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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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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78>

기독병원

주치의 신정호 선생은 내 병명을 '알콜중독에 의한 정신황폐증'으로 진단했다.

약을 먹으며 알콜중독자들의 자기 치료시간에 늘 참가해야 했다. 연상치료와 자유진술 등을 통해 내 병의 최초의 근원은 유년기의 사랑결핍과 욕구불만이었고 최근의 원인은 과도한 알콜중독으로 구체화되었다.

사랑결핍! 사랑결핍!

나도 안다.

그러나 말하고 싶진 않다.

다만 혼자서 그것을 극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때 내가 의지할 사람은 아내밖에 없었다. 그 아내가 면회오는 날, 그날은 온종일 기쁨에 차 있었고 그 아내가 간 뒤엔 밤새 마음속으로 울었다.

나는 어린애로 돌아가 있었다.

헬스용 '런닝 머신'을 굴리며 끊임없이

"여보! 여보! 빨리 와! 빨리 와!"

"세희야! 원보야! 빨리 와! 빨리 와! 아버지가 기다려! 아버지가 기다려!"

그러나 아내는 그 머나먼 해남에서 드문드문 올 수밖에 없었고 아이들은 아예 데려오지조차 못했다.

얼마 전 출간한 새 시집 《화개(花開)》에는 〈그때〉라는 시의 다음과 같은 몇 구절이 있다.

어릴 적 내가 앉아
울고 있다.

엄마를 기다리는걸까
아빠를 기다리는걸까

산은 거꾸로
눈물젖은 눈에 비치어


환상의 시작이었다
이 지루한 지옥의 삶의 아련한

시작,
내 어린 날
그때.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의 기술'이다. 그 기술은 사랑을 받아본 사람만이 알 수밖에 없다. 유년기에 사랑결핍을 경험한 사람은 아이들을 사랑할 줄도 모른다.

평소에 사랑할 줄 모르다가 운명의 험한 골목에 들어가서야 아이들에 대한 연민과 자기 연민과 가족에 대한 연민을 되새기는 법이다. 같은 시집에 〈별〉이라는 시의 몇 구절,

내일 새벽
나의 죽음 뒤에
아마도 별이 뜰 것이다

불쌍한 우리 네식구처럼
네 개의
푸른 별이 뜰 것이다
……
다시 산다면
나는
불쌍한 우리 네식구처럼
네 개의 푸른 별로

항상 떠
내내 비칠 것이다.

<사진>

그러나 사실 주위의 사랑을 많이 받아온 맏이 원보보다 어쩐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내내 안쓰럽고 안 잊히는 건 작은 아이 세희다. 막내에겐 다 그렇다고 하지만 나는 나의 감옥에서부터 시작된 불행이 두 아이와 아내의 슬픔을 만들어준 가장 큰 원인이었다는 점에 할 말을 잃는다.

세희! 내 작은놈 세희!

이 시집엔 또 다음과 같은 짧은 시도 하나 있다.

감기들린 작은놈 콜록소리
내 가슴에 천둥치는 소리
손에 끼었던 담배
저절로 떨어지고
춥다
그리고 덥다.

그러나 그렇게 아프고 또 아파서 입원하거나 침묵으로 오랜 세월을 살다 보니 나와 아이들의 사이는 '소 닭보듯, 닭 소보듯' 돼버렸다.

어찌하랴!

그렇게도 아프고 서글퍼서 해남으로 살러 내려갔는데, 그곳에서 분가하여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인생을 새출발하자고 했는데,

어찌하랴!

어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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