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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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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86>

줄탁

생명의 때가 무르익어 달걀 속의 병아리가 깨고 나오고자 쪼아대는 껍데기의 한 부분을 어미닭이 정확히 부리로 쪼아주어 안팎의 동시 쪼음으로 마침내 달걀이 깨어지는 것을 줄탁(啄)이라 한다. 불교용어로는 수좌(首座)의 선기(禪機)가 무르익었을 때 조실(祖室)이 이를 알아 방할(捧喝)로 깨우쳐주는 것을 말한다. 그러하매 줄탁은 생명의 신비요 영(靈)의 오묘함이다.

나는 아픔속에서도 어느 날 어둑어둑한 초저녁 두 다리 사이 회음부에 새파란 별이 반짝하더니 가슴 복판에 별이 뜨고 배 꼽아래 안쪽에서 뜨고 끝에는 상단전에 뜨는 과정이 저녁 내내 반복되는 체험을 했다. 그후 나에겐 변화가 왔다. 별수련이었다.

별은 시천주(侍天主) 주문과 함께 뜨고 또 떴다. 시천주 주문은 말로는 4단락이나 뜻은 3단락으로 '3 플러스 4'였다. '3 플러스 2'와 마찬가지다. 바로 '역동적 균형'이니 '태극'이요 '궁궁'이었다.

병원에 입퇴원하는 고달픈 경험에도 불구하고 또 뭇비난이 내게 쏟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척분(滌焚)은 내게 있어 하나의 줄탁이었으니 나만의 새로운 내공(內功)수련이었고 바로 생명시의 시작이요 '그물코'의 탄생이며 '생명민회(生命民會)' 즉 '생명가치를 위한 민초들의 모임'의 출생신호이자 거의 동시에 '풀뿌리민주주의를 위한 시민연대'의 개막선언이었다.

시 〈줄탁〉은 이렇게 된다.

저녁 몸 속에
새파란 별이 뜬다
회음부에 뜬다
가슴 복판에 배꼽에
뇌속에서도 뜬다

내가 타죽은
나무가 내 속에 자란다
나는 죽어서
나무 위에
조각달로 뜬다

사랑이여
탄생의 미묘한 때를
알려다오

껍질 깨고 나가리
박차고 나가
우주가 되리
부활하리.

<네가지 그림이 여기 다 들어갑니다. 차례대로>

시천주 주문은 동학의 핵심이요 떼이야리즘의 압축이다. 떼이야리즘 안에, 떼이야리즘과 함께 베르그송과 그레고리 베이트슨, 데이비드 보옴 등의 우주적 생명문법이 그대로 드러난다.

시천주 주문은 그 언어적 문법구성으로는 4단락이요 4위체(位體)이다. ①시천주(侍天主) ②조화정(造化定) ③영세불망(永世不忘) ④만사지(万事知)로 구성된다. 그러나 그 의미적 체계로서는 3단락이요 3위의 역동적 구조이니 ①시천주 ②조화정 ③영세불망 만사지로 발전한다. 따라서 박자로 치면 '3박 플러스 4박' 또는 '3박 플러스 2박'으로 '엇박'을 이룬다. '역동적 균형'이며 '혼돈의 질서'다.

또한 세분하면 문법 체계로서는 ①시 ②천주 ③조화 ④정으로 ⑤영세 ⑥불망 ⑦만사 ⑧지로 8단락 또는 4·4단락이지만 그 의미로서는 ①시 ②정 ③지의 3단락 또는 ①시천주 ②조화정 ③만사지의 3단락에 조건구인 ④영세불망이 끼어서 4단락이 되니 역시 박자로 치면 '3박 플러스 4박' 또는 '3박 플러스 2박'으로 '엇박'이다.

따라서 주문 전체는 그 별 뜨는 순서에 따라 '궁궁(弓弓)'의 자취를 형상한다.

태극음양의 사상과 같은 4개의 '단전'에서 별이 뜨되 그 내용의 움직임은 궁궁과 같은 3개의 '움직임'이다. 이렇게 3과 4의 내용과 형식에서의 역동적 균형, 혼돈적 질서, '카오스모스'(들뢰즈·가타리의 용어인데 수운의 계시체험 그대로 태극 또는 궁궁을 해명하는 용어다)가 곧 '활동하는 무(無)'로서 고리(環)' 또는 '고리중심(環中)'을 이룬다. 즉 천부경(天符經)의 전체 의미상의 앞부분과 뒷부분의 '연결고리'에 해당하는 '셋과 넷이 고리를 이룬다(三四成環)'의 비밀이 이것일런지도 모른다. 이 고리는 선도풍류(仙道風流)의 비의(秘儀)일 것이니 장자(莊子)철학 그 나름으로 자세히 의미되어 있는 바 '빈 방에서 흰빛 난다(虛室生白)'의 경지이거나 '좌망(坐忘)' 또는 '허무의 체관(諦觀)' 등이 모두 그 자취나 형상으로서는 이 '고리' 또는 '고리 중심'의 그 체험 아닐까? 이 '고리'는 철학만이 아니라 일본 학자 판정(版井)의 말처럼 현대물리학에서의 원자운동의 새로운 핵심으로, 채희완의 탈춤에서와 같이 탈춤, 시나위 등 우리 민족예술의 미학적 핵심원리로서 '엇' '걸이' '묵(默)' 또는 '농현(弄弦)' 등의 원리로까지 작용하는 그것은 아닐까?

