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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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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83>

칼 융

나는 그무렵 서울대병원 정신신경과의 명인, 이부영 선생으로부터 칼 융 스타일의 치료를 받고 있었다. 선생은 원주기독병원과는 전혀 달리 나의 병명을 '종교적 환상'으로 진단했다.

입원, 퇴원, 통원치료 과정에서 그 진단은 관통했으며 나는 '꿈치료'를 내내 받았다. 우선 나의 꿈을 노트에 기록하고 그것들을 선생이 분석하고 해석을 내리는 것이다. 아마도 여러 해에 걸친 꿈 분석과 융의 저서탐독 등으로 내 자신이 한 사람의 유사심리학자가 되어갔다. 치료야 어찌 되었거나간에 내가 나에 대해서 이전에 그렇게 많은 것, 깊은 것을 알았던 적은 백일 참선 때 외에는 없었다. 또한 그렇게 알고보니 나의 환상이라는 이름의 병의 시작은 바로 백일참선 때부터였고 또 그렇게 알고 보니 나의 정신, 나의 넋도 하나의 만달라였으며 사박자와 네 기둥의 균형 속에서 물결처럼 휩쓸어가는 그림자라는 이름의 3박자의 어두운 혼돈이었다. 그리고 '흰 그늘'이었다.

'꿈의 일기(日記)'에서 몇 부분 옮기면,

기독교의 세계다.

신비적인 숫자들과 현실의 사건을 비교·직시하는 게시판에 하나하나 적시·비교하는 나의 노력이 거의 다 맞아떨어지는 쾌거를 본다.

신부들과 성인(聖人)들이 다 칭찬한다.

동학의 세계다.

옛날 감옥에 들어앉은 십여 명의 남녀 수형자들에게 일일이 동학교리와 법률, 사건내용과 인용 사례, 예화 등을 따로 묶은 변소문건을 들이밀어준다. 그들이 모두 감격하여 칭송한다.

나는 이 모든 일을 하나하나 피땀흘려 준비하신 우리 선생님 장일순 선생이 지금 위암으로 돌아가시게 됐다고 홀로 우짖으며 벅차서 눈물바람을 한다. 기도한다.

동학 성인들 앞이다.

해월 선생은 봉두난발의 젊은 얼굴로 앉아 있다. 해월 선생이 천천히 걸어서 저승으로 내려가신다. 내가 선생을 외쳐부르나 무가내다. 내 앞에는 〈출판관계 개선사항〉에 관한 법률적 사안이 전문(電文)처럼 와서 놓여 있다. 긴급사항이다. 잠을 깬다.

내 집이 아닌 객지의 비좁고 어두운 골방에, 갇힌 것이 아닌데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댄다. 드디어 빠져나올 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야바위처럼 우습고 재미난다. 가파른 높은 곳에 유리로 만든 기인 뾰족구두를 신은 여자가 되어 여러 모양내는 여자들과 경쟁한다. 멋이 절정에 이르고 위험도 절정에 이른다. 잠을 깬다.

이스라엘 공동체 디아스포라 같다.

시편이나 신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구절, 탈무드 등을 암송, 인용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고, 공동체의 삶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생생한 고통과 첨단생산기술에 얽힌 삶을 알 수 있는 의미깊은 것이라고 나는 가르치고 또 강조한다. 이 짓을 큰 자랑삼아 하고 있다. 잠을 깬다.

내가 이제 나간다.
날카로운 물을 가지고 나간다.
차거운 뿌리와 함께 나간다. 잠을 깬다.

내가 아프다. 약 구하기가 힘이 든다.
내가 내 약, 조갑지 고약을 만든다, 좋다.
이 약은 '1·3·5·7·9'로 나가면 흉하다.
잠을 깬다.

'쿠데타 또 한다. 쿠데타 또 해!'라는 내부의 외침과 함께 내가 가볍게 그것을 진압한다. 잠을 깬다.

구역질한다. 두 번인지 크게 토한다.
나는 암이다. 절망한다.
'아홉'이란 숫자
그러나 나는 그것을 극복한다. 잠을 깬다.

내가 융으로부터 가장 큰 감동을 받은 것은 '그림자' 이야기다. 아마도 융의 그림자론에서 나의 그늘론이 그 실질적인 창조적 출발점을 얻은 것 같다. 왜냐하면 그림자는 일종의 불길한 욕망이요 복잡혼탁한 콤플렉스의 침전물이니까.

그러나 최대의 관심을 집중한 것은 역시 '비인과론적 동시성', 즉 '심리물리학'이다. 얼마 전부터 읽기 시작한 《역경(易經)》의 영어판인 《The I Ching》의 서문에서 융이 '역리(易理)'의 지혜와 변화를 '비인과론적 동시성'으로부터 탈유럽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보고 다시 한번 융의 위대함을 인정했다.

융은 동서양문화 융합의 거대한 이정표다. 그리고 나의 미학적 심리물리학, 즉 '흰 그늘'의 한 선구자다. 내가 내 스스로를 앎으로써 도리어 나의 병을 극복하는 길, 또하나의 참선의 길이 곧 칼 융 공부였고 꿈치료였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은 내내 어둑어둑하였으니, 길고 긴 침묵 속에 앉아 담배만 담배만 피워대며 두 아이와 아내를 무슨 물건 보듯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었으니, 내 스스로 내가 물건을 보고 있는 또하나의 물건임을 알고 있었으니, 그 시절 전체의 이름이 바로 '물질화'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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