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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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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285>

정신병동에서

그리고 나는 그때 정신병동에 있었다.

나는 그때 오른손 엄지의 윗부분을 심하게 물어뜯었다. 내가 서 있던 탁구장에서 여덟살짜리 소년 하나가 베트를 왼손에 든 채 오른쪽 손가락을 빨고 있었다. 내 옆에 서서 탁구를 구경하던 민간호원이 혀를 끌끌 차며,

"저게 문제야, 저게! 욕구불만에 사랑결핍!"

나는 얼른 내 오른손을 입에서 떼어 등뒤로 감췄다.

침실 입구의 흰 시멘트벽에 아직 흰빛이 강한 이른 노을이 비끼며 중세 말기의 '장미십자주의'의 꽃문장(紋章)이 화려한 모습을 드러내고 그 비밀결사위원들의 독일어 명단이 낭독되기 시작했다. 몇백 명인지 알 수 없었다. 한 지역만이 아니었다. 수도 없이 많은 지역이었다. 환상중에도 나는 놀라 중얼거렸다.

"중세가 그냥 저냥 극복된 게 아니로구나."

하루는 마당에서 52병동과 53병동 환자 사이에 족구시합이 있었다. 그때 53병동에 있는 한 운동권 처녀가 사뭇 악바리로 물고 늘어져 박수를 받곤 했다. 내 눈에 호랑나비 한 마리가 보였다. 그것이 후일 한 편의 시가 되었다. 〈정신병동에서〉다.

나 들어있는 52병동에서
두 팔을 불로 지진 운동권
계화(桂花)가 사는 53병동까지 사이엔
영안실이 있다
밤낮 초상이다
낮엔 53병동 초입 자귀나무
붉은 꽃잎 위에 검은 호랑나비가 숨쉰다

"잘사는 사람들이 미워서!"
족구에서 이긴 계화의 말
날더러
"당신 알아"
빙긋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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