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뒤 퇴원해서 원주에 다시 와야 한다는 주위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나는 해남에 그대로 머물기를 고집했다.
해남에서의 나날.
<사진>
새벽이면 시누대 숲 입구의 샘물로 물뜨러 다니고 낮과 밤 내내 문을 닫고 앉아 처량한 시들, 애린의 이름으로 발표된 것들, 그것들을 끄적이고 있던 그무렵 똑 〈무화과〉의 후편 같은 〈해창에서〉란 한 편의 시가 나와 김현이 보았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서울에 물어보니 이미 그는 고인이 되어 떠나고 없었다.
〈해창에서〉 전편이다.
아슬아슬하게 두 사람 서있다
옛날엔 번창했던 포구
고천암 막아
이제는 폐항 돼버린 해창
통운창고 앞에 아득하게 서있다
한 사람은 취해 한 사람은 깨어
개마저 짖질 않고
국밥 집터엔 바람만 불고
다가서는 나를 꼼짝않고 노려본다
멀리서 물오리들 떼지어 헤엄치고
삭은 똑딱배 물결에 흔들리고
구름 낮게 드리운 날 거기 그 자리
내가 서있다
반쯤은 취해 반쯤은 깨어
둘로 찢어진 채 아슬아슬하게 서있다
사그라드는 노을 함께
아득하게 사라진다
짐차 떠나는 소리
차모습마저 고개 너머 자취 없고
두 사람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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