또한 '삼사성환(三四成環)'은 그 다음 이어지는 '오칠일(五七一)'이라는 전혀 새로운 뇌세포의 차원(?)을 열고 나온다.

주문의 마지막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그러므로 그 진리의 작용을 밝게 밝히며 끝내 생각하고 생각해서 잊지 않으면 마침내 지극한 우주기운으로 변화하여 끝내는 '지극한 성스러움(至聖)'의 자리에 이를 것이다.

故 明明其德 念念不忘則
至化至氣 至於至聖.

이때 이미 동학의 진리, 그 계시인 '태극이며 궁궁'이 상고의 동이(東夷) 사상 천부(天符)의 근현대적 부활임을 깨닫게 될 것 같다.

하늘은 사람 안에 있다. 사람이 제 안에 모신 것이 하늘이다.

고로 천부(天符)는 영부(靈符)다.

영부가 바로 그 모양이 태극이며 또 그 모양이 궁궁인데, 이것이 즉 오늘에 제시된 '천부', 세계사의 '대혼돈(Big Chaos)'에 대한 처방(그 이름을 '신선의 약(仙藥)'이라 한다는 수운의 계시 내용)으로서의 새 삶, 새 문명의 원형(原型)이요 새문화의 패러다임(들뢰즈·가타리의 주장인, '카오스모스(Chaosmos)'와 같은 것)인 것이다.

물론 그런 경지에야 언감생심 오르기야 했겠는가마는, 한답시고 병원에서 시작한 별수련을 집에서도 거듭거듭하면서 매일 오전에는 걸어서 파리공원에 가 나직한 관목숲 사이에 앉아 새나 나비나 벌이나 나무나 꽃과 동화하려고 애쓴다. 아니 가 앉아 있으면 동화되는 듯했다. 내 안에서 나비의 날개짓이 시작되고 팔을 벌리고 견인하는 나무의 오랜 기다림이 나의 기다림이 되어가는 듯도 했다.

예전엔 풍성했던
온갖 생각들 자취없고

빈 자리에
메마른 나무 그림자 하나

새야
와 앉으렴

앉아
새 노래를 불러주렴

겨울이 깊을수록
파릇파릇한 보리싹의

노래 매화의 노래
그리고 새빨간
동백의 노래

내 안에 다시 태어나는
나 아닌 나의 노래.
―〈예전엔〉

목동의 내 집은 사람 자취가 끊어졌다. 전화벨조차 울리지 않았다. 그것이 얼마간이었던가! 내 말씀 상대는 안에서는 아내뿐이요 밖에서는 이부영 선생뿐이었으니 산책에서 반복해 눈여겨본 목동의 여러 풍경들이 사뭇 어떤 기이한 사람의 전기(傳記)모냥 내 눈에는 그렇게 깊숙깊숙이 아로새겨져 있다.

외로웠다.

그러나 그 외로움은 나를 해맑게 하는 정화작용을 하는 듯했고 점차 새로운 일의 씨눈을 틔우는 듯했다. 〈무슨〉이다.

무슨
소리라도 한번 들려라
살포시라도

외롭구나
무슨
벌레라도 한 마리
나를 물어라
너무 외롭구나

생각하고 생각하다
생각이 막힌 곳
문득 생각하니

내 삶이란 게 간단치 않아
온갖 소리 갖은 벌레 다 살아 뜀뛰는
무슨 허허한 우주

쓴 웃음이
한번

뒤이어
미소가 한번

창밖의 마른 나무에
공손히 절 한번

가랑잎 하나
무슨 종교처럼 진다.

외로움 속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우주적인 사랑이 싹터오고 있었다. 그 우주는 내 몸 안에서 별이나 꽃처럼 살풋 열리고 문득문득 싹트곤 했다. '저 먼 우주의' 무슨 사랑이…….

저 먼 우주의 어느 곳엔가
나의 병을 앓고 있는 별이 있다

하룻밤 거친 꿈을 두고 온
오대산 서대 어딘가 이름 모를
꽃잎이 나의 병을 앓고 있다
시정에 숨어 숨고르고 있을
기이한 나의 친구
밤마다 병든 나를 꿈꾸고

옛날에 옷깃 스친 어느 떠돌이가
내 안에서 굿을 친다

여인 하나
내 이름 쓴 등롱에 불 밝히고 있다

나는 혼자인 것이냐
홀로 앓는 것이냐

창틈으로 웬 바람이 기어들어
내 살갗을 간지른다.

나에겐 산책이 곧 행동이었다. 산책은 곧 회음(會陰)에서 수해(隨海, 두뇌에 있다는 상단전)로 다시 회음으로 돌아오는 별수련, 궁궁수련이었으니 우주적 커뮤니즘을 인간세계 안에 일으키고 꽃피우고 열매맺기를 예상하는 하나의 생명운동이었으니까.

〈저녁산책〉이다.

숙인 머리에
종소리 떨어지고

새들이 와 우짖는다

숙인 머리에
바람이 와 소스라치고

가슴 펴라
가슴 펴라 악쓰고

숙인 머리에
별뜬다

오늘밤은 무슨 꿈을 꾸랴
먼 하늘에 새빨간
노을 쏟아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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