변혁운동을 안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인인 내가 한걸음 먼저 좀더 힘주어 노력해야 할 것은 '마음보'를 바꾸는 운동인 것이다. 그쪽이 허약하니 나는 그쪽에 힘을 더 주어야 하는 거였다.

왈, 문화운동이다.

시인은 문화운동을 먼저 해야 하는 것이다. '요기-싸르'의 길은 먼저 문화부터다.

어떤 문화?

물론 생명문화운동일 것이다.

생명문화운동은 곧 영성운동이다.

영성적인 문화운동이 강화될 때 생명운동, 생태운동, 풀뿌리운동은 따라서 강화된다.

문화운동은 문학예술, 역사, 철학의 세 방면의 통합된 큰 틀의 문화를 바꾸고 새로이 창조하는 운동이다.
20 대 젊은 시절에 시작했고 30대에 대오를 갖췄으며 40대에 한살림에서 다시 시도하다가 멈춘, 그러나 이미 새 틀이 시작됐으나 세계적 규모의 문화혁명, 미학혁명, 명상혁명으로까지는 그 내용과 생각을 넓히지 못했던 그것.

명상과 변혁의 통합에 있어서의 명상과 영성의 선취성(先取性)! 그것이 현대에는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튿날이던가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에서 신문을 한 장 샀다. 신문 문화면부터 펼치니 마침 '새로운 문화에의 요구'라는 내용의 기사가 보였다.

정보화와 전지구의 정보하이웨이 건설에 따라 세계는 새로운 콘텐츠, 새로운 문화를 요구하기 시작했고 그 새 문화 안에서 새 정치, 새 경제, 새 사회의 씨앗을 키우며, 그 문화를 통해 신인류를 배출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내 나머지 삶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사명도 여기에 있다.

돌아온 뒤 나는 대개의 일들을 아우들에게 넘기고 칩거하여 쉴러의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서한》이나 호이징어의 《호모 루덴스(유희인간)》 등 문화관련 서적들, 미학서적들을 이미 읽은 적이 있는 것이더라도 닥치는 대로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처럼 감성적이고 영성적인 것에 대한 탐색에 깊이 접하면서 다시금 기이한 환영들이 고개를 들었다. 푸른 별수련이 환영을 부른 것일까? 환영들은 내게 무엇을 의미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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